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성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현재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관련 정보를 찾아보던 중 제가 회피성 성격장애인 것 같은데, 혼자 병원에 가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회피성 성격장애나 다른 병이 의심이 되는지,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답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내향적인 성격이어서인지 아니면 사람들을 두려워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릴 때부터 친구가 별로 없었습니다. 운동이라든지 아니면 당시 딱지를 애들이 많이 쳤는데 그런 데 관심이 없기도 했습니다. 축구, 수영 학원을 잠깐 다녔었는데 갈 때마다 두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중학교 때 비슷한 애들을 만나서 그나마 잘 지냈던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저는 양성애자라는 것입니다. 저는 남녀 성별 구분에 대한 회의감이 항상 있었는데, 중학교 친구들 두세 명 빼고는 남자 애들하고 어울리기기 힘들었고, 여자 애들도 이성이니까 잘 못 어울렸습니다. 아무튼 그때는 중학생 때고 고등학교 들어와서 남자한테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통 자기 성 정체성을 처음에는 부정하는 것과 다르게, 저는 어떻게 보면 되고 싶어서 된 측면도 있고 연애를 해 본 적도 없어서 이건 확정은 아닙니다. 

다른 중요한 내용은 공부 압박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얼마 안 남았다며 10년만 참으라던 엄마 말이 기억나는데, 벌써 고등학교 3학년이니 감정이 묘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몇 번 학원을 쉰 걸 제외하고 학원을 여러 군데 다녔고, 저는 마지못해 공부했었고, 지금은 여태까지 공부한 게 아까워서 몇 개월만 더 하자는 마음으로 버티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가족들 입장에서는 저를 굉장히 자유롭게 키운다고 생각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숙제해 놓고 어디 놀러간다고 할 때마다 그것들을 다 꺼내서 사실상 외출이 어렵습니다. 마치 학생이라면 공부하는 게 당연한데, 제가 공부를 안 하고 있으면 황당해하더라고요.

이 세 가지 주요 사항 및 기타 상황들이 겹쳐서 지금은 너무 외롭고, 사람들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런 상황으로 인해 나타난 의심 증상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 화장품이나 옷 사달라는 말 등은 생각부터 말하기까지 몇 개월이 소요되는 경우도   있음

- 사람 많은 화장실에 못 들어감(버스, 엘리베이터는 상관없음)

- 내 자아가 받아들여지는 정도에 따라 대안관계가 고착화되어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어려움

- 사회성이 필요한 일반 직장인은 되기 싫고 열차나 트레일러 운전 같은 것을 하고 싶음

- 군대에 가기 무서워서 최근 몇 개월 동안 군대에 가기 무섭다는 생각만 하루 종일 함

- 걸어가면서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을 때(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내가 무슨 노래를 듣고 있는지 알고 있고, 왜 저런 노래를 듣느냐고 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인기 차트를 참고하여 노래를 바꿈

- 유튜브에서 악플을 안 다는 데도 불구하고 댓글을 달 때 다른 사람들 시선이 무서워서 대외적으로 쓰는 계정과 댓글을 달 때 쓰는 계정이 따로 있음

- 지금 이 글을 쓰기 전에(그럴 확률이 없는데도) 가족이 볼까 무서워서 몇 십 분 동안 쓸까 말까 고민함

- 성 지향성에 대해 부모님을 절대 설득할 수 없다고 지레짐작하여 빨리 취업해서 독립해야겠다는 생각만 함

 - 엄마가 감시하기 위해 방문을 항상 개방하므로 문을 닫는 게 더 이익임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으면 이유 없이 불안하여 문을 열어 놓음

 - 가족이 외출했을 때 나도 잠깐 혼자 외출할 수 있고, 그렇게 하고 싶지만 누가 볼까 봐 그냥 집에 있음

- 내 목소리가 싫어서 최근에는 소리 내서 울어 본 적이 없음

- 잠을 많이 자도 피곤하며, 원인 불명의 소화 불량을 달고 다님

- 인생 자체가 억울한데 탓할 사람이 없음

- 자살하기 싫지만 죽음이 무섭기 때문이며, 인생에서 기대할 것이 없음

자살, 자해 등 심각한 증상은 없지만, 불편감을 느끼는 다양한 증상이 굉장히 오랫동안(거의 기억이 존재하는 어린 시절부터) 지속되어 고민입니다. 우울증 등 자가진단 테스트에 보면, “평소보다 ○○하다.”는 문항들이 있는데 저한테 평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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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께서 적어 주신 사연글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자신의 성격과 관련해 고민하고 성찰해 오신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또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생활 전반에서의 불편감을 경험하고 자기 부적절감 때문에 괴로워하시는 모습이 엿보여 많이 힘드셨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심적으로 많이 힘들고, 여러 관련 정보를 찾아보던 중 스스로 회피성 성격장애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질문해 주셨네요. 사연자님께서 그동안 살아오신 이야기들을 자신의 성격적 특성과 관련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점들에 대해 잘 정리해 주셨는데요, 안타깝게도 지면상의 내용만으로 정신적 질환이나 특정 성격장애를 진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신과적 진단은 전문가와의 면담과 상담, 여러 진단 기준에 비추어 다각도로 면밀히 살펴본 후에 판단이 가능합니다.

또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히스토리와 특성과 잠재된 내면의 힘과 회복력, 치유적인 힘 등을 가지고 있는 만큼, 자신을 특정 성격장애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다소 지양할 필요도 있습니다. 스스로를 그 틀 안에 가두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기서는 사연자님께서 궁금해하시는 회피성 성격장애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회피성 성격장애의 특징은, 상대방의 평가에 대하여 예민하게 반응하고, 거절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주된 심리입니다. 이 때문에 대인관계를 회피하게 되고, 친한 사람들과만 지내려고 합니다. 또 사회적인 활동을 원활히 하지 못하게 됩니다. 발표 상황, 긴장되는 상황 등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 불안 수준이 심해서 일상적인 활동, 대인관계 등에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한다면 회피성 성격장애를 고려해 볼 수도 있습니다.

