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울증 치료. 항우울제를 먹어야 할까, 면담을 받아야 할까. 이제는 그 해답을 뇌영상 분석이 보다 명쾌하게 내려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뇌영상을 찍고 그 결과에 따라 우울증 치료를 위해 약을 먹어야 할지, 면담치료를 해야 할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얼마 전 저명한 정신과 학회지인 AJP(미국정신과학회지)에는 애틀란타 에모리 대학 Dunlop 박사팀의 연구가 게재되었다. 연구팀은 fMRI(기능적 뇌 MRI) 분석을 통해 아직 치료를 시작하지 못한 우울증 환자들의 치료 방향을 분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약이 잘 듣는 뇌, 약이 잘 듣지 않는 뇌가 따로 있고 면담이 잘 통하는 뇌, 면담이 영 통하지 않는 뇌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사진 Youtube

 

우울증 치료, 아니 대부분의 정신과적 치료를 크게 두 축으로 나누자면 약물치료와 면담치료로 가를 수 있을 것이다. 두 치료 모두가 오랜 기간 그 실질적인 치료적 효과를 충분히 검증 받았으며, 임상 진료 현장에서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더욱이 약물치료와 면담치료를 병행한다면 그 치료적 효과가 배가된다는 점 역시 생물학적, 임상적으로도 여러차례 증명된 바 있다.

 

“뇌”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컴퓨터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 약물치료가 분자적인 수준의 보충과 수리를 맡고 있다면, 면담치료는 소프트웨어적인 오류 보정의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두가지 모두 치료에 있어 어느 한 쪽을 외면할 수 없는 중요한 축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환자들이 두 치료를 함께 병행하기란 현실적으로 무척 어렵다는 점에 있다. 인지행동치료와 같은 근거기반의 면담치료를 하는 데에 필요한 시간적 경제적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들도 있고, 약물치료에 대한 편견과 부담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도 있다.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심하거나 약물에 반응이 그다지 없는 환자들도 있고, 인지행동치료를 해도 좀처럼 생각이나 감정의 조절을 하지 못하는 환자들도 있다.

 

환자들을 보다보면 확실히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하는 때가 있다. 면담 치료가 잘 어울리는 환자, 약이 잘 맞는 환자가 따로 정해져 있다는 느낌적인 느낌 말이다.

 

"저는 웬만하면 약은 안 먹고 스스로 이겨내보려고요. 약에 의지하고 싶지 않아요. 먹어도 별 효과도 없는 것 같고요."

 

"저는 선생님 말씀하신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어요. 잘 안되는거 같아요. 저는 그냥 약만 먹어도 마음이 편해지고 잘 자요."

 

Boadie W. Dunlop et al., Functional Connectivity of the Subcallosal Cingulate Cortex And Differential Outcomes to Treatment With Cognitive-Behavioral Therapy or Antidepressant Medication for Major Depressive Disorder, The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 Volume 174, Issue 6, June 01, 2017, pp. 533-545

 

에모리 대학의 연구팀에서는 122명의 치료 받은 적이 없는 비슷한 수준의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뇌영상의 기능적 연결 상태와 치료에 대한 반응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치료 시작 전에 환자들의 뇌 fMRI를 촬영한 뒤,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쪽은 항우울제(Escitalopram과 duloxetine)를 주고, 한 쪽은 면담치료(인지행동 치료)를 시행하여 각각의 반응을 12주간 관찰하였다. 이들이 fMRI를 통해 주로 관찰하였던 것은 ‘감정뇌’와 ‘인지/조절뇌’ 사이의 기능적인 연결 상태였다.

 

연구 결과 전반적으로 감정뇌와 인지/조절뇌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인지행동치료에 효과가 높고 약물치료는 효과가 덜할 가능성이 컸다. 반대로 연결성이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인지행동치료가 실패할 가능성이 크고 약물치료가 효과적이었다. 연구에서는 뇌의 연결 상태 스코어에 따라 인지행동치료와 약물치료 사이의 선택을 할 수 있는기준 점수를 제시했다.

