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일러스트 그리닥’(대표 유진수)의 김나리(좌), 오제훈(우) 일러스트레이터가 학생들에게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에 대한 소개와 체험강의를 진행하고 있다.(사진_그리닥)

 

5월 20일 토요일, 강동구 명일동에 위치한 강동진로직업체험센터 ‘상상팡팡’에서는 작지만 특별한 강의가 열렸었다. ‘상상팡팡’에서는 미래의 꿈나무들을 대상으로 생소한 직업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체험 중심의 강의를 열고 개최하고 있는데 아이들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조차 생소한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들의 강의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 날, 강의를 맡은 사람들은 ‘메디컬일러스트 그리닥’의 일러스트레이터들로 국내에서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다. 건강의학매거진 ‘아는 의사’에서 외과 전문의로 근무 중이면서 동아일보에 ‘만화 그리는 의사들’에 ‘닥터단감’을 연재하면서 동시에 ‘메디컬일러스트 그리닥’을 이끌고 있는 유진수 대표와 그와 함께 일하는 두 명의 전문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 오제훈씨와 김나리씨에게 메디컬일러스트가 무엇인지 그리고 현장의 얘기를 자세히 물어보았다.

 

아는의사 :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가 정확하게 하는 일이 무엇인가요?

 

오제훈(이하 오): 일반인들에게 의학정보를 쉽게 전달해주는 측면과 더불어, 의학 관련분야 학생의 교육이나 연구자들 간의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서도 메디컬 일러스트레이션이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은 주로 의과대학, 의학출판사 등에서 이루어진다.

 

김나리(이하 김): 신체의 부위나 구조, 의학에 필요한 자료나 정보가 일반인들이 대하기에 어렵고 복잡한데 그것을 그림 등의 매체로 보기 쉽게 표현해 주었을 때 전달력이 높아진다. 주로 병원이나 의료기기 회사, 제약 회사 등에서 필요로 한다.

 

아는의사 :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유진수(이하 유):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그림이 필요한 경우가 정말 많이 있다. 주치의 시절 환자들에게 수술동의서를 받을 때 수술에 대한 설명을 필요로 하는데 보통 종이에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을 하면 이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파워포인트로 제작을 해서 설명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외과의 경우는 수술기록지를 잘 작성해야 하는데, 정형화된 수술의 경우는 괜찮아도 특수한 경우라면 그림만큼 설명하기 좋은 방법이 없다. 수술을 그림으로 그리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그림을 부탁하기 시작했고 특히 논문에 사용하는 일러스트를 많이 그리게 되었다.

 

오 : 학창시절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다보니 사람을 잘 그리고 싶다는 욕구에서 미술해부학에 관심을 갖고 혼자 공부를 했었다.  디자인을 전공하며 게임회사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기도 했지만 잘 맞지 않아 고민하던 중, 의학출판사의 공고를 통해 이 직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입사해서 일을 해나가면서 나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 본격적으로 이 길을 가게 되었다.

 

김 : 우연한 계기에 병원에서 공고한 메디컬 일러스트 자리에 이력서를 냈고, 합격하게 되면서 이 분야를 알게 되었다. 사람의 병을 고쳐주고, 생명을 살려주는 병원에서 일한다는 것에 뿌듯함이 있었고, 그 분야에 도움이 되는 그림을 제작한다는 것에서 많은 보람을 느꼈기 때문에 결심하게 되었다.

 

메디컬일러스트는 학술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환자들에게 전문적인 정보를 쉽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사진_그리닥)

 

아는의사 : 유진수 대표 같은 경우는 의사 일을 병행하면서 그리닥을 이끌어 가고 있는데, 두 가지 일을 병행하기로 한 이유가 있는지?

 

유 : 사실 한 가지 일도 제대로 하기 힘든데 두 가지, 심지어는 만화 그리는 일까지 생각하면 세 가지 일을 해나가는 것은 무리이긴 하다. 그런데, 메디컬일러스트에 대한 수요, 특히 가장 전문적인 분야인 학술용 메디컬일러스트에 대한 수요가 충분히 있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정작 이를 공급해줄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료계에서 계속 몸담고 있을 내가 그 중간자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아는의사 :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려면 취득해야하는 자격증이 있는지?

 

오 : 외국의 경우 관련 자격증이 있기도 한데 한국에는 아직 자격증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김 : 따로 자격증이 있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드로잉 실력과 컴퓨터 기술 등이 필요하다.(포토샵, 일러스트, 3D프로그램 등)

 

아는의사 :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기 위한 준비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유 : 저 같은 경우는 따로 준비 과정은 없었다. 메디컬일러스트를 그리기 위해서는 의학지식, 의료계 실무 경험, 그림 실력이 있어야 한다. 의학지식이나 의료계 실무 경험 같은 경우는 자연스럽게 갖추게 되었고, 그림 같은 경우는 어렸을 때, ‘윈도우 95 그림판’ 시절부터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었다.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어서 와콤 신티크부터 최근에는 서피스 프로까지 타블렛을 이용해 포토샵으로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춘 적이 없었다.

