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어릴 때부터 지각 습관이 심한 편이었습니다.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준비하고 화장실에 다녀오고 하다 보면 꼭 10분이라도 늦고야 맙니다. 학창 시절 내내 지각 습관을 떨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첫 직장부터 세 번째 직장 모두 원거리 근무지였습니다. 집 앞에서 제시간에 버스를 타지 못하면 한 시간이 넘도록 지각해서야 도착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이때는 지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땐 정말 마음을 독하게 먹어서 지각 습관을 고친 줄 알았어요.

저의 만성 지각 문제는 현재 다니고 있는 네 번째 직장에서 다시 터졌습니다. 버스로 10여 분 거리에 가는 가까운 곳이어서 그랬을까요? 조금이라도 늦으면 출근길이 막혀 지각인 줄 뻔히 알면서도 왜 몸은 자꾸 화장실에 가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지각하지 않게끔 일찍 집을 나서는 게 너무 힘들어요. 전에는 생각도 없었던 화장실도 아침이면 매번 가게 되고요. 화장실 문제가 없을 땐 어떤 일이 생기거나 스스로 꾸물거리고 늦장 부리는 게 통제가 안 됩니다. 저의 상사 겸 관리자님이 결국 보다 못하셨는지 이런 말까진 안 하려 했지만 지각 좀 안 할 수 없냐고 말씀하시더군요.

저도 참 어리석었습니다. 일하는 곳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이번 일자리에서 짤릴 뿐만 아니라 다음에도 근로신청자 블랙리스트에 올라 불이익을 받을 걸 그제야 상기했죠.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론 지금까지 눈 감아 주신 직장 사람들에 대한 죄송한 마음과 함께 세 달 동안 몸이 부서져라 일했는데 고작 5분, 10분 지각했다고 성질내는 건가? 하는 비합리적인 짜증도 몰려왔습니다. 내일 또 지각하면 정말 죽음인데, 전 어떡하면 좋을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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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적어 주신 사연 잘 읽어 보았습니다. 지각하는 습관으로 현재 생활에 지장이 많이 생긴 상황이네요. 초등학생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유지된 습관이었으니, 분명 문제임을 오랫동안 알고 있었지만, 완전히 습관을 바꾸는 데는 실패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직장 상사가 주의 줄 정도인데요. 다른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지각 문제는 대놓고 눈에 띄기 때문에 사연자님의 능력이 전체적으로 저평가될 수 있습니다. 

무리하게 혹사하며 일한 것과는 상관없이, 지각 습관은 사실 조직에서 수용되기 힘듭니다. 성실한 근태는 사회적인 약속이자 법적인 효력을 갖는 계약서상에 포함된 업무 영역이기 때문이지요. 이에 대해 ‘고작 5분, 10분 지각한 걸 가지고 그렇게까지 성질을 내나?’라고 억울해하는 마음은 사실, 사연자님 말씀처럼 비합리적인 감정이 맞습니다. 지적하는 사람에 대한 반발심은 자연스럽게 들 수 있지만, 오래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뼈아프지만 타인의 지적은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반응입니다. 이를 제대로 인정하고 나의 행동이 타인이나 조직에 미치는 영향들을 헤아리고 책임지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사연자님이 지각에 대해 여전히 비교적 가볍고 사소하게 여기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이번 직장에서 짤려도 다른 직장으로 옮긴다는 대안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는 지각이 ‘개인적인 나쁜 습관’만이 아닌, ‘자신과 타인에게 커다란 손실을 주는 행위’라고 재정의함으로써 부정적인 습관의 무게감을 제대로 느껴 보셨으면 합니다. 그래야 변화가 절실해집니다. 절대 해고되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동기가 있다면, 습관을 바꿀 심리적 준비가 비로소 된 겁니다.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습관’의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중독이나 음주, 지각, 폭식 등 부정적인 습관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습관을 못 바꾸는 것을 의지력의 부족이나 게으름 문제로 해석하는 것이죠. 물론 동기나 의지, 성격적 요인도 습관에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칩니다. 그렇지만 신경과학자들이나 행동분석학자들은 습관을 의지력이나 게으른 성격 문제보다 ‘뇌의 문제’로 봅니다. 주변 환경과 특정 조건들의 결합과 반복된 행동으로 습관이 만들어진다는 것이죠.

 그런데 습관이 형성되고 반복되면 의식이 점차 관여하지 않습니다. 즉,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이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 외출 준비를 하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려 보세요. 모든 사람들이 각자 습관처럼 형성한 단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어나서 기지개를 켠다, 부엌에 가서 물을 마신 다음 화장실에 바로 간다. 혹은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한다, 휴대폰을 확인하며 5분간 꾸물거린다 등 이 모든 단계들은 반복을 통해 무의식적인 행동 습관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즉, 생각이 관여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몸이 움직이는 것이죠.

