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_픽사베이

 

전문가는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정의됩니다. 의사는 이런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서 지식과 경험을 통하여 환자의 병을 진단하고, 원인을 찾아내고 그에 맞는 치료를 권합니다. 그렇지만 환자들이 의학적 조언을 듣지 않을 때 '나는 나름 전문가라고 생각해서 말해 주는데 말발이 서지를 않네.’, '내가 불필요한 검사를 권한다고 생각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60대 한 환자가 병원에 오기 직전에 발생한 명치 부위의 심한 통증으로 병원에 왔습니다. 환자는 통증이 걷다가 발생하였다고 말하며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었습니다. 환자에게 우선 심전도 검사를 권유하였습니다. '심전도에서 이상이 있으면 바로 상급 병원으로 보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환자는 본인이 급체(急滯) 한 것이므로 기본적인 심전도 검사조차도 원하지 않았고 약만 달라고 하였습니다. 

 

의사로서 경험하였던 비슷한 증상의 환자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환자는 위(胃)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심근경색 관련 통증으로 명치 부위가 아프다고 온 환자들도 있었고, 위장관 천공으로 내원한 환자들도 있었고, 충수의 끝이 간 부위까지 올라와서 명치 부위의 심한 통증으로 내원한 급성 충수염 환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에 비추어 갑작스럽게 식은땀을 흘리는 60대 환자에게 심전도를 권유하는 것은 급성심근경색을 감별하기 위한 기본적인 과정이었습니다. 심전도에서 이상이 있다면 그 이후의 검사는 의미가 없고 빨리 상급 병원으로 의뢰하는 것이 생명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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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직의 때 경험하였던 비슷한 환자가 생각났습니다. 50대 남자로 일주일 전부터 목의 뒷부분과 가슴 상부의 조이는 듯한 통증으로 병원을 방문하였습니다. 방문 하루 전에 다른 병원에서 복부 CT, 초음파, 혈액검사, 심전도 검사를 시행 받았으나 특이 소견 없었다고 하며 상기 통증이 지속되어 신경외과에 방문하였습니다. 환자는 목에 대한 검사와 치료를 원하였으나 목과 함께 흉부 앞부분의 통증이 유발되는 것이 신경외과적인 원인과 맞지 않다고 판단되어 신경외과에서 다시 내과로 의뢰되었습니다. 
 
환자의 표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녔는데도 확실하게 통증의 원인을 밝히지 못 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 내과 진료를 보라고 하니 불만스러운 표정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였습니다.
 
목의 통증을 환자는 먼저 이야기하였으나 내과 의사로서 가장 신경이 쓰는 것은 흉통이었습니다. 통증 양상은 조이는 것 같고 주로 한밤 중과 새벽에 심해지며 가만히 있어도 통증이 있으나 움직이면 더 심해지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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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심근경색이 의심되어 다시 심전도 검사를 시행하였습니다. 지난 검사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이번 심전도 검사는 심근 경색 특징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후의 검사를 작은 병원에서 추가로 진행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습니다. 환자는 가능한 한 빨리 관상동맥조영술을 시행하여 심장의 어느 혈관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환자를 상급 병원으로 빨리 이송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60대 환자에게도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고 심전도를 진행하였습니다. 역시 심전도가 이상했습니다. 만약 ‘환자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검사가 진행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고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면?' 하는 아찔한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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