[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위키미디어 공용

 

새 정부가 출범한지 50일이 넘어가며 역대 유례 없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으나, 내각 구성에 있어서는 심각한 진통을 겪고 있다. 국회와의 협치에서 각종 마찰음이 빚어지며 국무위원 인선 조각 완성률에 있어 동일 기간 역대 정부에 비해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다. 잇따른 후보자 낙마로 논란을 빚었던 박근혜 전 정부 때조차도 취임 50일의 조각 완성률이 88.9% 수준 이었던 것에 비해 현 정부는 38.9%에 그치고 있다. (중앙일보) 물론 인수위원회 없이 급작스럽게 취임한 격동의 상황이니만큼 변명의 여지가 충분하긴 하다. 그러나 유달리 이번 정부에 들어 후보자 검증 과정에서의 날선 공방이 연일 언론을 달구고 있다는 것 또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정부 각처의 후보자들에 대한 국회의 후보자 검증 청문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한탄 속에 가장 많이 들려오는 단어가 아마 '내로남불'이 아닐까 싶다.

 

야당은 정부가 후보자 인선을 발표하는 족족, 낙마를 시키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며 후보자들의 각종 결점들을 맹렬히 공격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후보자의 검증에서는 그 결점을 찾아내기 위한 야당의 불법적 수단이 동원되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위장전입, 논문 표절, 음주운전 등의 사건들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거대한 불법행위로 표적되어 후보자들의 얼굴에 주홍글씨처럼 새겨지고 있다. 놀랍게도 그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의 흠결로 다양하게 무장한 사람들이 그 아우성의 주동자라는 점은 전혀 인식되지 못한 채 말이다. 그보다 훨씬 더한 수준의 비리로 점철되었던 인사들을 기용했던 전정부의 주인공들임에도 불구하고 야당에서는 매우 혹독한 검증기준을 들이밀며 후보자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더불어 현정부가 결점 투성이의 인사들만을 기용하는 비뚤어진 정부라는 식의 비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내가 했던 건 로맨스, 남이 한 건 불륜 식의 비판이 아닐 수 없다.

 

내로남불의 안타까운 현실은 비단 야당의 행태에서만 보이고 있지 않다. 후보자 검증의 칼날을 벼리는 야당에게 여당 또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야당이 단지 편가르기와 정치 공세에 눈이 멀어 시급한 국가 현안의 해결을 뒤로 한 채, 정부 내각 구성을 고의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행태는 현 여당이 전 정부에 보였던 정치공세와 다를 바가 없다는 비판 또한 거세게 일고 있다. 또 무엇보다 끊이지 않는 후보자 논란들은 여당이 대선 당시 선거운동의 주된 공약으로 내세웠던 공직자 배제 5대 원칙 위배라는 지적도 보이고 있다. 선거운동 당시에는 적폐 청산을 외치며 5대 원칙의 준수에 있어 칼 같이 엄정한 태도를 내세웠지만, 청문회에서 드러나는 후보자들의 잘못들에 대해서는 수용 가능한 정도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내로남불이라는 것이다.

 

○ 우유와 독은 섞일 수 없다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의 대상관계 이론에서는 유아가 형성하는 분열적인 인간관계를 우유와 독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유아는 자신이 느끼는 불쾌감과 파괴적인 충동이 자기 안에서 생기는 것인지, 밖에서 유발된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다만 엄마의 품안에서 때때로 느껴지는 그 불쾌감을 견디기 어려워할 뿐이다. 견디기 어려운 불쾌감은 good mother와 bad mother로 극명하게 분열된다. 아기는 좋은 엄마의 모습과 나쁜 엄마 모습을 나눠 놓을 수 밖에 없다. 좋은 엄마가 우유이고 나쁜 엄마가 독이라면 우유와 독은 절대 섞일 수 없다는 것이다. 독약에 우유를 얼마나 많이 타건, 독은 마실 수 없다. 우유에 독약이 한방울이라도 떨어지면 그 또한 마실 수 없다. 우유와 독은 분리 시켜야만 한다.

 

내로남불의 애꾸눈 같은 시야는 이와 같은 분열적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 편에게는 나쁜점이란 결코 있을 수 없고, 저쪽 편에는 좋은 점이라는게 있을 수 없다는 식의 분열적 인식이 그 무의식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렇게 나쁜 녀석들이 가졌다는 좋은 점이라고 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어”라는 생각, “착한 편인 우리들이 가진 몇몇 나쁜 점들은 넘어갈 만한 사소한 것들이야”라는 생각들 역시 비슷한 사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좋은 것 나쁜 것. 모 아니면 도. 흑백논리의 단순한 편가르기는 유아의 분열적 사고에 기인한다.

 

○ 모호함을 견디다

 

니 편 내편을 가르는 분열의 유아적인 사고는 사실 우리 사회에 굉장히 만연하다. 정치판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인간관계만 본다 하더라도 분열적 사고에 의한 편견, 선입견은 무척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나이를 먹고,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를 전혀 다른 대상으로 분열 시키는 유아의 세계에서는 이미 벗어난지 한참이지만, 여전히 우리들은 어떠한 대상에 대한 감정적 평가에 무의식적인 분열을 적용시키곤 한다.

 

우리가 나도 모르게 대상들을 쉬이 분열하여 판단하게 되는 이유는 분열의 논리가 무척이나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명쾌하고 간결하다. 좋은 것 나쁜 것에 대한 느낌을 기준으로 선을 주욱 긋기만 하면 모든 논리가 단칼에 결론 내려진다. 착한 놈 나쁜 놈을 누가 규정 지어주기만 한다면 그 만능 판별기를 어디에나 들이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분열은 모호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미 그어진 선만 있다면 판단을 돌이켜볼 필요가 없는 분열의 논리는 무척이나 쉽다.

 

그렇지만 유아가 성숙하는 과정은 나를 힘들게 하는 나쁜 엄마와 나를 안아주는 착한 엄마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에게도 혐오스러운 면모가 조금씩은 공존할 수 있다는 불편한 감정을 받아들여가는 과정이다. 그 불편함과 모호함을 견뎌내며 성장해나가는 것이다.

 

분열은 쉽다. 그러나 나뉘어진 극단을 통합하는 과정에는 불편한 이차적 사고가 필요하다. 싫어하는 상대에게도 좋은 면모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 더 나아가 몇몇 점들은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괜찮은 것이라는 사실. ‘그럭저럭 괜찮은’(good enough)의 모호함을 견뎌낼 수 있을 때에 우리는 좀 더 뚜렷한 현실을 바라 볼 수 있다. 세상에 완벽이란 있을 수 없고, 오히려 모호함이야 말로 현실에 가장 가까운 것이니 말이다.

 

내로남불 식의 주장은 이미 결론이 정해진 논리이다. 나와 너로 이미 분열된 대상에게 내려지는 평가이다. 그러나 결론이 그 과정을 선행하는 이데올로기의 맹목은 이미 고리타분한 역사의 뒤안길로 넘어간지 오래이다. 파시즘과 매카시즘이 분열하던 시대는 20세기와 함께 흘러갔다. 엄마의 모유에 독이 섞일까 전전긍긍하던 유아기의 불안 역시 우리 모두 지나보냈다. 흑백의 색안경을 벗어던져야만 진실을 바라볼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

 

바야흐로 혼돈의 한해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출발을 열어가는 여명의 해다.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한 책임을 짊어진 현 정부와 국회가, 각자만 서로 명쾌한 진영논리에 휩싸여 있기보다는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보다 진실된 한걸음 한걸음을 보여주길 염원해본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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