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평생의 사랑을 맹세하는 아름다운 약속인 ‘결혼’. 혼인 서약의 순간에는 그토록 견고해 보이던 것이, 갈등이 쌓이고 반복될수록 점차 흩어져 버리고는 합니다. 헤어짐을 예상하고 결혼을 결심하는 부부가 과연 있을까요. 예상치 못했던 장애물에 결국 무너지는 것이겠지요. 가족이 되었다가 다시 남이 되는 과정은 부부 모두에게 큰 상처로 남게 됩니다.

이러한 가족의 해체가 점점 더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지난해 한국의 조이혼율(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은 2.0을 기록, 전 세계 평균인 1.7보다 높았습니다. OECD 회원 38개국 중에서는 9번째로 높은 순위입니다. 수많은 부부의 이별로 대변되는 9위라는 기록. 이 기록 너머에 어쩌면 당사자인 부부보다 더 아파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한때 사랑했던 증거이자 결실인 ‘자녀’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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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혹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STD)가 학계에서 인정받게 된 계기를 아시나요? 그 출발은 제1, 2차 세계대전입니다. 참전 군인들이 분노 조절 장애, 과한 흥분 상태 등의 이상 증세를 보이자 정신 의학계에서 논의가 시작됐죠. 나치 대학살의 피해자인 유대인, 베트남 파병 군인 등도 비슷한 고통을 호소하면서 개념이 더욱 구체화되다가 1980년 미국 정신 의학회에서 공식 병명으로 채택됩니다. 

갑자기 군인들의 정신적 외상을 설명하는 이유가 궁금하시겠지요. 부부의 잦은 다툼을 목격하거나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이는 이처럼 전시 상황의 군인과 비슷한 정도의 스트레스를 겪는다고 합니다. 총성이 울리고 생명이 위협받는 전쟁터의 두려움, 공포, 불안이 아이의 마음에도 자리하는 것입니다. 일부 아이들은 부부 갈등의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자책하기도 합니다.

 

자신과 애착 관계에 있던 부모 중 한 명이 사라지면 자녀는 슬픔과 상실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물리적 거리감이 생기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며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경험하게 되지요. 이를 잘 극복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부모의 미흡한 대처 때문에 상처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부로서의 선택’이 ‘부모로서의 역할’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방법은 무엇일까요? 비록 부부 관계는 끝났지만, 삶의 울타리이자 길잡이로서 양육의 책임을 다하는 부모로 아이의 곁에 머무는 것 말입니다.

우리 법에는 ‘공동 양육’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단독의 양육권자를 지정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부부 모두에게 양육권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 경우 자녀는 두 가정을 오가며 두 명의 양육자 아래 생활하게 되며, 이는 우리나라보다 미국의 이혼 가정에서 더욱 흔하게 볼 수 있는 양육의 형태입니다.

얼핏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공동 양육은 그 효용성을 두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데다 법적인 절차도 다소 까다로운 편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부모로서의 자리를 지킨다’는 취지에서 생각해 볼 지점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자신의 전 남편 혹은 전 부인이 아이에게는 아빠 또는 엄마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험담을 늘어놓는 일, 자신의 분노 때문에 아이와의 만남을 차단하는 일, 반대로 새로운 삶에 몰두해 아이가 점차 뒷전으로 밀려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 가정에서 자주 일어나던가요. 곁을 지키는 것만이 온전한 사랑을 뜻하는 게 아닌데도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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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남이 된, 그 사람에 대한 미움은 잠시 접어 두고 부모의 역할에 충실하고 싶다면 앤 버스쵸(Ann Buscho) 박사가 제안하는 다음의 4가지 조언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아이가 부모 양쪽 다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세요.

부족하고 불완전한 부모일지라도 아이들은 부모 모두를 필요로하고, 사랑합니다. 단 가정폭력이나 신체 및 정서적 학대가 있었던 경우는 제외입니다. 

 

△ 다른 부모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금물입니다.

“아빠를 닮아서 수학을 정말 잘하는구나!”와 같이 긍정적인 언급을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 전 배우자의 사생활을 캐내기 위한 스파이로 자녀를 활용하지 마세요.

아이는 눈앞에서 다툼을 목격하지 않더라도 작은 단서나 부모의 표정 등으로 갈등을 느끼고 불안해할 수 있습니다.

 

△ 부모 중 한 명과 떨어져 지내더라도, 부모 모두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세요.

아이의 삶에서 중요한 순간들을 공유하고 축하해 주는 게 좋습니다. 아이가 큰 상을 탔거나, 중요한 시험 및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냈을 때 상대가 격려할 수 있도록 귀띔해 주세요.

 

부부 관계는 시작도, 끝도 당사자의 의지에 따라 결정할 수 있지만 한 번 부모가 되면 삶이 다하는 날까지 그 역할을 포기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의 절반을 잃어버린 아이에게 “우리의 관계가 변화해도 네 곁에 늘 굳건히 서 있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부모로 남는 일만큼은 저버리지 않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우경수 원장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대구가톨릭대병원 의과대학 학사 , 석사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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