 

오 : 주로 의학 정보를 시각화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림실력과 더불어 의학 정보를 이해할 수 있는 기본지식을 갖추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미술해부학을 통해 인체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 거부감 없이 이 분야에 접근할 수 있었고, 미대를 다니며 드로잉과 컴퓨터 그래픽 툴을 익혀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김 : 미술을 전공으로 공부했기 때문에, 그림 실력을 꾸준히 키워온 것이 있었다. 수작업도 중요하지만, 컴퓨터로 그림을 자유자재로 그릴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메디컬 분야이기 때문에 해부학 공부와 의학 쪽 지식을 두루 접하고 공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아는의사 : 국내에 메디컬일러스트를 전문적으로 배우는 과정이 있는가?

 

오: 2016년 신설된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조형예술학과 바이오메디컬아트 전공은 국내 뿐 아니라 아시아권 최초로 개설된 석사과정(2년) 프로그램이다. 미술대학 출신 외에도 생물학과, 간호학과, 수의학과 등 다양한 베이스의 전공자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다.

 

김 : 학교에는 해부학, 2D, 3D 프로그램 등의 수업이 마련되어 있다. 메디컬 일러스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다 전문적인 메디컬 아트 분야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바이오메디컬아트 과정에서는 해부학을 기초로 한 수업을 통해 보다 전문적인 메디컬일러스트레이션을 배울 수 있다.(사진_그리닥)

 

아는의사 : 오제훈씨는 의학전문 출판사에서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다고 들었다. 셋 중에 경력이 제일 긴 편인데, 처음 일했을 때와 지금 현재, 국내 메디컬일러스트의 수준과 시장규모는 어떻게 변했는가?

 

오 : 처음 일을 시작했던 10년 전과 비교하면 관심을 가지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 대학병원이나 의학출판사 등에서 활동하는 인력들도 다소 늘어났는데, 아직은 더 활성화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전에는 외국 자료들을 거의 그대로 카피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요즘은 저작권법도 강화되고 의뢰자들의 인식도 개선이 되었기 때문에 독창성이나 완성도면에서 더 높은 수준의 요구를 받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그림 외에 3D 프로그램을 이용해 제작된 컨텐츠에 대한 관심도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아는의사 : 김나리씨는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다고 들었다. 병원에 소속되어서 그림을 그려야 할 일이 많이 있는가? 다른 병원들도 전담 직원을 뽑는가? 병원에 소속되어 있을 때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

 

김: 대형 병원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그림을 요구하는 부서가 많이 있었다. 일반적인 의학적 신체 내부에 관련한 그림 뿐 아니라, 영양, 생활 습관 등 일반인이 접하기에 쉬운 캐릭터 일러스트를 원하는 일도 있었고, 다양하게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아직 병원 내에서 일러스트레이터가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 적은 편이다. 병원에 소속되어 일했을 때의 장점은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과, 병원 내에 있었기 때문에 의학 분야의 일을 좀 더 쉽게 보고 접하고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단점은, 정해진 시간 내에 많은 양의 그림을 요구할 때가 많았어서 스스로의 시간을 분배하는 것에서 다소 자유롭지 못한 점이 있었다.

 

아는의사 :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쁘거나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던 경험이 있는가?

 

유 : 제가 그린 일러스트가 논문으로 출간될 때, 그 연구를 시행한 분들과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제일 뿌듯합니다. 특히 메디컬일러스트 한 장이 그 논문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논문이 출간될 때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오 : 학회 교과서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책이든지 혹은 소수의 전문가들이 연구자료를 공유하는 논문이든지, 저자와 긴밀히 소통하며 좋은 작업물을 만들기 위해 협력할 수 있을 때 동기부여가 많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결과 의미있는 작업물이 완성되어 내가 맡은 역할을 해냈다고 느낄 때 큰 보람을 느꼈다.

 

김 : 병원에서 일하던 시절, 세계적인 의학잡지에 내 그림이 표지로 실렸을 때 정말 뿌듯했다. 많은 의료인들이 그 이미지를 보고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자긍심이 느껴졌다. 그 외에 하는 일의 대부분이 보람이 되고, 비록 대상이 소수일지라도, 정말 사람들에게 필요한 그림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매 순간 작업이 완성되면 항상 기쁨을 느낀다.

 

아는의사 : 가장 힘들었거나 '괜히 했다'는 후회를 했던 경험에 대해서 얘기해준다면?

