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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Her) - 인공지능의 시대, 정신과 의사의 정체성정신과 의사가 읽어주는 영화, 일곱 번째 이야기
유길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7.06.09 07:37

[정신의학신문 : 의정부 성모사랑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유길상 전문의]

 

사진_ 영화 her (수입 더쿱 / 배급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2016년 3월, 구글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 열리기 전, 인공 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이 인간을 이길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알파고는 75억 지구인을 대표하는 이세돌 기사를 무참히 짓밟았다. 이세돌 9단이 다섯 번의 대국 중 네 번째 대국을 이겼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 승리는 아마도 인간이 바둑에서 인공 지능에 거둔 마지막 승리로 기억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인공 지능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에 대해 설렘보다는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고 있다. 그 이유는 지금 우리가 하는 많은 일들을 인공 지능이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염려했던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현재 직업에서 입지가 좁아지거나 더욱이는 직업군이 사라질 수도 있다. 한 연구에 의하면 국내 직업 종사자의 61.3%가 2025년에는 인공 지능, 로봇에 의해 대체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사진 픽사베이

 

의학은 고도의 지식과 섬세한 기술을 요구하는 분야이고 따라서 인공 지능, 로봇이 절대 대체할 수 없는 분야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의학도 인공 지능의 영향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이미 국내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2015년 9월부터 IBM사의 인공 지능, 왓슨 (Watson)을 암 환자 진료에 이용하고 있다. 왓슨은 환자의 정형 및 비정형 자료의 의미와 맥락을 분석한 후 환자에게 최적화된 치료 옵션을 제시한다. 많은 환자들이 왓슨이 제시한 치료 옵션을 선택하였고 만족도 또한 높았다.

 

정신건강의학은 인공 지능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까? 정신과 진료는 크게 약물 치료 (Pharmacotherapy)와 정신 치료 (Psychotherapy) 두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정신과 환자에게 어떤 약물을 사용할지는 전적으로 주치의의 의학적인 지식과 경험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한 약물이 환자에게 얼마나 효과적일지에 대해 객관적인 수치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다. 비록 고가이긴 하지만, 빅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신과 약물에 대해 유전형 검사가 실시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여러 약물 중에서 환자 자신에게 가장 최적화된 약물을 선택할 수 있다. 가까운 미래, 정신과 의사의 고유한 영역 중의 하나였던 약물의 선택도 이제는 인공 지능에게 권한을 넘겨줘야 할지도 모른다.

 

정신 치료 분야는 어떨까?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공감적으로 인정하고 위로하며 지지한다. 때로는 직관을 바탕으로 환자의 행동을 직면하고 무의식을 해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고도의 기능을 인공 지능이 과연 할 수 있을까? 2014년 5월에 개봉된 영화, 허 (Her)는 그 가능성에 대해서 흥미롭게 이야기 하고 있다.

 

사진_ 영화 her (수입 더쿱 / 배급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주인공 테오도르는 편지 대필 작가로 현재 아내와 별거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의 마음을 대신 전달하는 역할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내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으며 외로운 삶을 살고 있다. 실체가 없는 인공지능,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주인공은 인공 지능과 많은 대화와 경험을 하면서 대인관계에서 자신의 반복되는 행위 패턴을 깨닫는다. 인공지능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통찰을 얻게 된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테오도르는 아내와 화해를 하고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사만다와 이별한다.

 

정신과라는 의학 분야가 정립된 지는 100여년 정도 되었다. 인공지능의 시대, 정신과 의사의 정체성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다가올 변화가 마냥 유쾌하고 즐겁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이 대부분 정신과 의사들의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유길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beethoven6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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