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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과 설전을 벌였던 메르스 35번 환자(삼성서울병원 의사)가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다. 지난 6월 4일 메르스 확진을 받은 후 7월 1일 메르스에서 완치됐지만, 이후에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다른 합병증을 치료해왔다고 질병관리본부가 6일 발표했다.

전국이 난리였었다. 국내로 메르스가 유입된 그날부터 세 달여 남짓 진정될 듯한 사태가 멈추질 않았었다. 사람이 붐비던 장소는 한산해졌고 지나다니는 사람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꺼렸다. 행여 기침을 하거나 코를 훌쩍거리는 사람을 보면 얼른 고개를 돌렸다. '갓 블레스 유.'라는 걱정스런 말은 들을 수 없었다. 메르스가 한국사회를 공포로 물들였었다. 공포는 서로를 외면하고 사람들을 고립시켰다. 정말 메르스가 그렇게 공포스런 존재였을까?

대부분의 감염체는 전염력이 높으면 치사율이 낮고, 치사율이 높으면 전염력이 낮다. 의사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것을 벗어나는 감염체는 저기 먼 나라의 에볼라 바이러스 외에는 본적이 없다. 물론 필자가 무지한 부분도 있을테지만, 보호구 없이 온갖 감염체가 득실거리는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면서도 피부로 느껴본 바가 없다. 메르스가 국내에 유입되었다고 떠들석 할 때도 별것 아닌 걸로 저러는 구나 생각했다. 주위 대부분의 의사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의사들조차 시간이 흐르면서 공포에 휩싸였다. 공포가 아니라 불안이라고 해야겠다.

그것은 메르스라는 감염체 때문이 아니라, '무지'와 '불신' 때문이었으니까.

메르스가 국내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메르스라는 감염체에 대한 온갖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정보가 일반인들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내용들이었고, 더 큰 문제는 정부, 언론, 의료계 등 믿을만하게 문제를 처리해야 할 집단에서 나오는 정보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었다. 정부에서 하는 말이 달랐고, 언론에서 하는 말이 달랐으며, 의료계에서 하는 말이 달랐고, 심지어 정부 부처에 따라서도 하는 말이 달랐다. 이런 정보의 불일치는 메르스를 알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고, 사회를 불신에 빠뜨렸으며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1.

우리나라 의료계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의사도 당시, 메르스라는 감염체의 정확한 실체를 알 수 없게 되었었다. 이 감염체가 어느 정도의 전염력을 가지고 있는지, 감염 되었을 경우 치사율은 어느 정도인지, 어느 정도 조심하면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지. 명확한게 없었다.

인간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다. 

예를 들어보자. 아침에 갑작스럽게 시작된 기침이 멈추지 않으면서 소량의 피가 묻어 나왔다. 이런적이 없었는데, 왜 이럴까 생각하기 시작한다. 단순 감기에도 이럴 수 있겠지. 코피가 뒤로 넘어가서 그런가 보다. 라는 생각에서 시작해서 결핵인가? 암인가? 온갖 알 수 없는 실체들이 머릿속을 휘저으면서 혼란과 불안에 빠지기 시작한다.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의사를 찾아간다. 의사가 검진 후 진단을 내려준다. 단순한 감기네요. 기침을 너무 심하게 하면 가끔 주위 모세혈관이 터져서 피가 소량 묻어 나올 수 있습니다. 라고 설명해준다. 알 수 없는 실체가 명확하게 바뀌면서 불안은 사라진다.

고대에는 알 수 없는 자연 현상들이 무수히 많았다. 번개, 천둥 등 이런 것들이 어떻게, 왜 생기는지 알 수 없었고, 알 수 없는 존재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었다. 이런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고대 사람들은 번개를 하늘의 신 제우스가 부리는 마법 같은 힘으로 명명하였고, 명확해진 실체에 대해 사람들은 불안함을 내려 놓을 수 있었다.

 

2. 

신 프로이드 학파의 대표적 인물로 정신-사회 발달이라고 부르는 인격발달의 단계 이론을 개발한 에릭 에릭슨이라는 학자가 있다. 그는 인격이 전 생애를 통하여 발달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이를 여덟 단계로 분류하였다. 에릭슨에 의하면 각 단계마다 극복해야 할 독특한 사회적 갈등과 과제가 있으며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다음 단계로 무난하게 발달, 성숙해가지만 그러지 못했을 경우에는 다음 단계의 과제를 완수하지 못할 뿐더러 지속적으로 위기에 부딪힌다고 하였다. 이 정신-사회 발달 이론에서 가장 기본적인 첫 단계에서 성취해야 할 과제가 '신뢰', 즉 믿음이다. 어머니의 일관되고 애정 어린 돌봄을 통해 아이는 기본적 신뢰감을 갖게 된다. 이런 기본적인 신뢰가 형성되지 못하면 심한 사회적 위축과 퇴행을 초래할 수도 있으며, 공허하고 의미 있는 것이 없다는 염세주의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런 신뢰가 없는 사회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믿음이 없는 사회는 구성원들을 불안에 빠뜨려 점점 위축되게 만들 것이다.

 

(불안 :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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