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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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2001년생입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친구도 별로 없었고, 주변에서 조용하다거나 특이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우연히 인터넷에서 자폐랑 아스퍼거 증후군 자가진단을 해 봤는데 자폐 지수가 높게 나왔습니다. 자폐나 아스퍼거 증후군 증상을 찾아보니까 제 모습하고 일치하는 부분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번 검사를 받아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아스퍼거 증후군이나 자폐 진단을 받는 것은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성인이 진단받기는 어렵나요? 부모님께 말씀 드리면 굉장히 화내실 것 같은데, 부모님과 같이 가야 하나요? 검사는 어디서 받을 수 있나요?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얼마 전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자폐 검사를 해 보시고 자폐 지수가 높게 나온 점이나 어릴 때부터 조용하고 특이하다고 평가받던 상황 등에 비추어 사연자님께 혹시 자폐 성향이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있으시네요.

일단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진단은 일정한 진단 기준을 바탕으로 전문의와의 자세한 상담과 면밀한 관찰 등을 통해 내려지게 됩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검사 문항을 체크한 결과 점수가 좀 높게 나왔다고 해서 뚜렷한 자폐 성향이 있다거나 장애로 진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먼저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이에 관한 설명을 드릴까 합니다.

자폐 또는 아스퍼거 증후군은 2013년에 미국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5)이 새롭게 개정되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아스퍼거 증후군’은 공식적으로 사라진 진단명이 되었고, 개정 전에는 구분되어 있던 여러 하위 진단명들도 지금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ASD)’라는 진단명으로 통합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란 무엇일까요?

자폐 스펙트럼 장애, 일명 ASD라고도 부르는 이 장애는 복합적인 발달장애를 포괄적으로 이르는 용어입니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상호작용과 소통에 어려움을 보이고, 이상한 반복적 행동이나 특정한 물건 또는 활동에 대한 강렬한 관심을 특징으로 합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사람과의 눈 맞춤이나 주변 말소리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주 양육자(주로 엄마)랑 떨어지거나 낯선 어른이 안아도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에서도 다른 아이들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어울려 노는 것을 어려워하죠. 커 가면서 부모나 친숙한 어른에게 애착을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또래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는 어려움을 보입니다. 언어발달이 지연되는 경우도 많고, 그렇지 않더라도 특이한 톤이나 방법으로 언어를 사용합니다. 이와 함께 자동차를 일렬로 줄 세우는 것처럼 아주 단순하고 기계적인 양상으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합니다. 손을 휘젓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까치발로 걷는 등의 이상한 동작을 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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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낮은 지능과 인지적 결손, 전형적이고 뚜렷한 자폐적 특성을 보여 특별한 치료나 교육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지능이나 언어발달은 비교적 정상이면서 자폐적 특성이 경미하거나 비전형적이어서 이들에 대한 이해나 개입이 지연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능 특히, 언어성 지능이 높아 풍부하고 복잡한 언어 표현이 가능하거나, 수동적이고 피상적이긴 하지만 다른 아이들과의 놀이에 참여함으로써 자폐적 특성이 좀 더 늦은 나이에 발견되거나 간과되기도 하는 것이죠. 소위 ‘아스퍼거 증후군’ 혹은 ‘고기능 자폐증’의 경우가 그런 경우입니다. 앞서도 말씀 드렸듯이 이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라는 진단명으로 통합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일반 자폐증과는 달리 언어적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과 성장하면서 언어의 지체가 적거나 거의 없다는 점, 사물이나 물건의 특정 부분에 유독 집착을 보이는 일반 자폐증과 달리 역사, 지리, 인문학, 천문학 등 지적인 영역에 대한 집착 성향을 보인다는 특이점 때문에 여전히 ‘아스퍼거’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구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어투나 내용이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처럼 조숙하거나 로봇처럼 단조롭고 감정적 색채가 결여된 경우가 많고, 몸짓이나 표정 등 비언어적인 소통에 미숙합니다. 또 상대방의 몸짓과 얼굴 표정을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이들에게 세상은 의문투성이입니다. 당연히 상대방의 이야기에 적절하게 반응하는 것이 서툴 수밖에 없습니다. 지능이 높다 하더라도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이 있는 ASD 아동에게 있어 “이리 와 봐.”란 말은, 아이가 예뻐서 웃으며 하는 말이든, 아이에게 화가 나서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하는 말이든, 똑같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설상가상으로, ASD를 가진 사람들은 타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타인의 생각을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타인의 행동을 예측하거나 감정을 헤아리는 것 역시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타인의 약점을 스스럼없이 언급하는 경우처럼 분위기나 맥락,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하지 못해 부적절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말투나 몸짓이 어색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 보니 이런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예의 없고 특이한 아이로 취급받게 되고, 결과적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친구를 사귀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중, 고등학교까지 진학한 ASD 아이들은 지능과 언어 기능이 정상인 경우가 많은데, ASD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엔 학년이 점차 올라가면서 본인이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학교생활 전반에 걸쳐 곤란함을 느끼거나 악순환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친구를 사귀는 데 반복해서 실패하게 되고, 학업과 관련해서는 점차 추상적이고 복잡한 학습 과제를 요구받게 되면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불안하거나 우울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울의 임상 양상은 비전형적일 수 있어서 규칙적인 것에 더 매달린다거나 또는 더 고립되려고 하거나 제한된 관심사에 몰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학습이 부진하고 학교생활에 적응이 어려운 이유를 단순히 사회성이 좀 떨어진다거나 스트레스 대처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면 과각성으로 인한 충동 행동이나 자해 시도 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ASD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담겨 있는 정서적 의미를 헤아리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지요.

 

성인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어느 날 갑자기 발병하지는 않습니다. 어릴 적부터 앞서 설명 드린 자폐 성향이나 행동 등이 지속적으로 유의미하게 관찰되어 발현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입니다. 

만약, 사연자님께서 어릴 적부터 이러한 양상이나 행동 등을 지속적으로 보였거나 부합된 측면이 많다고 판단되신다면, 혹은 현재 타인과의 교류나 의사소통에서 현저한 어려움을 겪고 계셔서 일상이나 사회생활에 큰 불편감을 느끼신다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아니어도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으니,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소 등에 방문하셔서 관련 검사 및 자세한 상담을 받아 보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덧붙여 사연자님께서는 이미 성인이신 만큼 당연히 관련 기관에 혼자 방문하셔도 괜찮습니다. 다만, 성인 대상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진단 시에도 CARS 검사가 필요한 경우에는 어머님께서 동반해서 질문지에 답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는 있습니다. 그 전에 먼저 혼자 방문하시어 대략적인 상담을 받아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저희의 답변이 사연자님의 고민을 해결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호선 원장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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