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여러분은 어떨 때 ‘나’에서 벗어나 ‘타인’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나요? 손해를 보지 않고 살아야 세상을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굳이 왜 타인을 도와야 하는지 의아한 마음이 드시나요?

‘이타심’에 관한 생각을 하다가 대학 시절 이타적이면서도 항상 자신감에 넘쳤던 한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나 매점에 갈 일 있거든. 너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내가 같이 사다 줄게!”

친구는 그날도 자기가 손해 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제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을 먼저 도와주고 솔선수범해서 타인을 배려해 주던 친구.

학교 매점 가는 길에 내가 사고 싶은 것도 같이 사 오겠다는 친구의 말에 마음이 말랑해졌습니다. 내가 먹고 싶은 과자의 이름을 작은 종이에 적고 나서는, 같은 말을 반복하며 수업을 듣는 모든 친구에게도 똑같이 물어보고 다니는 그를 보고 저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이 친구는 무슨 생각을 하기에 과 전체 친구들을 챙기는 것일까?’, ‘동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타적인 행동을 할 때마다 행복감을 느꼈던 것일까?’, '타고난 것인가, 아니면 그렇게 교육을 받은 것인가'가 매우 궁금했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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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심이란, 보상받으려는 기대 없이 ‘남에게 이익이 되는 마음’을 자발적으로 갖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많은 연구에서 이타적인 사람일수록 더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재미있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사람들에게 128달러를 주고 아동의 권리 보호, 전쟁 반대 단체 등에 기부 여부와 지지 여부를 결정하게 하면서 fMRI를 촬영하여 뇌의 활성화 영역을 관찰한 것이죠. 기부에 대한 결정은 익명으로 처리되었고, 기부에 사용되지 않고 남은 돈은 참가자가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선택 할 수 있는 옵션은, ① 기부 X, 지지 X ② 기부 X, 지지 O ③ 기부 X, 지지 X  ④ 기부 O, 지지 O ⑤ 기부 O, 지지 X 등과 같았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④ 기부 O, 지지 O 하는 행위가 이루어질 때, 가장 고차원의 기능을 수행하는 전전두엽이 활성화되고, 보상중추가 자극되어 좋은 기분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애비게일 마쉬(Abigail March)는 극도로 이타적인 사람들의 특징을 연구하는 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입니다. 10대 청소년이던 시절 큰 교통사고를 당해 어쩔 줄을 모르고 차 안에 있던 애비게일. 그는 도로를 지나가던 한 선량한 사람에 의해서 구조되었습니다. 본인의 안전은 상관하지 않고 사고가 나자마자 달려와 주었던 그 사람의 지극한 이타심에 감동받은 그는 심리학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매우 이타적인 사람들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극히 이타적인 사람들의 뇌 자체가 보통 사람들하고 다르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세우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먼저 극히 이타적인 사람들과 비교 대조하기 위해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 즉 사이코패스의 뇌를 연구하였습니다. 연구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는데요, 그들은 공포에 질린 표정을 인식하는 편도체가 평균보다 10~20% 작았습니다. 즉,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인식하는 능력 자체가 떨어지는 이들이 사이코패스라는 것이었죠.

그러면 극도로 이타적인 사람의 뇌의 편도체는 사이코패스의 편도체와 많이 달랐을까요? 답은 ‘그렇다’였습니다. 매우 이타적인 사람의 뇌의 편도체는 평균보다 8% 크다는 것이 밝혀졌던 것이지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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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선천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평생 이타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걸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이타심은 연습과 훈련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는 심리적 특질입니다. 그럼 이타심이 많은 사람의 특징을 살펴볼까요.

첫째, 그들은 동정심의 범위가 넓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제일 가까운 관계라고 여겨지는 가족, 친한 친구에게만 관심을 두는 데 반해서, 이타적인 그들은 관심의 범위가 지인 혹은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확장됩니다.

둘째, 극도로 이타적인 사람은 ‘탈자기성’을 가집니다. 이타적인 사람은 전체 속에서의 ‘나’로서 살아갑니다. 보통 사람들이 ‘나’에게 그 일이 이익인가?를 먼저 생각하지만, ‘나를 포함한 우리’에게 그 일이 이익인가?를 묻는 것이 이타적인 사람들의 기본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개념이 가족 > 친구 > 지역사회 혹은 인간 > 동물 > 생명체처럼 범위가 넓어질수록 더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플라스틱이나 비닐 같은 재활용이 어려운 물건을 사용할 때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혹은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사용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나는 번거로워서 그냥 쓰련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타적인 이들은 ‘나’라는 한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오염되고 있는 우리나라, 혹은 지구, 우주 등 넓은 ‘전체’에서의 부분으로서‘나’를 인식합니다.

 

이렇듯 이타주의는 내가 손해 보더라도 타인을 위한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결국 전체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관점은 뇌의 보상체계를 활성화해 행복감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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