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과 정상, 그리고 불안

사진 JTBC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올인하는 나, 비정상인가요?"

"대학 대신 기술을 배워 취업하고 싶은 나, 비정상인가요?"

"방학에도 과목별로 학원을 보내려는 나, 비정상인가요?"

 

꾸준한 인기 속에 방영되고 있는 JTBC의 예능 <비정상회담>에 등장했던 안건들이다. 각국의 이른바 ‘비정상(非頂上)'청년 패널들이 모여, 매 회마다 위와 같은 안건을 하나씩 놓고 정상이다 vs 비정상(非正常)이다로 편을 갈라 토론을 한다.

이들의 열띤 토론을 보다보면, 한 개인에 대해 '정상'이다, 혹은 `비정상'이다 라고 정의내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알 수 있다.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에 올인하는 나, 비정상인가요?" 라는 안건에서, 알베르토(이탈리아)는 사연 주인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이 다른 나라에서는 비정상인데, 한국에서는 정상이에요."

또한, "대학 대신 기술을 배워 취업하고 싶은 나, 비정상인가요?"에 대해 장위안(중국)은 이 사람이 비정상이라고 주장한 후 이런 말을 덧붙인다.

"한국 상황에서는 학력이 기회예요. 높은 학력이 유리해요."

 

여기서 이들이 말하는 정상(normality)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정신건강으로서의 정상에 대한 대표적인 이론인, 다니엘 오퍼와 멜빈 샙신(Offer & Sabshin)의 네 가지 관점을 살펴보자.

1) 질병이 없어야 정상이다(normality as health)

: 병적인 증상이 없어야 정상이라는 관점이다. 즉, 환청이나 불면 등이 있는 상태보다 없는 상태가 정상이라는 뜻이다.

2) 평균, 즉 보통이어야 정상이다(normality as average)

: 통계적 의미로서의 정상이며, 지능지수(IQ)가 전체 인구에서 일정 범위 내에 있어야 정상이라고 보는 것이 그 예이다. 

3) 이상적(ideal)인 상태가 정상이다(normality as utopia)

: 모든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고 최상의 기능을 발휘하는 이상적인 상태를 정상으로 규정하는 시각이다.

4) 적절한 성장과 발달을 해야 정상이다(normality as process)

: 발달학적 관점으로, 예를 들어 대소변 가리기를 제 나이에 할 줄 알게 되는 등 시간의 경과에 따른 적절한 성숙을 이루었을 때 정상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한 개인, 혹은 그 개인의 행동이 정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이 네 가지 관점을 통합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알베르토와 장위안의 의견은, 정상에 대한 두 번 째 관점, 즉 ‘평균이어야 정상이다’만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취하게 되는 관점이기도 하다.

일상 생활의 많은 경우에 평균, 즉 ‘보통’은 정상과 마치 같은 뜻인 것처럼 취급되지만, 보통이라는 것은 정상을 정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속성 중 하나에 불과하다. 보통이어도 비정상일 수 있고, 보통이 아니어도 정상일 수 있다. 스펙경쟁, 사교육 열풍에 대해 “이 정도는 보통이지. 다들 이 정도는 하잖아.” 라고 대답하는 것이, 이 현상이 정상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예를 좀 더 들어보면, 동성애(homosexuality)의 경우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것이 ‘보통’에 해당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정신질환 진단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에서 한때는 질환으로 여겨졌으나, 이것이 병이라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어1973년부터는 질환목록에서 삭제되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첫째, 정상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평균’이 절대적 기준으로 작용하는 건 아니라는 점과, 둘째, 정상이라는 개념은 고정불변하지 않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보통)이라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올바른 길(정상)일 수는 없음에도 보통과 정상을 쉽게 동일시 해버리면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아니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불필요한 불안, 즉 ‘내가 정상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모든 사람이 모든 영역에서 평균의 영역에 머무르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평균에 편입되지 못해 불안해하다가, 편입된 것 같아 잠시 안도하다가, 다시 평균과 자기 자신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며 불안에 시동 걸기를 반복하는 것은 아무래도 슬픈 일이다. 

물론 우리가 인생의 모든 순간들에서 “나는 보통은 아니지만 정상이므로 내 길을 가겠어!”라는 태도로 투사(fighter)가 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균형, 그리고 타인에 대한 관대함이다.

적어도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에서만큼은 스스로가 정상이라고 믿는 바를 따르려는 노력은, 자기 자신에 대한 안정감과 통합성(integrity)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또한 평균에서 벗어난 타인을 쉽게 비정상으로 재단하지 않는 관대함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느끼는, ‘내가 정상이 아닌 것 같다’는 불안감의 악순환을 줄이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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