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뇌부자들 [9화 Part 2-1]

 

K씨의 사연:

 

저는 30대 초반 여성입니다. 저는 자존감이 굉장히 낮습니다.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며 다른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할까봐 항상 신경 쓰는 제 모습에 자존감이 낮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모든 부분에서 낮은 자존감이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노력하기 때문에 일이나 외적인 부분에서는 칭찬도 많이 받거든요.

 

그렇지만 연애만 하면 자존감이 너무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1년 정도 교제한 남자친구가 있는데 사내에서 비밀연애 하다가 제가 다른 회사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남자친구 직장에 예쁘고 괜찮은 여자가 후임으로 들어왔고 그 외에도 여자 직원들이 몇 명 새로 들어왔는데 밥 먹을 때 혹시 그 중 한 명하고 단둘이 먹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달 뒤에 1박2일로 워크숍 간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벌써부터 가슴이 조마조마 합니다. 갈 때 또 여자애들 픽업해서 데려가겠구나, 밤새 술 마시며 웃고 떠들겠구나 같은 생각이 듭니다. 곧 분명히 저를 떠나 다른 여자에게 갈 것 같습니다.

 

계속 의심과 질투가 생기니 싸움이 많아지고 불안감은 더욱 커집니다. 이전 연애도 이런 식으로 의심하고 질투하다가 결국 차였습니다. 하지만 이전 남자친구는 다른 여자와 교제 중에 저와 연애를 시작했고, 연애 후에도 다른 여자들을 만나는 일들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이렇게 상대방 때문에 헤어졌는데도 몇 년은 힘들어서 다른 남자를 못 만났어요.

 

사진_픽사베이

 

현재 남자친구도 여자친구가 있었던 중에 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모로 저한테 믿음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자존감 문제나 의심하는 문제로 힘들다고 얘기를 했기 때문에 남자친구가 끊임없이 애정표현을 해주려고 하지만 돌아서면 의심하는 저 때문에 많이 힘들어합니다.

 

남자는 모두 바람을 피운다, 여자친구 혹은 와이프에 절대 만족 못하고 누가 됐든 새로운 여자를 원하고 그 사람들하고 시간 보내는 걸 더 좋아한다, 남자는 여자를 속이는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학생 때 아버지가 바람 피운 일은 있어요. 그게 엄마한테는 큰 일이었지만 저에게 그렇게 화나는 일이라든가 큰 문제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그 당시 성인이었던 언니들 역시 남자를 못 믿는 부분, 자존감이 낮은 부분이 비슷합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는 제가 특히 심합니다.

 

저는 정말 왜 이러는 걸까요? 그리고 어떻게 할까요? 상담을 받아야 할 것 같아 상담센터를 찾고 있긴 합니다. 이게 도움이 되긴 할까요?

 

뇌부자들의 답장:

 

안녕하세요, 뇌부자들입니다. 남자친구를 끊임없이 의심해서 본인도 힘들고 남자친구도 힘든 상황이라는 사연을 보내주셨네요. 대인 관계 중에서도 가장 가까우면서도 어렵고, 영향을 크게 주는 것이 연인관계인데 반복적으로 이 연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자존감이 낮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남의 눈치를 많이 본다거나 거절을 부탁하지 못하는 모습은 낮은 자존감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도 낮은 자존감 때문에 ‘나는 남자친구에게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없어’라고 생각하고 계실 수도 있겠네요. 실제로 낮은 자존감 때문에 상대방을 의심하게 되는 경우는 진료 현장에서도 굉장히 흔하게 본답니다. 하지만, 남자친구에 대해 반복적으로 의심하는 것을 낮은 자존감만으로는 다 설명하기 어렵네요. 다른 대인관계나 일, 취미, 자기관리 등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제외하고는 잘 해내고 계시기 때문이죠.

