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지난 7월에 도서관에서 사서 보조로 한 달 일한 후, 본의 아니게 그만두고 현재 쉬면서 일자리를 구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은 원래 12월까지 계약이었는데, 같이 일했던 사람 때문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도서관 직원은 사서 선생님이 없었고, 책임자 분이 계시는데 토요일 날만 잠깐씩 오셔서 근무하시고, 7월에 도서관에서 주로 근무한 사람은 자활근로자와 저, 아르바이트 대학생, 자원봉사 선생님이었습니다. 아르바이트 학생이나 자원봉사하는 선생님은 괜찮았는데, 문제는 자활근로자였습니다. 그는 저한테 “키보드를 세게 친다.”, “에어컨 온도가 너무 높다.”, “의자를 안 넣는다.”, “왜 음악을 마음대로 바꾸느냐.”는 둥 엄청 신경질을 내면서 제게 예민하게 대했습니다.

그리고 본인도 관리자가 아닌 저랑 동일한 입장인데도 책 정리를 하라는 둥, 자리를 지키라는 둥 명령조로 이야기한 것을 여러 번 참았습니다. 업무 기준도 본인 기분에 따라 바꾸고, ‘본인은 이렇게 해도 되지만, 너는 하면 안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주 수요일, 목요일에는 아침에 하는 상호대차, 책 배달 업무에서 저를 아예 배제시키고, 또 다른 사람 있는 데서 제게 엄청 큰소리로 신경질을 냈습니다. 

저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도서관 책임자 분께 이러한 일들을 모두 이야기했습니다. 책임자 분은 금요일에는 쉬고, 토요일에 근무하라고 해서 출근을 했는데, 전날 꽂아야 할 책이 하나도 안 꽂혀 있고, 유아 도서방은 엉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또, 제가 자리를 안 지키고 이유 없이 돌아다닌다는 말을 했다는 겁니다. 저는 책을 꽃을 때 말고 돌아다닌 적도 없는데, 제가 무슨 일을 엄청 안 하는 것처럼 말을 해서 그 이야기를 듣고 더 화가 났고, 그 사람과는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고, 회복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종합적 스토리를 봤을 때 그 사람은 저한테는 전혀 미안한 마음도 없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교묘하게 머리를 써서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책임자 분은 “상호대차는 그 사람이 하고, 저는 도서 반납만 하는 게 어떻겠느냐.”면서 일주일만 더 다녀 보라고 앴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사람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서 7월까지만 하겠다.”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정황상 그 사람이 100% 잘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저한테는 사과 한마디가 없었습니다. 일반 직장처럼 복잡한 업무가 아니라서 못할 게 없었고, 그냥 둥글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도 엄청 날을 세운 느낌이었습니다. 지금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사람에게 화가 나고, 어이가 없습니다. 고작 한 달 일한 건데 후유증이 이렇게 클 줄 몰랐습니다.

만약 전문가 선생님이 제 상황이었다면, 그 사람이 당시 저에게  신경질 낼 때 저처럼 참는 게 맞는지, 아니면 기분 나쁜 티를 내면서 화내는 게 맞는지 알고 싶습니다. 더불어 마음을 어떻게 비워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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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께서 올려 주신 사연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지난달 사서 보조로 일하시면서 과도하게 선을 넘는 직장 동료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현재는 일을 관두신 상황이시네요. 사연자님의 사연을 읽으면서 얼마나 속상하고 화가 나셨을까 짐작해 보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갑니다. 직장, 가정, 학교, 모임 등 집단이 생기고, 그 속에서 다양한 성격과 특징, 기호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돕거나 정을 나누면서 조화롭게 살아가기도 하지만, 서로의 이해관계가 부딪히거나 갈등 요인들이 불거지면서 서로가 불편해지는 상황이나 관계가 생겨납니다. 그중에 간혹 '이상한' 성격을 가진 분들도 존재합니다. 이런 분들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괜한 일로 트집을 잡으면서 자꾸 신경을 건드릴 때, 그리고 그 대상이 내가 되었을 때, 그만큼 곤혹스러운 일도 없을 겁니다.

아마도 사연자님께서도 이번 직장에서 그런 상대를 만나게 되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더구나 상대는 사연자님보다 직급이 높거나 관리자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닌 동등한 입장이었다고 하니, 사소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지적하는 데서 굉장히 불쾌하셨을 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의 불안감이나 불편한 감정 등을 타인을 통제함으로써 해소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상대가 사연자님께 과도하게 지적하는 것은 선을 넘는 행동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항의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대에게 항의할 때는 주의하셔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상대가 감정적으로 나온다고 해서 나도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면, 상대의 수에 말리거나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간혹 ‘이상한 분’들은 오히려 그런 상황을 즐기기까지 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이성적으로 침착하게 대응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대가 사연자님께 지적한 사항들을 한번 함께 살펴보도록 할까요? 그분은 “키보드를 세게 친다.”, “에어컨 온도가 너무 높다.”, “의자를 안 넣는다.”, “왜 음악을 마음대로 바꾸느냐.”면서 사연자님께 신경질적인 태도로 이야기했고, 사연자님께서는 상대가 감정을 실어 지시하거나 명령조로 말한 부분에서 감정이 상하신 상황입니다. 사실 도서관에서 키보드를 세게 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으니 조용히 치는 것이 맞습니다. 에어컨 온도도 관리자가 쾌적하게 관리하는 것이 맞을 테고요. 의자는 사용하고 난 다음에 잘 정리해 두는 것이 맞겠지요. 그분이 지적한 내용만 놓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닙니다. 

