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가족은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를 좀 더 학문적으로 표현해 보면 ‘동일시(Identification)' 라고 할 수 있지요. ’동일시‘의 사전적 의미로는 “자기가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의 태도, 가치관, 행동 등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여 가는 과정을 말한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의 행동과 말투, 사고방식과 닮게 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동일시에도 건강한 동일시와 그렇지 못한 동일시가 있습니다. 가족이 서로 닮아 가는 것이 친숙한 의미로 느껴져서 흐뭇한 일이지만, 닮지 말아야 할 것들도 닮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좋지만은 않은 경우도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아이가 부모를 따라하듯이 부모도 아이를 따라하기도 하구요, 때로는 그 ’닮음‘이 대를 물려 내려오기도 한답니다.

 

얼마 전 근교로 떠난 가족여행에서 숙소근처 맛집을 가게 되었는데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딸이 부모님을 돕고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계산을 하면서 부모를 돕던 딸이 카드단말기 사용이 익숙치가 않은지 한참을 조작한 후에야 ‘결제완료’ 문자메시지와 함께 결제가 되었습니다. 이후 근처를 산책하는데 결제취소 문자가 오는 것이 아닙니까? '아마도 그 아이가 뭔가를 더 시험 삼아 조작해 보느라 취소가 된 것 이리라.... '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그곳을 들러 다시 결제를 했습니다. 식당 사장님이 연신 허리를 굽히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여서 뭘 당연한 것에 이리 고마워 하냐고 쿨하게 이야기하고 나왔지요.

 

다음날 집으로 돌아와서 잠자리에 들기 전 초등학생 딸에게 일기쓰기 숙제를 다 했는지 확인을 하면서 일기 내용을 물어보았는데, 당연히 여행 중 구경한 아름다운 경치나, 멋진 숙소, 맛있는 음식을 떠올릴 줄 알았는데, 아이는 아빠가 다시 식당에 가서 카드결제를 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 일기에 썼다고 하지 뭡니까?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일이 그 아이에게는 그렇게 인상 깊게 느껴졌나 봅니다. 아이가 내가 한 미숙하고, 부끄러운 행동들은 모두 잊고, 내가 잘 한 행동들만 따라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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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는 내 말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 행동을 따른답니다.

 

제 딸아이의 말을 듣고, 아이에게 어떤 경험을 하게 해 주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답니다. 물론 자녀와 잘 놀아주고, 좋은 환경과 양질의 교육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이 소중하고, 의미있는 일임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이가 더 성숙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많은 영향을 줄 것입니다.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내 스스로 시범을 보여주는, 롤 모델(Role Model)이 되어 주는 것이지요. 아이들은 부모가 말하는 것을 보며 배우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을 보며 따라하고, 동일시하며 자연스럽게 배운답니다.

 

그럼 어떠한 롤 모델이 되어 주어야 할까요?

 

우선 내 스스로가 행복해 지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내가 행복한 것도, 행복해 지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아이가 따라할 테니까요. 그리고 나의 대인관계, 스트레스 푸는 방식도 아이가 따라 해도 되는지를 고민해 보면 어떨까요? 내가 힘든 상황이나 하고자 하는 일에서 좌절을 경험할 때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해야 하는지가 고민될 때엔 아이가 나처럼 행동한다면 어떨지를 한번쯤은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특히 육아를 하면서 견디기 버거운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버텨내는지를 아이에게 보여 준다는 마음가짐을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아이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아 한마디 할 때가 많지요? 하지만 아이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때는 우리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와는 대부분은 일치하지 않는답니다.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내가 힘들고, 잔뜩 걱정에 휩싸여 있으면 그것을 감지해서 본인은 더 힘들다며 엉뚱하게 행동을 해 버리지요. 아이가 한 행동이 설령 잘못된 행동이라고 해서 심하게 훈육을 하게 되면 그 순간은 말을 따르는 듯 보이겠지요. 하지만 결국은 더 엇나가게 된답니다.

 

우선은 훈육을 위한 말보다는 아이와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필사적으로 노력을 해 보면 어떨까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조금씩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관계회복이 우선인 것이지요. 아이들은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본능적으로 진심으로 잘 대해주는 사람을 따른답니다. 아이의 걱정스런 행동으로 인해 내 마음이 혼란스럽고, 불편하고, 힘들다면 쉬어가는 시간이라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내가 편하고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러한 상태가 되어야 아이를 더 잘 훈육하고 가르칠 수 있지요. 빚을 내어서라도 즐거운 일을 해 보아요.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시지는 마시구요~~ "과도한 빚, 고통의 시작입니다.")

 

아이의 모습이 내 모습인 겁니다. 마치 빙산(아이)은 바다 위 10%는 눈에 너무도 잘 보이고, 실상(내 모습)인 바다 속 90%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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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모도 아이를 따라 합니다.