대인관계에서의 불안이 청소년 후반기, 성인기 초반기에까지 지속된다면 진단을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회피성 성격장애 환자의 경우, 전두엽의 억제 기능이 과도하게 활성화되어서 일반적인 활동까지 억제하는 것이 주된 병리입니다. 또한 기질적으로 취약한 아이에게 부정적인 경험이 되풀이될 경우에 회피성 성격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진단 및 감별 진단의 경우, 사회적인 관계의 제한, 대인관계에서의 불편감, 부정적인 평가에 대한 지나친 예민함 등이 전반적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좀 더 정확한 진단과 평가는 진단 기준에 의거해 전문가와의 상담과 면담 등 전반적인 평가를 거친 후에 내려지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정상적인 수줍음(shyness)과의 감별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주목받는 상황이나 발표하는 상황 등에서 당연히 불안감을 느낍니다. 이러한 정상적인 불안과 회피성 성격장애는 반드시 감별이 필요합니다. 불안감을 어느 정도 경험하지만 그럭저럭 극복하고 대인관계 및 일상적인 활동이 가능하다면 이는 회피성 성격장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회피적 성격으로 인해 일상 활동, 대인관계, 직업 활동에 상당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 회피성 성격장애가 고려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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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씀해 주신 내용대로라면, 사연자님께서는 비록 내향적인 성격이라고는 하셨으나 친구들이 많지 않으셨던 것뿐이지 친구가 아예 없거나 학교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로 교우 관계에 어려움이 있으셨던 것은 아닌 듯합니다. 다만, 사람이 많은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사회성이 필요한 직업은 아예 사전에 고려하지 않으시는 등 대인관계 및 낯선 상황에 대한 두려과 불안감이 다소 내재되어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대인관계 역량이나 사회적 기술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형태의 관계를 맺는 경험을 하면서 대인관계 능력도 점차 향상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동안 학교생활을 통해 많은 친구들과 한 반에서 지내 온 시간이 있으셨을 겁니다. 그러나 입시 위주의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비추어 보면, 학교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이 학업에 집중되고 방과 후에는 다시 학원으로 향해서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시간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동안 사연자님의 생활 패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셨을 겁니다. 조금 씁쓸한 현실인데요, 그러다 보니 대학이나 사회에 진출하기 전까지 교내 친구들 외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풍부한 경험을 쌓아 나가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앞으로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에 나가서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다 보면, 대인관계 역량과 사회적 기술이 조금씩 쌓여 나갈 것입니다. 사연자님은 아직 꽃도 피우기 이전, 이제 막 꽃봉오리가 올라오는 인생 초반의 시기인 만큼 사연자님의 내면을 성잘시킬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충분합니다. 대인관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직업을 한정할 만큼 너무 위축되거나 일찌감치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성적인 정체성에 대해서도 스스로를 양성애자라고 규정하셨지만, 기술해 주신 내용을 보면 실제로 동성과의 연애 경험이 있다거나 사랑에 빠진 적은 없으셨던 듯합니다. 청소년 시기에는 동성에 대한 동경이나 강렬한 우정의 감정이 나타나는 특징이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성 정체성 역시 일찍부터 자신을 규정하기보다 차후 열린 마음으로 연애나 사랑에 대한 경험을 쌓아 나가시면서 자신의 성적 취향과 성향을 알아가 보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인 만큼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신 상황 같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압박감이 큰 상황과는 별개로 불안감이나 타인에 대한 경계 수준이 높아 보이기도 합니다.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을 때 다른 사람들이 무슨 노래를 듣고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거나, 유튜브에 댓글을 달 때도 행여 사람들이 볼지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감, 지나치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양상이 엿보입니다.

어머니께서 자신을 감시한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어머니께서 사연자님을 자주 감시하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그동안 감시해 오셨는지 궁금해집니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께서 사연자님께 과도한 간섭이나 통제를 해 오신 것인지, 아니면 사연자님께서 유독 어머니나 가족들의 참견이나 간섭을 감시로 받아들이는 것인지,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부모님과 대화를 통해 사연자님의 이러한 믿음이 과연 사실인지 여부를 현실적으로 검증해 보셨으면 합니다. 한편으로는, 가족 분들에 대한 불편감과 낮은 신뢰감을 갖고 계신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을 때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왜 저런 노래를 듣느냐고 놀릴 것 같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생각이 자동적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러한 일은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지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현실 검증력은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나 가족 분들이 사연자님을 감시한다고 느끼시는 사고 경향은, 피해망상적인 측면도 나타나는 것 같아 조금은 우려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종합해 보면,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불안 수준이 다소 높고, 타인에 대한 경계와 의심, 망상적 경향이 있어 보이는데요, 이러한 사연자님의 어려움을 가족 분들에게 털어놓고 지지받으면서 다소 비현실적인 사고 경향에 대해 함께 현실 검증을 해 보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져 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만약 사연자님의 현재 상황에 대해 가족 분들에게 솔직하고 털어놓고 편하게 도움을 받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학교 상담소의 전문 상담가나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또는 온라인 상담 등을 통해 현재의 어려움을 꺼내 놓고, 조금씩 해결해 나가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이렇게 내면의 어려움과 두려움들을 마주하고 극복해 나가신다면, 세상과 사람에 대해 신뢰감과 인생에 대한 희망감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성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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