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려원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파이, 뇌로부터 영혼까지의 여행 (저자 줄리오 토노니, 역자 려원기, 쌤앤파커스 |)

 

오늘날 우리는 뇌가 마음과 관련된 장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뇌 속에 들어있는 뉴런들의 활동, 물리화학적 작용에 불과한 활동들이 어째서 ‘의식’이라는 현상과 결부될 수 있는지 그 까닭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알지 못합니다.

 

라이프니츠 Leibniz나 데카르트 Descartes, 가깝게는 존 설 John Searle이나 토마스 나겔 Thomas Nagel과 같은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에 대해 고심하였고, 이를 심신문제라고 불렀습니다.

 

한편 1940년대 버트런드 러셀 Bertrand Russell은 철학적으로 이 수수께끼를 풀 가능성에 대해 일축하며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우리는 가시적인 물체에서부터 출발하는 물리적 과정이 눈으로 들어와, 눈에서 또 다른 물리적 과정으로 변하고, 시신경에서 또 다른 물리적 과정을 일으켜, 최종적으로 두뇌 안에서 어떤 효과를 일으킨다고 추정한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그 과정이 시작된 물체를 볼 수 있게 되는데, 이때 본다는 현상은 “정신적인” 성질의 것으로, 물리적인 과정들과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너무나도 기묘하기에 형이상학자들은 온갖 이론을 만들어 내어 뭔가 덜 신비로운 방식으로 이를 해석해보고자 하였다...

 

시간이 흘러 신경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나가자 철학의 영역에 머물렀던 심신문제는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의식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일에 도전하는 과학자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낸 프랜시스 크릭 Francis Crick이나 항체의 분자 구조를 밝혀낸 제럴드 에덜먼 Gerald Edelman같은 이들이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림.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작가.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지금 소개하는 <파이, 뇌로부터 영혼까지의 여정>의 저자 줄리오 토노니 Giulio Tononi 역시 그러한 심신문제를 푸는데 매달렸습니다. 그는 정신과 의사이자 신경과학자로, ‘의식은 통합된 정보이다’라는 혁신적인 가설을 내어놓은 인물입니다. (이 때의 정보란 일상적인 의미의 정보가 아닌 내제된 관점에서의 정보를 뜻합니다. 더 적당한 단어를 찾을 수 없었기에 궁여지책으로 정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의 주장에 녹아있는 기본 개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모든 경험은 덩어리져 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볼 때, 형태를 쏙 뺀 채 색깔만 인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음악을 들을 때, 음정은 빼고 소리의 크기만 알아듣는 일 역시 불가능하다. 경험은 하나의 덩어리로 다가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식을 낳는 물리적 시스템 역시 하나의 덩어리로 운용되어야 할 것이다. (통합)

 

2. 덩어리진 각각의 경험 속에는 정보가 담겨 있다. 한 가지 특정한 경험은 다른 수많은 경험들과는 구분이 된다. 이론상으로 볼 때, ‘오직 암흑만이 가득한 고요한 밤하늘’에 대한 경험과 ‘천둥 번개가 치고 먹구름이 어지러이 움직이는 하늘’에 대한 경험은 똑같은 정도로 정보적일 뿐이다. 언뜻 보기에 후자가 훨씬 복잡해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둘 모두 특정한 경험으로서, 상상해볼 수 있는 기타 무수히 많은 경험들을 제외시켜버린다. (정보)

 

어려울 수도 있는 이러한 개념을 토노니 박사는 소설의 형식을 빌려 쉽게 풀어내고자 했습니다. '뇌로부터 영혼까지의 여정' 속에서 주인공 갈릴레오는 세 명의 안내자 (프랜시스 크릭, 앨런 튜링, 찰스 다윈)의 도움을 받아 점차 의식에 관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이는 마치 단테의 신곡이나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의 장면들과도 닮은 듯합니다.

 

책의 첫 번째 부분에서는 의식이 지닌 독특한 성질을 보여주는 증례들이 소개됩니다.

대뇌의 일부분은 어째서 의식화되는지, 어째서 소뇌는 의식화되지 않는지, 영혼의 실명이라 불린 안톤 증후군은 무엇인지, 분리뇌 증후군과 히스테리 (전환장애)에서의 의식 상태는 어떠한지, 대발작과 NREM 수면 시에는 왜 의식이 소실되는지와 같은 내용이 흥미롭게 담겨 있습니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갖가지 은유, 비유, 사고 실험을 통해 통합정보이론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부분에서는 이 이론을 우리의 삶과 어떻게 결부시키고 통찰해 볼 수 있을지 물음을 던집니다. 죽음과 치매, 사람과 동물의 의식, 태아의 의식, 예술이나 학습과 같은 쉽지만은 않은 주제를 다분히 문학적인 필체로 다루고 있습니다. 의식이라는 것은 과학적 탐구 대상인 동시에 대단히 인간적인 것이기도 하기에 문학적인 표현을 통해 더 잘 전달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는 알파고가 프로 바둑기사들을 이기고, 자율 주행 자동차가 시험 운전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통합정보이론에 따르자면, 적절한 조건만 충족될 경우 만들어진 재료와는 상관없이 그 속에는 의식적 현상이 깃들 것이라 가정합니다. 그것이 뉴런들로 이루어진 두뇌를 가진 인간이건, 실리콘으로 된 회로를 탑재한 기계이건 상관이 없다는 뜻입니다.

 

약한 인공지능이 점차 상용화되고 있는 오늘날, 앞으로 강한 인공지능이 등장하여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지는 않을까 상상하는 이 시점에서 책의 내용이 시사하는 바는 생각보다 좀 더 실제적이고 시의적절한 것은 아닐까요.

 

 

려원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구 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인턴 수료
국립서울병원 (현 국립정신건강센터) 전공의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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