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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 직접 보고 느끼신 적이 있나요?

 

실습으로 각 과를 돌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던 의대생 시절, 제게 가장 감명 깊었던 기억은 산부인과 분만실에서의 경험이었습니다.

 

이미 여러 예비 엄마들이 침상에 누워 새 생명과 만날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곳, 분만실입니다. 그런데 그 밖에서 또 다른 산모가 주기적인 진통이 오는 것 같다며 문을 두드립니다. 학생인 저는 침상을 배정하고, 산부인과만의 특별한 문진인 임신 과거력과, 출산 과거력, 그리고 분만 예정일 등을 기록해 당직 산부인과 전공의 선생님께 연락합니다.

 

그럼 전공의 선생님은 초음파로 아기의 상태를 확인하고 태아 심박동기를 달아놓고 수술을 준비하거나 분만실에서 대기하게 됩니다. 그렇게 분만실에 입원한 산모는 이제 그 결실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아마도 산모들은 열 달 간 뱃속의 아기를 키우면서 입덧, 허리 통증 등 여러 어려운 과정을 지나왔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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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 점점 진통이 잦아오고 그 강도가 심해지면 전공의 선생님이 내진을 통해 자궁 경부가 얼마나 열려가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그러다 극심한 진통에 신음이 비명으로 바뀌어 갈 때쯤, 숙련된 분만실 간호사들이 출산 전용 침대를 준비하고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동방박사처럼 긴장한 채 왕자님, 또는 공주님의 탄생을 기다리게 됩니다.

 

드디어 긴긴 여정의 끝에서 마침내 가족들, 의료진과 함께 엄청난 진통을 겪으면서 출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생명의 탄생이 얼마나 경이롭고 장엄한 것인지 저도 모르게 울컥해집니다. 매번 아기 엄마, 아빠와 함께 제 눈에도 감동의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면 그 과정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특별한 순간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특별하고 장엄한 순간에, 산모는 위험하고 험난한 산을 넘습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전공의 수련 중에 있던 일입니다.

 

날씨가 워낙 추워 응급실에 환자가 적었던 어느 한겨울 날, 산부인과 외래에서 응급실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근처 산부인과 의원에서 출산 중이던 환자에 이상 증상이 있어 응급실로 이송 중이니 처치를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자세한 상황이나 이상 원인을 아는지 물었으나 거기까진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당시 수련을 받던 병원은 산부인과 응급실이 따로 위치해 있었습니다. 어지간히 위험한 상태가 아니면 보통 산모는 산부인과 응급실로 이송되게 마련인데 응급실로 연락이 온 것을 보니 상태가 심상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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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요란한 앰뷸런스 소리와 함께 환자가 도착했습니다. 의식은 있었으나 명료하지 않았고, 맥박이 무려 150회가 넘는 데다 열은 40도에 육박하는 상황. 정상 심박동이 60~80회, 정상 체온이 36.0~37.5도이니 이 정도면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산모를 보호하며 오신 동네 산부인과 원장님 말씀으로는, 환자는 그날 임신 기간을 다 채우고 정상적인 자연분만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분만 몇 시간 뒤 갑자기 호흡곤란을 호소하면서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을 했고, 이후 바로 의식이 떨어지며 심박동 증가를 보여 응급실로 옮기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일 분만 뒤 호흡곤란 증상이 발생했고 이후 의식이 없어지면서 열이 났다면, 폐동맥 색전증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출산 직후 다리 혈관의 혈류를 막고 있던 자궁이 가벼워지면서 혈관 내에서 반쯤 굳은 혈전이 혈관을 타고 우심방, 우심실을 거쳐 폐동맥으로 들어가 막히면서 발생하는 질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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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의식장애의 원인으로, 분만하면서 힘을 주다 발생한 뇌출혈을 먼저 감별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우선 같이 오신 보호자께 기관 삽관 및 진정제 사용이 필요한 상태임을 설명했습니다. 보호자는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일단 필요한 조치는 다 해달라며 협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다행히 머리 CT 검사 결과 뇌출혈 소견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혈전용해제 투여를 시작했고 그 사이 확인된 폐동맥 조영 CT에서는 큰 혈전들이 폐동맥을 막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로써 출산 직후 발생한 폐동맥 색전증이 진단되었고 다행히 혈전용해제에 반응이 있어 서서히 상태가 좋아지는 것을 확인하고 중환자실로 환자를 옮길 수 있었습니다.

 

산모는 비교적 젊은 여성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른 질환으로 입원하는 환자의 경우와 달리 건강한 상태로 성공적인 출산을 마치고 퇴원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하지만 임신 기간엔 신체 내에 많은 변화가 있어 당황스러운 상황이 간혹 발생합니다.

 

가령 임신 중에는 혈류량이 늘고 체중도 늘기 때문에 임신 전보다 심혈관계에 많은 부하가 걸려 심질환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또한 임신 후기로 갈수록 무거워지는 자궁에 의해 다리 혈관이 눌려 정맥 환류가 나빠지면서 심부정맥 혈전증이 잘 발생하게 됩니다.

 

특히 요즘에는 첫 출산 연령이 많이 늦어지고 있어서 임신성 당뇨나 전자간증(임신성 고혈압에 관련된 경련, 신부전 등이 발생하는 질환군)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앞에 얘기했던 출산 직후 생기는 무서운 질환도 발생할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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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실을 모르거나 별 탈 없이 출산을 마치셨던 분들께서 ‘기껏해야 하나둘 낳으면서 산부인과에 산후조리원에 뭐 그리 호들갑이냐’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제가 산모 입장이라면 참 서운할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출산율이 낮은 시기에 참으로 큰일을 했구나' 하는 마음으로 이해하고 보듬어주시는 어른으로서의 모습, 기대해도 될까요?

 

그리고 세상의 모든 엄마들께, 감동의 박수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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