 

아이가 부모를 따라 하듯이, 부모 또한 아이를 자기 자신과 ‘동일시’ 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의 따라 하기(동일시)는 행동을 따라 한다기 보다는 그 마음과 처한 상황을 을 ‘따라 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다른 아이의 미숙하고, 잘못된 행동에는 너그러우면서 정작 본인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는 유독 참기가 힘들다는 부모가 그런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그 자체로 인정하고, 바라보지 못하고, 마치 자신의 일부분인 양 대하는 것이지요.

 

이는 주로 부모의 완벽주의 성향과 관계가 있는데, 그러다 보니 아이의 대수롭지 않은 작은 잘못에도 이러한 잣대를 들이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완벽주의 성향은 대개는 부모 자신이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누구보다도 가장 아껴주어야 할 본인 스스로를 인정해 주지 못하고 보듬어 주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상처를 깨닫고, 극복하려고 노력한다면 아이와의 미숙한 동일시 역시 자연스럽게 줄어들 겁니다.

 

이러한 미숙한 동일시의 또 한 가지 예로는 아이들 사이에서 종종 있을 수도 있는 다툼에서, 아이들끼리는 어렵지 않게 화해를 했는데도 부모가 본인의 자존감에 필요 이상의 상처를 입어, 상대방 아이와 그 부모에게 항의를 한다거나 심지어 신고를 하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경우랍니다. 이렇듯 부모의 과도한 ‘아이 따라 하기’는 대부분은 미숙한 행동으로 이어지고,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으니 아이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이에 대한 대비; 상황에 대해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해 보고, 스스로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기를 권유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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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를 물리는 따라하기

 

우리도, 본인이 잘 인식하지 못한 채로, 부모를 닮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와의 건강하지 못했던 관계가 자신의 아이와의 관계에서 재현되고 있는 경우가 매우 많아요. 시집살이를 호되게 겪은 며느리가 나중에 며느리를 맞아 더 심하게 시집살이를 겪게 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동일시’인 것이지요. 힘든 관계가 마음속으로 지속되는데, 나도 힘들게 하는 사람과 동일시하면, 한편이 되는 것이니 두렵지 않는 것이지요.

 

아이에게, 내 부모를 따라하는 행동으로서의 화를 풀게 되면, 아이가 대부분은 내게 더 매달리게 됩니다. 좋아서가 아니라, 불안해서 살아남으려고 그러는 것이지요. 편안한 아이가 내게 왜 매달립니까? 친구들과 놀려고 하거나 게임하느라 시간이 부족하겠지요. 내가 성숙해 지는 것만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열쇠인 것입니다.

 

그리고 내 문제일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면 기존의 육아방법 대신 새로운 방법을 써보아야 겠지요? 열심히 육아관련 지식들을 배워야지요. 하지만 육아는 배운다고 다 되는 지식만의 문제가 아니라 몸에 배어야 하는 습관과 태도의 문제라서 계속 반복해야 조금씩 변할 겁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참고 노력하다 보면 아이와 함께 조금씩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진료실에서 아이가,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어려움으로 인해 잔뜩 위축되어 있고, 엄마 역시 어린 시절 매우 엄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현재 아이에게 너무 엄하게 훈육하고, 항상 실망만 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힘들어 하는 분들을 가끔 봅니다.

 

이 경우는 대를 물리는 따라하기와 함께, 부모가 아이를 따라하는 동일시가 함께 존재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의 악순환이 지속되어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결국 아이도 아이지만, 엄마도 우울증상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나마 이 경우는 양호합니다. 엄마가 본인의 모습을 인지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점점 더 엄한 모습을 보이다 보니 아이가 엄마에게서 분리되지 못하거나, 아예 밖으로만 겉돌면서 문제행동을 일삼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약한 부분이 아이이다 보니 아이가 가장 문제가 많아 보이고, 아이를 통해 진료를 받으러 오는데, 이러한 경우 엄마의 성숙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지요.

 

이처럼 ‘따라하기’(닮아가기, 동일시)는 잘 활용하면 아이를 위한 큰 선물이 될뿐더러, 내 힘들고, 부족한 부분들을 미리 살펴서 돌아보고, 노력하게 만드는 ‘알람’ 같은 것이 될 수 있고, 또한 잘못 사용하면 큰 후유증을 남기기도 하니 이를 잘 활용하고, 잘 살펴서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데 유용한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장혁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조선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주대병원과 전북대병원에서 소아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으며 현재 아이나래정신건강의학과(광주)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조선대학교의과대학 외래교수,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대한청소년정신의학회 평생회원, 대한자폐스펙트럼연구회, 아동정신치료의학회 정회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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