 

유 : 메디컬일러스트의 학술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과 작업을 할 때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요즘은 국내 연구자들이 전세계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저작권에 대한 인식도 매우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오 : 의학출판사에서 일할 때 바쁜 시기가 되면 작업량이 너무 많아서 매 작업마다 필요한 노력을 쏟지 못하는 부분이 아쉬웠고, 의학 지식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자료를 이해하는 데 한계를 느낄 때 이 분야를 계속 할 것인지 되묻곤 했었다.

 

김 : 아무래도 작업이 의학 분야이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고 공부하기 까다로운 점들이 있었는데, 가끔 너무 체력적으로나 심적으로 지치면 불평이 올라오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힘든 과정이 꼭 필요한 것 같다.

 

아는의사 :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시간 외에는 어떤 활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

 

유: 대외적으로는 동아일보에 메디컬웹툰 닥터단감을 연재하고 있고 건강의학매체인 ‘아는의사’에 건강칼럼을 주기적으로 연재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다. 메디컬웹툰이나 메디컬일러스트는 시간을 쪼개서 하는 일이다.

 

오: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작업을 하는 외에도 관련된 의학분야의 지식을 쌓기 위해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다른 분야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도 종종 하곤 했는데, 일과 학업으로 바빠지면서 모두 내려놓게 되었다.

 

김 : 원래 미술 자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고, 그리고 싶은 분야가 많았기 때문에 틈틈이 스케치를 하는 편이다. 최근에 하는 작업은 성경에 관한 일러스트 이미지를 그려보고 있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가치관 또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고 또 줄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편이다.

 

아는의사 : 그리고 현재 전체 업무시간 중에 몇 퍼센트 정도의 시간 동안 메디컬일러스트 활동을 하고 계시는지? 만약 매일 그리고 모든 시간을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트의 활동만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요가 생긴다면 그렇게 할 것인지?

 

유 :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한다. 나는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에 전념할 생각은 없지만 제훈씨나 나리씨가 전념할 정도로 만들어주고 싶다.

 

오 : 관련분야의 학업까지 포함한다면 90% 이상의 시간을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활동하고 있다. 학업을 마친 이후에도 메디컬 일러스트레이션에만 전념할 수 있는 상황이 허락된다면 그렇게 할 계획이다.

 

김 : 현재는 메디컬아트 분야의 공부를 병행해서 하고 있기 때문에, 내 삶의 80퍼센트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이 후에 나의 모든 시간을 메디컬 일러스트 일로 할 수 있는 수요가 생긴다면, 먼저는 참 감사할 것 같고 그러한 기회를 많이 갖고 싶기도 하다.

 

유진수 대표가 사용하는 서피스 프로 4. 그는 5년 전부터 타블렛PC만을 고집하고 있다.(그리닥 홈페이지 발췌)

 

아는의사 : 세 분은 각각 어떤 도구를 활용해서 메디컬일러스트를 그리는가?

 

유: 저는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의 서피스 프로 4를 쓰고 있다. 펜을 활용할 수 있는 타블렛의 기능 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구동하기 위한 노트북으로서의 가치를 모두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삼성의 슬레이트PC와 서피스 프로 1을 사용했었다. 프로그램은 옛날부터 포토샵을 활용하고 있었다. 전문적으로 미술을 배운 적이 없지만 포토샵 덕분에 그림을 잘 그리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웃음)

 

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부터 와콤사의 인튜어스 타블렛으로 작업을 해오다가, 최근에 휴대성을 고려해서 태블릿PC인 삼성 갤럭시북을 구입해서 적응 중이다. 프로그램은 어도비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메디컬 일러스트레이션 분야가 수정작업이 많은 편이기 때문에 초반작업에는 수정이 용이한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을 많이 사용한다.

 

김: 주로 포토샵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린다. 학부시절 자동차 디자인을 준비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타블렛으로 포토샵 프로그램을 이용해 그림 그리는 훈련을 많이 했었다. 덕분에 자유자재로 컴퓨터를 이용해 그리는 기술들을 많이 터득했고, 현재까지 그 능력을 마음껏 활용하고 있다.
도구로는 Microsoft사의 Surface Pro 를 사용하고 있다. 펜으로 그림 그릴 일이 많고, 또 이동이 잦기 때문에 나의 상황상 가장 적합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상상팡팡’의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 강의에 참여한 학생이 그린 닥터단감 (사진_그리닥)

 

아는의사 : 마지막으로 메디컬 일러스트에 대해서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유 : 의사들 입장에서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는 최고의 통역가, 그 이상” 이다.

오 : 그림을 통해 의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작업.

김 : 메디컬 일러스트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위한 예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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