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30대 미혼 여성입니다. 어디에도 쉽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고민 때문에 마음이 괴롭고 답답하네요. 제 과거 연인이 조현병, 피해망상이 두드러지게 발현되어서 그에 관해 자문을 구하고 싶습니다. 물론 저도 이 사람이 여러 이유로 좋은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그 사람과 계속 함께 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싶네요.

설명을 좀 드리자면, 저는 한 30대 남성과 반 년 정도 교제를 했습니다. 관심 분야도 비슷하고 저도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참 좋았어요. 그런데 어딘가 남성답지 못한 목소리에 위축되거나 불안정해 보이는 등 마음이 힘들어 보이는 느낌이 있었어요. 저도 나이가 결혼 적령기고 해서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싶었지만, 이 사람은 결혼까지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희는 점점 갈수록 사이가 나빠졌어요. 저는 이 사람의 불안정함, 비일관성 때문에 너무 많이 힘들었고, 안정적인 연애를 원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갑자기 3일 정도 잠적하고 다시 연락하거나 해서 저를 초조하게 만들었고, 제가 어떤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자신을 관찰하는 거냐면서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예전부터 자신을 감시하고 관찰했다는 이야기도 종종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내심 좀 이상하다 생각했었어요. 그러나 조현병 증상인 것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결정적으로는 헤어지게 된 사건이 일어났어요. 그가 일요일에 어디 가야 할 곳이 있었는데, 제가 전화를 걸어서 얼른 준비해서 나가야 한다고 말하니, 자신이 알아서 가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의 안일하고 임기응변적인 태도에 화가 나서 그의 집에 찾아가서 그를 직접 데리고 나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아파트에 도착해서 그의 집 문을 두드리는데, 저보고 남의 집에 왜 찾아왔느냐면서 문도 열어 주지 않고 막 화를 내더군요. 그런데 저도 그때 좀 격해져 있어서 그저 포기하고 돌아갈 생각을 못했습니다. 결국 그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서 비밀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가니, 그는 엄청 화를 내면서 저한테 물건을 집어던졌습니다. 화장지와 플라스틱 물병을 말입니다. 

어느 날엔가는 또 함께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저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이야기하기에 저는 그 말에 대해서 납득하지 않고 제 의견을 계속 강하게 어필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갑자기 돌변하면서 욕설을 내뱉으며 주먹으로 때리겠다고 협박하는 것입니다. 그는 완전 딴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저는 그를 붙잡으며 겨우 진정시켰지만, 갑자기 이별을 고하는 그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그는 결국 저를 주먹으로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명치 쪽을 말입니다. 

저는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서, 그와의 관계를 끝내고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가 버렸습니다. 2주 후에 그는 저한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시 좋게 지내자는 문자를 보내왔지만, 저도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해 답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를 마지막으로 보고 난 후부터 5개월이 지난 지금… 갑자기 그에게 카톡이 왔습니다. 그 내용은 자신이 너무 고통스럽다는 것과, 나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특정 누군가에게 자신의 정보를 주지 말라는 것과, 지금이라도 자신의 집에 와 달라는 것, 자신을 힘들게 했던 누군가를 경찰에 고발해 달라는 것, 그 사람이 자신을 계속 협박한다는 내용 등이었습니다. 

그를 잘 아시는 분이 제게 전화해서 혹시 그에게서 연락이 왔느냐고, 지금 망상이 시작되었다며 그와 접촉하지 말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그가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가 정신과 약을 먹고 있기는 한데, 피해망상이 심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피해망상 중에 제 얘기도 있는데, 저에 대한 분노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그가 조현병으로 아프다는 것도, 말도 안 되는 망상으로 인해 저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는 것도 말입니다. 

지금은 그에게 카톡 답장을 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제게도 이중적인 마음은 듭니다. 그를 완전히 잊고 얼마든지 다른 남성을 만나서 결혼할 수도 있을 텐데…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또 제가 그를 잘 도와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조현병에 걸린 그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요? 나에 대한 망상이 거짓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와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궁금합니다. 좋은 답변 부탁드립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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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께서 올려 주신 사연 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조현병을 앓는 과거 남자친구 분의 치료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또 그분과 다시 시작하는 것이 좋을지에 관한 고민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조현병 환자의 경우라고 해도 잘 치료받고 관리한다면, 충분히 일상생활을 해 나가거나 적응적으로 기능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남자친구 분이 조현병 환자이기 때문에 만남을 지속하는 것은 어렵겠다는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조현병 환자이기 이전에 ‘사연자님의 남자친구’라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남자친구 분에 대한 사연자님의 마음이 얼마나 진심이고, 확고한지를 우선적으로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사연자님께서 연인과의 관계에서 바라는 점이나 우선시하는 부분 혹은 그분과 맺었던 관계의 패턴이나 특징에 대해 찬찬히 돌아보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셨으면 합니다. 이런 시간을 통해 흐릿했던 사연자님의 생각과 마음이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남자친구 분을 얼마나 사랑하나요? 

- 그분에 대한 마음은 진심인가요? 

- 연인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 과거에 그분은 그 부분에 대해 충족시켜 주셨나요? 앞으로는 어떨 것 같으시나요? 

- 그분께서는 사연자님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고 느끼시나요?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결혼 적령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남자친구 분과는 만나면서도 결혼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셨어요. 아마도 남자친구 분의 불안정한 상태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도 좀 더 명확하게 사연자님의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연애에만 집중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결혼을 전제로 누군가와 만남을 이어 가고 싶은 것인지 말입니다.  

