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단언컨대, 나는 다시는 의사나 병원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현재 인기 있는 SNS 서비스들은 가끔 내 지인의 지인, 즉, 내가 모르는 타인의 생활도 엿보게 해준다. 최근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그 분’은 지하철을 기다리던 와중에 100년 넘는 전통의 명문 의료원 광고판을 보고 본인이 경험했던 끔찍했던 일을 되새김질하면서 분노를 SNS상에 표출했다. 나의 지인이  ‘좋아요’를 눌러줬기에 나 또한 ‘그 분’의 분노를 알게 되었고…

처음에는 ‘그 분’의 불쾌한 경험이라는 것이 의사 입장에서는 보호자의 터무니 없는 억지로만 느껴져서 무시하고 넘어갔었다. 하지만 ‘그 분’은 좋은 사람일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지인의 설명을 듣고는 현실 속에 ‘그 분’과 같은 사람이 많이 있고 그런 이들을 상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재차 깨달았다.

정황상 ‘그 분’은 ‘그 분의 아버님’을 모시고 병원에 갔었다. ‘그 분의 아버님’은 위암에 걸린 상태였고 병원에서 위암의 대가로 통하는 교수님께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그 분’은  ‘수술을 통해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들었지만 수술을 시작했을 때는 ‘복강 내에 이미 암이 너무 퍼져서 수술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얘기를 듣고 허무하게 마무리가 된 것이다.

위암은 우리나라에서 특히 흔한 암 중 하나이고 건강검진의 활성화로 수술과 항암치료 후에 완치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 다만, 진행성 위암은 다른 소화기 암보다 ‘복막파종’을 통해 뱃속 여기저기에 암세포를 퍼뜨리는 경우가 더러 있다. 안타까운 것은 복막파종은 내시경, CT, PET-CT등의 검사로도 완벽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암 수술을 하는 환자들 중 일부는 ‘O&C (open & closure)’ 즉, 개복 후 수술을 더 진행하지 않고 마무리하는 경우를 경험하곤 한다.

서론이 길었지만,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상황, 즉, ‘의료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지만 결과가 안 좋은’, 실질적으로는 의료사고에 들지 못하는 ‘정상적인 진료 상황’에서 의사와 현대의학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느끼고 ‘다시는 의사를 믿지도 병원에 가지도 않겠다’라고 SNS에 선언하게 되는 환자들의 괴리감을 우리가 어떻게 메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의료진은 보통 수술 전에 ‘복막파종’가능성을 설명함으로써 ‘설명의 의무’를 다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은 감정적으로 의료진을 원망하는 경우가 많고 결과적으로는 의료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쪽으로 쉽게 쓸려나갈 수도 있다.

이 한탄의 글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했다고 해서 병원에서 발을 끊으면 본인 손해다’라고 할 수준의 문제일까? 병원을 등지고 떠난 이들이 만신창이가 되어서 병원으로 돌아 오는 상황을 수동적으로 방치하고 있는 것은 옳은가?

간장종지를 충분히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화가 난 손님이 다른 중국집을 가는 것은 문제가 없겠지만 현대의료 전반에 불신을 가지게 된 자가 황야를 떠돌며 병을 키우고 있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이 옳을까? 왜 사람들은 현대의학에 대한 불신을 그렇게 쉽게 갖게 되는 것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까?

“단언컨대, 나는 다시는 의사나 병원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 분’이 이런 발언을 한 것이 단지 상처받은 한 개인의 미성숙한 분노의 표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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