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물만 마셔도 살이 쪄요” 물만 먹어서 정말 살이 찔리야 있겠냐만, 두툼한 뱃살과 턱을 매만지며 변명처럼 되뇌이는 소위 ‘살찌는 체질’에 대한 원망은 언제나 많은 과체중, 비만인들의 든든한 위안 아닌 위안이 되어주고 있다. 운동부족이나 식이조절 실패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변명이라고는 하지만, 먹고 싶은 대로 원 없이 먹으면서도 가느다란 허리에 V라인 얼굴을 자랑하는 친구들이나 tv 속의 연예인들을 보면 정말 ‘살찌는 체질’이라는 저주가 나에게 씌인건 아닌지 돌이켜 보게 되기 마련이다. 심지어 제발 살찌고 싶어 고민이라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붙는다는 빼빼마른 사람들까지 심심찮게 보이니 말이다.

사진 픽사베이

날씬한 몸매에 대한 동경 뿐 아니라 각종 성인병의 위험까지, 체중 조절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신체적 요구는 날이 가면 갈수록 현대인들을 압박해오고 있다. 그리고 이는 정신건강의학과 영역에서도 피해갈 수 없는 크나큰 고민거리 중 하나로 환자들과 의사들을 괴롭혀오고 있다. ‘항정신병 약제’라 분류되는 조현병이나 양극성 장애의 주된 치료제들 중에서는 탁월한 효과와 낮은 부작용을 가지고 있지만 장기간 복용할 경우 심각한 체중증가와 대사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약물들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체중 증가 및 외모, 미용에 민감한 젊은 여성 환자들이나 성인병에 위험한 노인, 당뇨환자들 같은 경우에는 증상 호전에 무척 탁월한 약제들이 있음에도 어쩔 수 없이 다른 치료제로 눈길을 돌려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렇다면 살찌는 약 먹는 환자들을 ‘살 안찌는 체질’로 만들어줄 수만 있다면야 정신증 치료의 왕도가 열릴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비단 정신증 환자들만이 아니라, ‘살 안찌는 체질’ 만드는 방법이라는 것이 실제로 개발만 가능하다면, 그야말로 현대의 연금술에 비견할만한 비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Molecular Psychiatry 라는 저명한 정신과 학술 잡지 산하의 Translational Psychiatry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올란자핀’이라는 대사장애, 체중증가를 일으키는 항정신병 약물을 투여한 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장내 세균총’에 따른 쥐의 체중 변화에 유의한 차이가 있음이 밝혀졌다. 대장 내에 군락을 이루며 살고 있는 세균의 구성에 따라, 올란자핀을 투여하여도 살이 찌지 않거나 혈당 수치가 올라가지 않기도 하더라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장에 살고 있는 세균들은 실질적으로 지질 대사 과정에 참여하는 유전자(FAS)의 발현이나 콜레스테롤 조절 효소 (Acetyl Co-A carboxlase-1) 등의 작용에 영향을 미쳐, 같은 양의 음식 섭취와 같은 양의 활동량을 보이는 집단이라도 세균총 구성에 따라 서로 다른 체중변화와 대사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게 한다. 즉, 우리들 뱃속의 세균들이 우리의 체질. 살찌는 체질과 살 안찌는 체질의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 성인 남성의 경우, 우리의 몸은 한 사람당 약 60조개의 세포로 이루어져있다고 한다. 그리고 일반적인 보통 사람들의 대장에는 한 사람당 약 600조 마리의 장내 세균들이 살고 있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들보다 비교할 수도 없이 훨씬 많은 수의 세균들이 장속에 그들만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생태계는 우리가 어떤 것을 먹느냐-우리가 어떤 것을 장내에 공급하냐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순환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숙주의 대사체계를 지배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연구에서는 항생제를 경구 복용시켜 장내 세균총을 변화시켰지만 Proc Natl Acad Sci USA나 Idian J Endocrinol Metab 등의 의학저널에 실리는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직접적인 특정 세균 복용이나 정장제 투여 등을 통한 비만조절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아직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를 통해 명확한 결과가 밝혀진 바는 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장내 세균총 변화를 동반한 비정형 항정신병 약물 투여를 통해 대사 부작용 없는 탁월한 정신증 치료의 새 활로가 열릴 수 있을거라 기대해도 될지 모르겠다. 아니, 항정신병 약물 복용 환자들 이외에도, 고지혈증과 당뇨에 시름하는 수많은 환자들에게 날씬한 몸매를 꿈꾸는 더욱 수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해결책이 열릴지도 모른다.

‘물만 마셔도 살찌게 하는’ 뱃속의 불청객들에게는 계약 만료 통지를, 새로운 뱃속 손님들에게 ‘살 안찌는’ 축복의 체질을 부탁해 볼 방법에 대해서 말이다.

 

출처 : Antipsychotics and the gut microbiome: olanzapine-induced metabolic dysfunction is attenuated by antibiotic administration in the rat / Translational Psychiatry (2013) 3, e309; doi:10.1038/tp.2013.83

 

Mallappa RH, Rokana N, Duary RK, Panwar H, Batish VK, Grover S. Management

of metabolic syndrome through probiotic and prebiotic interventions. Indian J

Endocrinol Metab 2012

 

Everard A, Belzer C, Geurts L, Ouwerkerk JP, Druart C, Bindels LB et al. Cross-talk

between Akkermansia muciniphila and intestinal epithelium controls diet-induced

obesity. Proc Natl Acad Sci USA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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