그런데 만약 사연자님께서 특별히 키보드를 세게 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이야기한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그럴 때는 “이 정도면 크지 않은데 좀 과민하신 것 같다.”라고 사연자님의 생각을 표현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만약, 정말 순간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 키보드 소리가 컸다면, “앞으로는 좀 주의하겠다.”라고 상황을 인정하시면 될 것입니다. 

또 에어컨 온도와 관련해서는 에어컨 온도를 관리하는 담당자가 따로 정해져 있느냐에 따라서 책임 소재를 가르면 될 것입니다. 만약 사연자님 혼자서 에어컨 온도를 관리하는 책임자가 아니었다면, “에어컨 온도를 관리하는 게 나 혼자만의 역할은 아니지 않느냐? 온도가 높다고 생각한 분이 낮추면 되지 않느냐?”라고 반박하거나 의견을 조율해 나가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상대가 바른 말을 한다 해도 사소한 지적이 너무 빈번하거나 태도가 고압적이고 감정적이라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상대에게 불편감을 표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상대의 태도에 아무리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더라도 화를 분출하거나 똑같이 신경질적으로 대한다면, 감정 조절이 미숙한 상대와 다를 바가 없어집니다. 또 당시의 정황을 잘 모르는 주변 사람들은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긴 상황만 보고, 오히려 사연자님께서 감정 조절을 잘 못한다거나 화를 자제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감정을 절제한 상태에서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같은 말이라도 좀 좋게 이야기해 달라. 계속해서 신경질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반응하고 싶지 않다.”, “일에 대한 부분을 이렇게 감정적으로 대하면, 관리자에게 이야기하겠다.”, “당신과 나는 상하 관계가 아니다. 명령조로 이야기하지 말아 달라.”라고 사연자님께서 느끼신 바와 정당한 요구 사항을 전하면 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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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상대가 감정적으로 안 좋게 나오면 나 역시 감정이 상하고, 똑같이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감정을 분출하는 순간, 우리는 이성적으로 대응하기 힘들어집니다. 또 그렇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면, 상대는 그 점을 약점 삼아 자꾸 사연자님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도발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감정적인 반응은 자제하되, 사연자님께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지적하는 것에 대해 항의하고 선을 넘지 말 것을 분명하게 요청하셔야 합니다. 

관리자 분께 이 점에 대해 전달하고, 또 중재를 요청하신 부분은 적절히 대응하신 것으로 보여 칭찬해 드리고 싶습니다. 있지도 않은 사실로 인해 누군가가 자신을 모함하는 일이 생겼을 때는 당연히 자신의 행동이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통해 오해를 풀고, 억울한 상황에 휘말리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연자님께서 취하신 그다음 대응 방식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습니다. 관리자 분께서는 사연자님의 고충을 듣고는 서로가 최대한 부딪치치 않도록 나름의 절충안을 제안했습니다. 서로의 업무를 분리하도록 한 것이지요. 그러나 사연자님께서는 관리자 분의 절충안을 단번에 거절하고, 퇴사를 결정하셨어요. 물론 사연자님께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면 그런 결정을 내리셨을까도 싶어서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사회에서 그런 상대를 만날 때마다 직장을 그만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결국 손해를 보고 억울해지는 것은 나입니다. 때로 도저히 참기 힘든 상황에서는 피하는 것이 능사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연자님께서도 현재의 불편한 상황을 관리자 분께 전달했고, 관리자 분은 그 상황을 관망만 하지 않고 어느 정도 조치를 취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일단은 그 조치를 수용해서 일해 보면서 어떠한 변화가 생기는지, 비록 상대가 조금 신경 쓰이지만 지낼 만한지 겪어 보셨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업무 분담을 한 후로는 생각보다 지낼 만할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연자님께서는 더 이상 그 일에는 신경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자신의 업무에만 집중해 나가면서 말이지요.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는 사연자님처럼 타인과의 건강한 경계선이나 예의를 지키는 분들만 있는 것은 아님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에게는 애초에 사과를 기대하지도 않으시는 게 내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때로는 무시가 답”이라는 말도 가끔은 꺼내 볼 필요도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노하우도 여러 사회 경험을 겪으면서 마음이 좀 더 단단해지는 과정에서 점차 쌓여 나갈 것입니다. 비록 이번 일로 상심이 크고 많이 억울하셨겠지만, 사연자님의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인생의 한 페이지였다고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이번 일에 대해 이렇게 생각과 마음 정리를 하시려는 태도는 아주 좋다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생각과 마음 정리가 끝나시면 억울함을 자꾸만 곱씹지 마시고,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넘기시면 어떨까요. 그다음 페이지에는 사연자님께서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규홍 원장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의과전문대학원 졸업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수료
METTAA CBT / Schema Therapy Exp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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