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해지는 데이트 폭력

사진 픽사베이

작년 3월, 국내 한 의학전문대학원에서 남학생이 동기 여학생을 4시간 가량 감금·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이에 대해 법원이 ‘가해자의 학업중단’을 우려해 벌금형을 선고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SNS 등에 피해 여학생 폭행 녹취록과 의전원 데이트 폭력 피해자가 올린 글 전문이 공개되었고, 대학 측은 이슈가 불거지자 가해 학생에게 제재를 가하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다.

데이트 폭력(dating abuse)이란 서로 교제하는 미혼의 동반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위협 또는 폭력 그 자체이다. 동반자 중 한쪽이 폭력을 이용해 다른 한 쪽의 행동을 통제할 때도 데이트 폭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데이트 폭력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논외로 치더라도, 최근 매체에서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흔해진 듯 하다. 유명인들조차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로 구설에 오르기도 하고, 어떤 유명인들은 자신의 폭력 피해 사실을 용기 있게 방송에서 밝히기도 하였다.

이렇게 자주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들리는 것은 그 빈도와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최근 5년간 애인관계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폭행이나 성폭행 등을 당한 사람은 3만 6천명에 달하며, 폭행치사 등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290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평균 스무명 가량이 데이트폭력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연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2010년 371명, 2011년 388명, 2012년 407건, 2013년 533건 2014년 678건으로 5년 새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해가 지날수록 증가하는 폭력에는 사회적인 인식도 문제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육대 서경현(상담심리학과) 교수가 한국, 몽골, 필리핀, 러시아 대학생 천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데이트 폭력에 대한 태도는 한국 대학생이 가장 관대했다.

상대가 헤어지자고 할 때, 술 취해 이성을 잃고 행동할 때, 논쟁하다가 상대방이 먼저 때릴 때, 거짓말을 했을 때, 욕을 섞어 자신을 불렀을 때 등 8가지 분쟁 상황을 주고 이성 친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해 답한 결과다. 1-절대 안 된다 2-심하지 않으면 괜찮다 3-그럴 수도 있다 4-맞을 짓을 했으니 당연하다(8~32점, 낮을수록 폭력에 반대)로 점수를 낸 결과 한국 학생은 평균 13.06점으로 여러 나라 중 가장 높은 점수로 폭력에 대한 관대함을 드러냈다.

이런 사회적 상황 안에서 데이트 폭력을 가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성향이 더해서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들의 성향을 보면, 몇몇은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을 정해주면서 과도하게 상대방을 제어하려 하고, 피해자 주위의 인간관계까지 파고들어 나쁜 소문을 퍼뜨리기도 한다. 그리고 몇몇은 상대에 대한 강한 집착과 성적 욕구를 사랑이라고 믿기도 한다. 과도한 부탁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거절로 받아들여 분노하거나 더 나아가서 거절당한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폭력이 일어난다. 한 번 폭력을 가하고 학대하기 시작하면 그 학대 행동 자체가 강화인자가 되어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들 중 심한 경우는 정신과 질환 중 우울증과 편집성 성격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반사회성 성격장애 같은 진단에 부합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분노조절의 문제나 물질사용장애(특히 알코올)와도 관련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외에도 어린 시절 가정에서 구타를 많이 보았던 경험이 있거나, 성격이 미숙하고 의존적이며 자신감이 없거나, 사회적 및 개인적인 좌절감과 부적절감을 겪을 때 여자친구나 아내를 구타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역동의 측면에서는 ‘공격자와의 동일시(identification with aggressor)‘ 라는 방어기제와 관련이 있다고 보며, 남성 우월감을 병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데이트 폭력은 가정 폭력과 그 양상이 매우 비슷하다. 실제로 미국의 LA에서는 데이트 폭력을 가정 폭력으로 분류하기도 하고,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결혼 후에도 또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도 있다. 데이트 폭력도 이렇게 피해가 막심한데, 이미 결혼을 한 뒤에는 말할 것도 없다. 실제로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은 집을 나와도 생계가 막연하다는 점, 돌볼 어린 자녀가 있다는 점 때문에 더 큰 고통을 받는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남녀가 만나 서로의 원하는 바를 충족시키기 위해 각자의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갈등을 빚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는 당연히 지켜야 할 선 안에서 이루어져야만 관계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 공격자와의 동일시(identification with aggressor)

피해자가 자신을 공격했던 사람에 대한 복수심과 공격을 당했을 때의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공격자를 닮아 가는 것. 두려워하는 대상과 닮고 비슷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대상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다. 학원 폭력의 피해자였던 학생이 나중에 가해자가 되는 것, 유괴 되었던 피해자가 나중에 가해자와 공범이 되는 스톡홀름 증후군도 공격자와의 동일시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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