 

그래서 K님이 학생일 때 겪은 아버지의 외도 사건이 ‘남자는 항상 바람을 피운다, 여자를 속인다’는 남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만든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K님께서 ‘어머니에게만 큰 일이고 저한테는 그렇게 화나는 일이나 큰 문제는 아니었다’ 라고 하셨는데 오히려 너무 크게 영향을 주는 사건이라 이렇게 표현을 하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K님 본인을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요. 흔히 강한 부정은 긍정이다 라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남자친구가 옆에서 한결 같은 신뢰를 보여주는데도 K님께서는 믿지 못하고 계시죠. 이런 의심과 불안은 아버지의 외도로 인해 가졌던 부정적인 감정과 불신이 남자친구에게 재현되는 전이 현상의 결과일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부모에게서 심리적으로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학생 때 그런 일이 있었다면 본인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 같이 크게 느껴질 수도 있거든요. 당시 사건의 피해자인 어머니와 본인을 동일시했기 때문에,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외도와 비슷한 경험을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남자친구한테 강한 전이가 쉽게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가정도 해 봤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또 하나, K님의 연애 패턴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봤어요. K님의 경험을 봤을 때 여자친구가 있는 남자와 만나게 되면 다른 사람보다 더 불안하고 힘드실 것은 분명한데도 또 다시 여자친구 있는 남자와 교제하게 되셨잖아요. 이 패턴을 ‘반복강박’이라는 개념으로 설명을 드릴게요.

 

‘반복강박’은 프로이트가 이야기한 개념으로 한 번 크게 당하고 나서도 다시 그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과거 상황을 일부러 반복하는 것이죠. 물론 자신은 본인이 일부러 반복한다는 것을 의식 하지 못하고 문제의 원인을 다른데서 찾으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딸이 아버지를 미워했는데도 술 문제가 있는 남성과 반복해서 만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잘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어서 자꾸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죠.

 

반복강박의 다른 이유로 자기파괴 욕구를 들기도 해요. 사람은 쾌락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파괴 욕구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본인도 잘못인 것을 알지만 그 욕구 때문에 반복강박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트라우마를 처음 겪을 때는 수동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기 마련인데,  이후에 트라우마와 유사한 상황을 반복해서 겪으면서 이전과는 다르게 자신이 능동적으로 그 상황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에 반복강박을 보인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K님의 경우에는 외도를 한 아버지를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과거 탓에 아버지와 비슷한 속성을 가진 남자들을 일부러 만나면서 능동적으로 사랑을 쟁취하는 경험을 함으로써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극복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구가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대개 이런 반복강박을 통한 시도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K님도 지금 계속 의심 때문에 불안해 하고 괴로워하시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사진_픽셀

 

K님께서 왜 이렇게 힘드신지에 대해서 낮은 자존감, 전이, 반복강박으로 설명을 드려봤어요. ‘무슨 소리야, 내가 이렇게 힘든 게 내가 선택한 거라고?’라면서 받아들이기 힘드실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말씀 드린 내용은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겠구나, 라는 여러 가능성 중 하나로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조언을 드리자면 K님이 끊임없이 불안하고 의심하는 스스로에 대해 자책하는 생각을 줄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남자친구를 의심하게 되는 상황은 불안이 높아질 때 발생하기 쉬운데 이런 불안감은 마음대로 조절하기 어려워요. 의심과 불안에 빠졌다마 감정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나면 ‘또 남자친구를 의심하다니 난 정말 한심해’라며 자책하시기가 쉬운데, 그냥 ‘내가 또 불안해서 이런 마음이 들었구나’ 라고 생각을 해 보세요. 본인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비난도, 긍정도 하지 않고 중립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거죠. 내가 왜 또 그랬을까 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 보다 한결 편안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상담이 도움이 되는지 질문해 주셨는데 상담치료라는 게 결국 본인의 마음속 문제를 알아차리고 왜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거든요. 치료를 통해 본인의 마음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과도하게 남자친구를 의심하는 일도 줄어들고 의심을 한다 해도 힘든 정도가 줄어드실 겁니다. 본인에 대해 더 잘 알고 이번에 힘든 고비만 잘 넘기신다면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통해서 남자에 대한 기본적인 불신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희가 드린 말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뇌부자들 드림.

 

 

해당사연 링크: http://www.podbbang.com/ch/13552?e=22299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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