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뇌부자들 [8화 Part 2]

 

K씨의 사연:

 

안녕하세요, 전 힙합 음악을 하는 30세 남성입니다. 저는 어렸을 땐 누가 말을 걸기만 해도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소심한 아이였습니다. 친구도 별로 없이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만 살아오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문득 ‘공부를 왜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더라구요. 그 시점부터 공부를 놓고 외향적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성격이 쾌활해지고 낯도 안 가리게 되었습니다. 군 복무 말미에 우연히 힙합에 빠지게 되어 서울로 상경해서 음악을 시작하였는데요, 그때부터 점점 더 성격이 적극적으로 변해 처음 보는 사이에도 쉽게 말을 걸고 인맥을 넓히려 일주일에 아홉 개씩 약속을 잡기도 하였습니다. 마치 노홍철씨처럼요.

 

그렇게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 처음으로 다른 사람이 제 뒷담화를 한 얘기를 지인을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걔 생각이지 뭐’ 하고 넘어갔는데 다음날이 되자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오르더라구요. 이후 이런 일을 한번 더 겪으면서 저는 타인을 경계하고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사람으로 변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제가 발매한 음악에 달리는 악플에 상처를 심하게 받고 나서는 성격 뿐만 아니라 음악 역시 점점 둥글둥글, 평범해 지게 되었습니다. 둥글둥글해지면 어느 사람에게도 욕을 안 먹게 되니까요.  

 

사진_https://www.theodysseyonline.com/social-anxiety-disorder

 

최근 인파 많은 곳에서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 놀란 뒤 정신과에 처음 들러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모두에게 인정받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해서 속마음을 잘 표현 못하는 제 성격 때문에 우울증이 생겨났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음악인으로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 때문에 불안장애가 왔다고 하셨는데, 이게 마음처럼 쉽게 고쳐지지 않네요. 이제는 더욱 극단적으로 변해서 인사치레로 한번 보자고 말만 하는 사람들은 친구도 아니라는 생각에 전화번호들을 다 지워버렸고 절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에게만 잘하려고 애씁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부질없게 느껴지더라구요. 특히 뮤지션들끼리 만날 때 인지도에 따라 상대방의 태도가 급격히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많이 느껴왔던 감정이에요. 여러모로 고민이 많네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뇌부자들의 답장:

 

안녕하세요, 뇌부자들입니다.

보내주신 소중한 사연은 저희 모두 잘 읽어보았습니다. 정말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사연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나와 현실에서의 나, 이 두가지 모습 사이에 차이가 벌어져서 스트레스를 받으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이라는 분야는 성공을 거둔 사람이 화려하게 부각되는 만큼, 그렇지 못했다고 느끼는 경우에는 더욱 큰 위축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 같아요. 특히나 대중음악계, 그 중에서도 힙합 씬에서는 소위 대박나는 이십대 초중반 뮤지션들의 경우가 많고, 이런 성공을 대놓고 어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위기다보니 더욱 비교가 되면서 스트레스를 받기 쉬울 것 같거든요. 나는 이룬 것 없이 제자리걸음인데 옆에서는 쌩쌩 날아가는 것 같고. 전에는 같이 술도 한 잔 하며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에게 까지 연락이 뜸해진 상황에 처하면 더욱 상처를 받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원본사진_https://www.pexels.com/photo/close-up-portrait-of-man-255861/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요즘에는 이런 점들이 더욱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우리나라에서 서른이라는 나이는 20대의 방황을 마치고 성취와 안정으로 나아가는 기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잖아요. 이런 고정관념이 K씨와 비슷한 나이를 지나고 있는 많은 분들을 초조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실제로 요즘같은 현실에서 뭔가를 이루기엔 서른은 너무나 젊고, 미래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는게 당연한 나이인데 말이죠.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라는 노래 아시죠? 그 노래가 지금까지도 많은 울림을 주고 있는 건 그 자체가 명곡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서른 언저리에 여전히 방황하는 분들이 많다는 방증 아닐까요? 나를 빼고 모든 사람들이 앞으로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또 하루 멀어져 감에, 그리고 가슴속에 무엇을 채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이지요. 

 

한편으로는 대인관계 측면에서도 20대 중반에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뒷담화 때문에 상처를 받았던 경험이 성격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고등학교 때 이후로 활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던 외향적인 모습이 있었지만, 이런 트라우마로 인해 신경성적인 특성, 불안 및 스트레스에 민감한 어린 시절의 모습이 다시 드러나게 된 것 같아요. 물론 신경성은 음악이라는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는 감수성을 높여줄 수도 있어 일부 도움이 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대인관계 측면에서는 더 피로감을 느끼고 위축되게 만들기 쉬운 성질이다 보니 K씨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그저 겉보기에 모나지 않은, 둥글둥글한 성격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연히 K씨가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음악을 한다는 건 도끼 같은 가수처럼 엄청나게 돈을 벌어들일 수도 있는 반면, 무명의 가수나 래퍼가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듯 불안정할 수밖에 없어요. 어찌 보면 어느 정도의 불안과 초조함은 감수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집착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현재가 아닌 먼 미래, 혹은 과거로 가 있기 마련이에요. ‘과거에 이렇게 했더라면’ 하는 후회, ‘미래에 잘 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계속해서 떠오르죠. 그런데 우리에게 시간여행을 하는 기술이 없으니 그 시점으로 갈 수는 없잖아요. 결국에는 바꿀 수 없는 과거와 미래에 발목을 잡혀서 현재의 내가 고통을 받게 되요.

 

마음이 최대한 현재에 머무르도록, 지금 눈앞에 있는 일에 집중하도록 노력해보세요. 처음엔 쉽지 않겠지만 꾸준한 연습을 통해 바꿀 수 있으니, 그를 통해 마음 편안한 상태로 작업 활동에 집중하실 수 있게 된다면 좋을 것 같아요. 과도하게 불안한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다 같이 마라톤을 하고 있는 중에 K씨는 혼자 무거운 가방을 메고 가는 것 같아서, 가지고 계신 본인의 능력을 미처 다 발휘할 수가 없거든요.

 

원본사진_위키미디어 공용

 

물론 마음을 편하게 가진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대인관계에 조금만 더 초점을 맞춰보면, 욕을 안 먹는 둥글둥글한 성격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고 하셨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어요. 물론 욕 먹는 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유명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욕을 먹긴 하거든요. 게다가 누구에게나 좋은 말만 듣고 사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잖아요? 그냥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K씨의 색깔을 맘껏 드러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싫은 소리, 악플은 그냥 쓱 흘려 보내 버리시고요. 사연에 등장했던 노홍철씨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하고 싶은 거 하thㅔ요!”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저희의 조언이 얼마나 도움 되어드릴지 자신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보내주신 이야기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서른 주변의 친구들이 같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이 K씨의 사연을 듣고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게 아니겠구나’ 하는 위로를 얻을 수 있다면 그 또한 분명 의미 있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연자 분께서 더 이상 힘들어하시지 않고 앞으로 뻗어있는 뮤지션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 나가기를 기원합니다.
 

뇌부자들 드림.

 

해당사연 링크 :

http://www.podbbang.com/ch/13552?e=22291954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뇌부자들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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