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살면서 우리는 누구나 힘든 순간을 경험합니다. 가족들과 다퉜을 때, 직장에서 상사에게 혼났을 때, 재정적으로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마음이 외롭고 울적할 때 등 손에 꼽기가 모자랄 정도입니다. 그럴 때면 누군가에게 내 상황과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혼자 안고 있는 짐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었으면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핸드폰 속 수많은 전화번호 목록을 아무리 훑어봐도 막상 그 누구에게도 연락할 용기가 나지 않던 날, 아마 누구나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습니다. 이런 관계 안에서 우리는 연결감, 안정감, 소속감, 친밀감, 인정과 같은 정서적 측면부터 신체적, 물질적 측면까지 지원을 주고받습니다. 이를 조금 더 전문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라고 합니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 주며 곁에 있어 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힘과 위로가 되며, 스트레스를 낮춰 주고 우울증을 비롯한 심리적 어려움을 예방하고 완화해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힘든 일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뭐가 달라지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을 나누고 솔직한 심정을 공감해 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실로 큰 자산입니다. 또, 때로는 상대방이 단순히 들어 주는 것을 넘어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개인적인 일을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도움을 청하는 것이 폐 끼치는 행동이라는 인식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깝게 지내며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더라도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는 속으로만 삭이고 혼자 해결할 때가 많습니다.

사회관계망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가 일상화된 이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좋은 곳에 가고 좋은 음식을 먹는 모습을 올리며 잘 지내는 나, 행복한 나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 줍니다. 반대로 멋진 휴양지에 가고 럭셔리한 옷을 입은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나의 현실에 좌절감이나 자괴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온라인에서 많은 사람과 교류하며 소통하는 것 같지만 힘든 일들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할 사람은 마땅히 찾기 어려운 아이러니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나의 어려움을 알리고 도움을 청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상황을 알리고 필요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은 중요한 심리적 자원 중 하나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도움 추구 행동(help-seeking behavior)’이라고 합니다. 도움 추구 행동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이 취약한 영역에서 도움을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연결되고, 기대며 기댈 수 있는 존재로서 살아갈 때 비로소 안정감과 충만함을 느낍니다. 아무리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이라도 누구에게도 도움받지 않고, 도움도 주지 않은 채 혼자서 외딴 섬처럼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솔직하게 나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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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겪는 문제를 인정하고 평가해 보기

현재 경험하는 문제가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인정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영역에서 도움이 필요한지, 도움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평가해 보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문제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도움의 자원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문제의 종류에 따라 연인이나 배우자, 친구, 동료, 전문 상담사나 정신과 의사 등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나의 상황과 마음, 도움이 필요함을 표현하기

우리는 내 힘든 이야기를 함으로써 그것이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야기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모릅니다. 여러분을 진심으로 아끼고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이 힘든 이야기를 했을 때 진심으로 공감하며 도움을 주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용기 내서 어려움을 나눠 주었다는 사실에 감사를 표할 수도 있습니다.

 

3. 가용한 자원을 파악하기

시기와 상황에 따라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힘든 일이 있거나 나와 물리적, 시간적 거리로 인해 도움을 주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내가 가진 자원 중 지금은 활용하기 어려운 것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필요한 도움을 어디에서, 어떻게 얻을 수 있을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도 언제나 도움받는 역할만 하거나 반대로 항상 돕는 역할만 하지는 않습니다. 도움받기도 하고, 돕기도 하며 마음을 주고받을 때 우리는 비로소 더 깊은 관계의 장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주고받는 기쁨을 느끼며 함께 깊은 관계의 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석사,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 위원
한국산림치유포럼 이사, 숲 치유 프로그램 연구위원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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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의 글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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