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8일.

 

평화 속 무한 경쟁.

치수나무(young tree, sapling)를 구경할 수 있었다. 정말 귀여웠는데 사실 이들은 결과적으로 계속 함께 자랄 수는 없다. 관리자들이 솎아내든지, 그들끼리 경쟁을 해서, 살아남을 나무와 죽을 나무가 결정이 난다. 철저한 경쟁의 원리인 것이다. 보기에 아직은 귀엽기만 한 나무이지만, 그들은 하부, 바로 흙에서 뿌리 경쟁을 하며 서로를 잡아먹고 있을 것이다. 뿌리 세력이 강한 자만이 살아남아 나무가 되겠지만, 바로 옆 자신의 씨를 뿌린 어미 나무 옆에서 잘 자라남을 수 있을까? 글쎄, 의문이다.

평화로워 보이기만 하는 숲은 실상 무한 경쟁 속에 놓여 있다. 누가 봐도 너무 빽빽이심어 놓은 은행나무 숲. 언젠가는 서울 숲 측에서 솎아내는 날이 올 것이다. 보기 좋으라고 심어 뒀으니 그냥 두지만, 실상 장사를 하려거든 반절 이상은 솎아내야 맛이 나는 사과가 맺히는 사과나무. 그대로 두면,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사과가 대량으로 열릴 것이다. 

 

알알이 열린 사과
알알이 열린 사과
나무에서 떨어진 씨앗에서 열린 치수나무
나무에서 떨어진 씨앗에서 열린 치수나무

 

숲의 평화의 이면에는 무한 경쟁이 도사리고 있다. 층층이 쌓인 것이 많은 흙에는 개미들이 분주히 일을 하고 있었고, 과실수가 있는 지역에는 까치가 기웃거리고 있었다. 너무 빽빽이 심겨진 나무들은 뿌리가 상층부로 올라오는 일을 해서라도 뿌리를 확장시켰다. 모두가 살아남기 위한 커다란 몸짓이었다. 담쟁이는 열심히 나무를 올라타 실제 나무에서 난 잎과 경쟁하고 있었다.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며 그날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숲이 나에게 알려준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였다. 

무한한 자신과의 싸움.

 

흙 상부로 올라온 뿌리
흙 상부로 올라온 뿌리
 나무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
 나무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

 

나는 이 말의 함의가 너무도 무거워 애써 몇 주는 외면했다. 숲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러해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자신 안에서 많은 것들을 단정히 한다. 나무들을 규칙대로 세우고, 나무의 잎을 규칙대로 나게 한다. 냇가와 호수의 물가에 잘 자라게 할 것들을 정해 자라게 한다(서울숲은 인공적으로 심었지만, 자연에서는 물가에 잘 자라는 식물들이 자연스레 피어난다). 뿌리 싸움을 시켜서라도 나약한 나무는 시들게 하고, 그 안의 동물과 곤충들이 그것들을 먹고, 번식시키도록 한다. 그 번잡하고 많은 일들을 매일 최선을 다해 이루도록 한다. 겉으로는 평화로운 얼굴을 하면서. 내게 쉴 자리도 한 자리 내어 주면서. 

 

물가에서 자라나는 것들
물가에서 자라나는 것들

 

명지바람(보드랍고 화창한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돌개바람(회오리 바람)이 불었다 한들, 명지바람으로 기억할 것이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모임에서 벗어나면, 다시 무한한 경쟁의 사회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을. 위로와 안녕을 서로 바라주던 이 평온한 모임을 벗어나면, 경쟁뿐이라는 것을. 하지만 또 다른 사실 또한 알고 있다. 내가 사랑하고 존중해 마지 않는 숲조차 자기 안에서는 무한한 경쟁과 부지런한 일들을 하루 종일, 그리고 다음 날이 되면 언제 어제가 있었냐는 듯이 오늘 다시 해 나간다는 사실을. 어쩌면 나는 그래서 숲의 약간씩의 변화와 큰 평화를 존중해 마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 평화로운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기에 평화로운 것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었기에. 

서울 숲이 마지막 주, 나에게 보내 주는 명지바람을 타고 나 또한 작고 귀한 결심들을 세워 본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신 선생님께서 우리와 나누고 싶어 가져오신 ‘잘랄루딘 루미’의 시를 나도 여러분과 나누며 12회를 마지막으로 인사 드리는 이 마음을 전해 드리고 싶다.  

 

여인숙 

                        _ 잘랄루딘 루미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 환영하고 맞아들이라.

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거나

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 버리고

가구들을 몽땅 내가더라도

그렇다 해도 각각의 손님들을 존중하라.

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그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후회

그들을 문에서 웃으며 맞으라.

그리고 그들을 집 안으로 초대하라.

누가 들어오든 감사하게 여기라.

모든 손님은 저 멀리서 보낸

안내자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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