또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남자친구 분의 폭력성에 관한 것입니다. 물론 남자친구 분은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이고, 조현병이라는 지속적인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현병 환자라고 해서 특별히 폭력적인 것은 아닙니다. 조현병 환자의 60% 정도가 우울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들은 오히려 폭력적이라기보다 사회적으로 위축되거나 소외된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조현병 치료에서는 약물치료가 굉장히 중요한데, 다 나았다고 생각해 약물치료를 중단할 경우 환청이나 망상 증상이 악화되면서 불안과 초조, 충동 조절의 어려움이 발생할 수가 있습니다. 이 시기에 충동성이 행동화될 가능성도 있지만, 이는 극히 드물고 약물치료를 통해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남자친구 분이 조현병 환자라는 이유로 사연자님께 가한 폭력적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남자친구로부터 신체적 폭력과 상처가 되는 말들을 듣게 되면서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로 인해 급하게 이사를 가야 할 만큼 큰 충격을 받으셨고요. 사연 글을 읽으면서 사연자님께서는 심성이 여리고 마음이 좋은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남자친구 분께서 조현병 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조차 사연자님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보다는 남자친구 분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각별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연자님께서 남자친구 분께 폭력을 당하고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받았던 일들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 시점에서 사연자님께서 남자친구 분께 느끼시는 감정이 과연 무엇인지 명료화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남녀 관계에서 상대를 이성적으로 ‘사랑하는’ 감정과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엄연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사연자님께서 과거 남자친구 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과연 ‘사랑’일까요? 아니면 ‘연민’일까요? 물론, 누군가에 대한 감정은 복합적일 수 있고, 이분법적으로 나뉘거나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성에 대한 감정이 사랑보다 연민에 가깝다면, 연인 관계를 이어 나가는 데 주요한 동력원을 상실한 상태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불과 일 년도 안 된 기간 동안 남자친구 분과 교제하는 상황에서 너무나 힘든 일들을 겪으시고, 깊은 마음의 상처까지 받으셨어요. 이 일로 이사까지 가게 된 상황이시고요. 그런데 몇 달 만에 연락해 온 남자친구 분께서는 사연자님께 지금 당장 집에 와 달라거나 누군가를 경찰에 고발해 달라는 메시지를 주로 전하고 계신 듯합니다. 과연 사연자님께 과거의 일들에 대해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사랑하는 마음을 진정성 있게 표현하셨는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사연자님과 남자친구 분은 과거 연인 관계였고,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그 관계는 변함이 없습니다. 연인과의 관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과 ‘신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과연 과거의 남자친구 분과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고, 소통적인 상호작용을 하실 수 있으실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셨으면 합니다. 대부분의 관계가 그렇겠지만 특히나 연인 간의 관계에서 일방향적인 관계란 성립되기 힘듭니다. 한쪽에서 거의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심하게 균형이 깨진 관계는 건강한 관계로 발전해 나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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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글에 적어 주신 일화들의 면면을 보면, 사연자님께도 다소 통제적이라든가 상대를 자극하는 행동들이 엿보입니다. 예를 들면, 남자친구 분이 어디를 가야 했던 일요일 날, 사연자님께서는 굳이 남자친구 분의 아버님께 비밀번호를 알아내서 문을 열고 들어가셨어요. 당시에 남자친구 분께서 사연자님을 향해 물건을 던진 폭력적인 행동은 응당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된 행동입니다만, 아무리 남지친구라도 허락도 없이 집에 들어가는 행동은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화가 나고 지나친 간섭이라고 느낄 수 있는 행동입니다. 안 그래도 망상적 경향과 경계선적 성향이 있는 남자친구 분에게 사연자님의 거침없는 행동은 자극이 되고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자신을 감시한다고 생각하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더해 이제는 여자친구까지 합세한다는 느낌을 받으셨을 테고요.

사실 조현병 환자를 곁에서 케어하거나 지속적으로 지지해 주는 일은 가족 분들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남자친구 분을 직접 만나 뵙지 않은 상황에서 정확한 진단을 내리거나 쉽게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단기간에 완치되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환자의 가족이나 연인과 같이 가까운 주변 사람들이 지치는 상황이 반복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만약 남자친구 분과 다시 새롭게 시작하게 된다면, 그 계기가 단순히 남자친구 분이 사연자님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 서로의 사랑이 확고하고, 서로를 절실히 원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확인 단계를 거친 후에 관계를 이어 나갈지, 그만할지를 결정하는 것 역시 두 분의 몫입니다.

 

사연자님께서 남자친구 분과 다시 시작하게 될 경우, 상대방이 피해망상이나 경계선 성격의 성향이 있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을 통제하려 하거나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말과 행동은 삼가도록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음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대신에 곁에서 지속적으로 격려와 지지를 보내 주고, 신뢰 관계와 애정적 관계를 경험하도록 해 주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전문적인 치료 역시 꾸준히 이어 가실 것도 당부 드립니다. 

그리고 만약 충분한 고민 끝에 남자친구 분과 지금처럼 이별한 상태로 지내기로 결심하셨다면, 이제는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마시고 사연자님의 현재의 일상과 감정에 집중하시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과거 남자친구 분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진 뒤에 말입니다. 이로써 과거의 사랑을 후회와 미련이 아닌, 추억과 성장을 위한 의미 있는 시간과 경험으로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부디 저희의 의견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 사연자님께서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선택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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