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공공기관에서 양극성장애 제2형을 사유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스물다섯 살 남성입니다. 저는 저희 기관의 차량 출입 통제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차량 운전자가 주차장 입구에서 초인종을 누르면, 제가 인터폰을 통해 신원을 확인한 후 출입문을 개방하는 식입니다.

그런데 최근 초인종이 눌러지는 것에 아무런 이유 없이 불안과 스트레스, 심지어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초인종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고, 소리가 나지 않을 때도 불안해서 계속 CCTV를 확인합니다.

처음에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했지만 날이 지날수록 점점 지치고 피곤해져서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습니다. 다리를 떤다거나 손이 벌벌 떨린다거나, 숨이 잘 쉬어지지 않기도 하고, 강박적으로 손을 청결하게 관리하기도 합니다.

제가 대체 어떤 일을 겪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어 게시판에 사연을 올려봅니다.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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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현재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시면서 극도의 불안감과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많이 힘드신 상황이시네요. 방문자가 누르는 초인종 소리를 듣고 신원을 확인한 후에 출입문을 개방해야 하는 업무를 맡고 계신데, 초인종 소리만 들으면 불안감이 증폭되고 신체적 증상까지 나타나신다고 하니 얼마나 괴롭고 답답하실까 싶습니다.

사연글에서는 초인종 소리가 불안감을 유발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특별히 적으신 것이 없는 것으로 보아, 초인종 소리가 공포감을 불러올 만한 업무적 특이점은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초인종을 누른 방문자 중에 사연자님께 굉장히 무례하게 굴었다거나 업무적 과오가 있었다거나 하는 점 말입니다. 이러한 특이점이 있다면 초인종 소리에 민감해지게 된 원인으로 추측해 볼 수 있겠습니다.

아니면, 사연자님께서 과거에 초인종 소리와 관련해 안 좋은 기억이 있으신 것은 아닐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혹은 최근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위험한 상황을 겪으신 경험은 없으신지도 여쭙고 싶습니다. 정신적으로 크게 충격을 받게 된 경험은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상황도 그 시점을 기준으로 이후부터는 위험하다고 인지하고, 같은 상황이 아닌 비슷한 상황에만 처해도 마음이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나 긴장 수준이 높을 때도 별다른 이유 없이 불안과 공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사연자님의 잠재된 불안이나 공포감이 초인종 소리와 연합되면서 그러한 심리 상태를 느끼는 것이 초인종 소리 때문이라고 인지하면서 그 소리나 상황을 더욱 기피하고 불안이 증폭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죠. 

 

사연자님을 만나 뵙지 않은 상황에서 정확한 진단이나 처방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현재 사연자님께서 진술해 주신 자기 보고식 내용과 증상에 비추어 한 가지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특정 공포증’입니다. 특정 공포증이란, 대부분 동물이나 높은 곳, 비행기, 폐쇄된 공간, 특정 음식물이나 주사 등 특정 대상을 두려워하여 피하게 되는 불안장애의 하위 유형 중 하나입니다. 개인에 따라서 두려움의 대상은 다르지만, 상황이나 대상에 접하면 공황발작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특정 공포증 중에서도 사연자님의 경우처럼 특정한 상황이나 폐쇄된 공간에서 나타나는 경우를 ‘상황형 특정 공포증’으로 진단을 내리기도 하며, 대개 아동기나 성인기 초기에 시작되며,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하면 증상이 꽤 오래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치료는 주로 인지행동치료와 약물치료를 시행하는데, 인지행동치료로는 ‘노출요법’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노출요법이란, 환자에게 단계적으로 견딜 수 있는 공포 상황을 제시하고 이를 극복하도록 격려하는 것입니다. 무서워하는 상황에 노출되어도 안전하다는 것을 체험하도록 한 다음 안심하고 견딜 수 있도록 지도하는 홍수요법과 이완, 호흡 조절 등의 행동요법도 동시에 시행합니다. 필요한 경우에 한해 약물치료도 인지행동치료와 함께 처방됩니다.

물론,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올려 주신 사연글만을 보고 사연자님께 ‘특정 공포증’ 진단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사연에 기술해 주신 정황이나 증상에 비추어 어느 정도 ‘특정 공포증’에 대해 생각해 볼 수는 있으며, 좀 더 정확하고 자세한 사항은 전문가와의 면밀한 면담이 필요합니다.

사실 현재 사연자님의 불안감이 꽤 크고, 손이 떨린다거나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만큼 신체화 증상까지 나타난다고 하시니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시어 전문의와 상담해 보시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해결책이라 생각됩니다. 사연자님께서 양극성장애를 진단받으신 만큼 현재 치료받고 계신 담당 주치의 분께 지금 겪고 계신 어려움에 대해 털어놓으신다면 적절한 도움을 주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당장 해당 업무가 심적으로 너무 버거운 상황이시라면, 상사 분이나 책임자 분께 지금 사연자님의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셔서 당분간 업무 조정이 가능할지 상의해 보실 것을 권유 드립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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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일상에서 불안이나 긴장, 스트레스 수준을 낮추는 것이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에 몇 가지 팁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평소에 사연자님께서 가장 편안하게 느낀 상황이나 장소를 상상한 다음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한 상태에서 마음을 이완하는 ‘전신이완법’을 시도해 보시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 훈련은 근육을 이완해 교감신경계의 활동도를 늦추는 훈련 방법으로, 불안과 긴장감을 줄여 줄 뿐만 아니라 심장 두근거림, 호흡 곤란 등 신체 증상을 조절하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편하게 누운 자세에서 아침저녁으로 꾸준히 10분씩만 해도 좋습니다.

또 요즘 사연자님의 수면의 질은 괜찮은지, 식습관은 잘 관리가 되고 있는지 체크해 보셨으면 합니다. 불충분한 수면이나 영양 결핍으로도 불안감이 커질 수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불안감 수준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 뇌를 자극해서 불안을 유발하는 식품인 커피, 홍차 등 카페인이 들어 있는 음식은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명상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매일 15~30분간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 명상하는 것은 교감신경의 긴장을 떨어뜨리고,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낮추는 효과가 크기 때문에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됩니다. 명상의 핵심은 자기 호흡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호흡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의 연결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고, 호흡이 거칠거나 짧아지면서 화가 났을 때 부드럽고 긴 호흡으로 바꿈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초인종 소리에 불안감이 크게 올라오는 상황에서 복식 호흡을 통해 스스로를 조금씩 진정시켜 볼 수도 있습니다. 

 

사실 불안장애와 기분장애는 많은 경우에 서로 동반되거나 함께 진단되기도 합니다. 이 점을 잘 인지하시고, 사연자님께서 현재 겪고 계시는 불편감과 함께 양극성장애 역시 꾸준히 전문적인 치료를 받고 개인적인 노력을 기울이시면, 충분히 치료되고 회복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조금씩 편안한 몸과 마음의 상태로 돌아오실 수 있기를 저희도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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