오늘 아침에 어느 쪽 신발부터 신었는지, 외투를 어떤 순서로 입었는지 사실 우리는 의식하며 행동하지 않습니다. 즉, 우리가 하는 행동은 의지력이 발휘된 결과인 경우도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습관이 발휘된 것도 상당하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듀크 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 행동 중 45%가 습관으로 구성되어 있고, 나머지 55%가 의식적인 선택이라고 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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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자님의 지각은 무수히 반복된 행동으로 인한 무의식적인 선택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를 의식적인 통제를 하기 위해서는 지각 습관을 낱낱이 분석해야 합니다. 습관 형성의 신경학적인 구조를 다뤄 베스트셀러가 된 찰스 두히그의 <습관의 힘>을 읽어보면 더욱 구체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간단히 소개하면 습관은 ‘신호’와 ‘반복행동’, ‘보상’이라는 세 가지 단계를 거쳐 공고하게 형성됩니다. 

신호는 반복 행동을 하게 만드는 각종 자극입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습관을 만드는 신호는 다음 중 하나에 속합니다. 장소, 시간, 감정 상태, 직전의 행동, 다른 사람, 이렇게 다섯 가지인데요. 지각 습관 일지를 작성해 보세요. 여기서 사연자님의 반복행동은 ‘꾸물거림’입니다. 꾸물거리며 하는 여러 가지 행동이 있을 겁니다. 구체적으로 나열해 보세요. 시간이 남았는데 지루해서 휴대폰을 봤다든지, 일하러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 당장 안 해도 되는 행동들을 먼저 하면서 출발을 지연한다든지 등 패턴을 찾아보세요. 

오후 네 시에 슬슬 피곤하고 당이 떨어질 무렵 많은 분들이 카페에 가면 빵이나 달달한 음료를 사먹는 것을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지루함과 피로감이라는 감정 상태가 신호가 되어 특정 장소에 가게 되면 무심코 사 먹게 됩니다. 이 행동을 통해 기분 전환이라는 보상을 얻으면, 보상을 얻기 위해 행동이 반복되면서, 오후에 당충전하는 습관이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사연자님의 습관을 변화하기 위해서는 꾸물거림을 유발하는 모든 신호들을 분석해서 바꿔 보고, 꾸물거리는 반복행동으로 주어지는 보상을 더 강력한 보상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침 시간대에 꾸물거리는 행동을 유발하는 장소가 주로 침대라면, 일어나자마자 의식적으로 장소를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일어나자마자 바로 화장실에서 씻는 루틴을 만들어 볼 수 있겠지요. 감정 상태가 지루함이라면 즉시 지루함을 해소할 수 있는 자극을 채우느라 준비 시간이 부족해질 수 있는데요. 감정 상태에 대해 즉시 해소하려는 반응을 하기 전에 먼저 어떤 감정 상태인지를 알아차린 후에, 감정을 해소할 시간대를 미리 지정해 두세요. ‘만약 무사히 안전한 시간대에 출근길에 올랐다면 가는 길에 게임이나 영상 시청을 하는 것으로 보상을 주자.’ 이렇게 ‘의식적’으로 계획하는 겁니다. 옷을 고르는 ‘직전 행동’ 때문에 꾸물거리게 된다면 옷을 고르는 행동을 전날 미리 해결해 두면 되겠지요. 이런 식으로 꾸물거리게 되는 상황들의 신호를 찾아 이전과는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세요. 새로운 습관의 회로를 형성하는 과정은 결국 반복하고 견뎌야 합니다. 

 

두 번째로, 신호를 분석하고 새로운 환경을 조성했다면, 반복행동에 따르는 보상을 바꾸는 작업을 시작하세요. 현재 꾸물거리면서 지각할 때 얻는 보상은 그나마 일반적으로는 아슬아슬하게 도착해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는 심리적인 쾌감이 있겠습니다. 다른 보상도 찾아보면 있을 겁니다. 어쨌든 지각에 따르는 보상에 비해 ‘정시 도착’은 사연자님에게 전혀 보상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정시 도착보다는 차라리 일찍 도착해서 특정 장소와 시간대에서 보상을 받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8시 30분에 커피숍에서 마시는 음료를 최우선 일일 목표로 설정하세요. 또는 3일 연속 8시 30분 전에 도착했을 경우, 사고 싶은 물건을 산다. 등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찍 도착할 때 스스로 얻을 수 있는 보상의 크기를 키워야 하겠습니다. 동시에 지각할 경우 얻을 처벌도 확대할 수 있습니다. 지인들과 정시 출근 챌린지를 만들어서, 달성 못하면 벌금 내기를 하는 방식을 예로 들 수 있겠지요.

 

마지막으로 사연자님의 습관을 바꾸기를 진정 바란다면, 습관에 관한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보세요. 지금 가진 능력과 노력으로 변화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면, 외부 자원을 활용하거나 도움을 활용할 단계인 것입니다. 앞으로 지각보다 더 나은 새로운 습관이 형성되어 일상생활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김인수 원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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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선생님 글을 만났더라면 좀더 빨리 우울감에서 헤어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글 내용이 너무 좋아 응원합니다. 사소한 관계의 행복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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