 

이번 연구에서 들여다본 인지/조절뇌의 기능이나 연결상태의 의미에 대한 연구는 그 동안 다수 이루어진 바 있었다. 해당 부위는 감정조절이나 자극에 대한 판단, 분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일 수록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해석하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잘 발달해 있다는 것이다. 또 외부의 자극에 대해서 해로운것/해롭지 않은 것으로 해석하는 능력 또한 이 부위와 관계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은 인지행동치료를 받을 때에 그 예후에 무척 중요한 요인이 될 수 밖에 없다.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의 오류를 관찰하고 교정할 수 있는 힘을 강화하는 것이 인지행동치료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뇌의 감정조절 회로가 잘 발달해 있는 사람은 그 회로를 활용한 면담치료를 잘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 회로가 덜 발달해 있는 사람, 혹은 이 회로의 연결이 약해져 있는 사람들은 인지행동치료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수 있다. 면담치료를 수행하기 힘들어하거나, 치료의 실질적인 효과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항우울제의 복용은 이 감정 조절의 회로를 강화시켜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약물치료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개인의 생물학적 특성을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뇌를 찍어서 분류해 낼 수 있다는 것이 에모리대학 연구팀의 핵심이다. 다분히 증상 의존적인 임상적 우울증 치료에 객관적인 생물학적 지표(Biomarker)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_픽사베이

 

사실 임상의료는 끝없는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실패의 경험을 통한 통계적 시도를 반복할 수 밖에 없다. 수학처럼 정해진 입력에 정해진 결과가 도출되는 식의 명쾌한 논리가 통하기 어렵다. 그 중에도 특히나 복잡하고 난해해서 그 명확한 원리를 파악할 수 없는 정신의 영역에서는 더욱 그러하기 마련이다. 교과서적인 약물치료와 교과서적인 면담을 시행한다고 하여도 꼭 그 결과가 완치로 이어지란 법이 없다. 그럴 때 임상가들이 무의식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것이 바로 수많은 경험에 의한 직관이다. 이 환자는 이 약이 좋을 것 같다. 이 환자는 저 약이 좋을 것 같다. 혹은 이 환자는 면담만 받아도 좋을 것 같다. 이 환자는 면담이 효과가 없을 것 같다 하는 느낌적인 느낌 말이다.

 

현대 의학연구의 주된 역할은 임상가의 그 직관에 좀 더 객관적인 근거와 합리적인 지표를 제공해준다는 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 에모리 대학의 연구 또한 마찬가지이다. 뇌 영상을 찍어 약물-면담을 가르는 기준점을 제시해 줄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또한 명쾌할 수는 없다. 기준의 중간에 해당하는 회색분자(?)의 뇌가 있을 수도 있으며, 뇌 영상으로는 면담이 효과적이어야 하는데도 실제로는 약이 더 잘 듣는 환자가 있을 수도 있다.

 

최종적으로 질병과 싸워가는 전투를 지휘하는 데에는 의사의 임상적 판단과 환자의 치료의지가 선두에 서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에 대한 이해에 깊이를 더해주는 시도들이 반복될수록 환자들의 짐을 덜어줄 수 있는 든든한 이정표가 늘어갈 것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마음을 들여다 본다는 여정은 끝없는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과 뇌를 잇는 불가분의 연결고리를 하나씩 뜯어내는 길고긴 여정을 따라갈수록, 그 끝에서는 우리가 어떤 수준의 이해에 도달하게 될지를 자못 기대하게 된다.

 

 

참조 :Boadie W. Dunlop et al., Functional Connectivity of the Subcallosal Cingulate Cortex And Differential Outcomes to Treatment With Cognitive-Behavioral Therapy or Antidepressant Medication for Major Depressive Disorder, Am J Psychiatry, Volume 174, Issue 6, June 01, 2017, pp. 533-545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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