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인지 누군가 제게 묻는다면 인간관계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공부도, 일도 아닌 사람 사이의 관계가, 가장 어렵게 느껴집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는 정해진 공식 같은 게 없습니다. 물론 정답도 없고요. 

상대방을 잘 안다고 생각해서 배려한다고 행동한 것이 오히려 나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올 때도 있고, 평소에 별로 호감이 없었던 직장 동료가 나에 대해 아주 좋게 평가했더라는 이야기가 뒤늦게 들려오기도 합니다. 간혹 누군가에게 전혀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선의를 베풀었음에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내가 그렇게까지 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면서 홀로 섭섭한 마음도 듭니다. 사람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괜한 실망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이제는 사람에 대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겠다며 슬며시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급니다. 그러나 사람 사이의 일이란 것이 자신의 의지대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기에, 엮이지 않으려고 애를 써 봐도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얽히고설킨 관계로 맺어져 있습니다. 

사람들과 가까워지다 보면 연약한 우리의 마음은 상처를 받습니다. 서로의 입장이나 이해관계가 부딪치면서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요. 두 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만큼 얄미운 친구도 있고, 뒤로 내 욕을 하고 다닌다는 동네 학부형의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도무지 이처럼 곤란한 상황이나 관계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심란하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매일 봐야 하는 직장 동료나 동네 엄마들과 모르는 사이처럼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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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엉킨 실타래 같은 관계를 풀 수 있을까요? 인간관계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또 가까울수록, 자주 보고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사이일수록 갈등은 더 잦아지고 깊어집니다. 사실 갈등이나 싸움이 없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그 관계가 친밀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갈등을 꼭 안 좋게만 볼 필요가 없는 이유입니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 보셨을 겁니다. 회복탄력성은 크고 작은 다양한 역경과 시련, 실패에 대한 인식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뛰어오르는 ‘마음의 근력’과도 같습니다. 물체마다 탄성이 다르듯이 사람에 따라 회복탄력성도 다릅니다. 역경으로 인해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도 강한 회복탄력성으로 다시 튀어 오르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원래 있었던 위치보다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섬으로써 더 높은 곳까지 튀어오를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관계에서의 핵심은 갈등을 잘 풀어 가는 것

인간관계의 갈등 상황에서 우리가 대처하는 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관계에서의 핵심은 갈등을 만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잘 풀어 가고, 회복할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을 갖추는 것입니다. 이것을 ‘갈등회복력’이라고 합니다. 

갈등회복력이 높은 사람들은 갈등이 관계를 위협한다고 보기보다 관계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다고 보고 이를 잘 풀어 나가려 합니다. 또 한 사람의 잘못이라기보다 서로의 차이, 즉 가치관, 대화 방식, 살아온 환경이나 양육된 방식, 성격 등의 차이로 인해 생겨나는 양쪽 모두의 문제에서 기인된 것으로 봅니다. 

갈등회복력이 우수한 이들은 관계에서 갈등이 생겨도 절망하거나 분노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다음 상대와 대화를 시도합니다. 이들은 먼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을 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숙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갈등 관계는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이러한 태도가 가능합니다. 이들은 과거에도 갈등을 풀어 본 경험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갈등회복력의 근육이 길러졌던 것입니다.

 

반면에 갈등회복력이 낮은 이들은 불편한 관계를 견디지 못하고 성급하게 사과부터 합니다. 자신이 진짜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서로 팽팽한 줄을 당기고 있는 듯한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불편한 나머지 이 상황에서 서둘러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한편 상대를 굴복시키고 싶은 욕구가 강한 이들은 상대에게서 반드시 사과를 받아내려고 합니다. 만약 자신의 뜻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으면 극단적인 경우, 관계를 아예 끊어버리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지언정 절대로 사과하지 않습니다. 먼저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자신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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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분열되기보다 연결되기를 바라고 추구하기

그러나 갈등회복력이 높은 사람들은 갈등을 서로의 입장 차이와 역기능적인 의사소통의 문제로 보기 때문에 무엇 때문에 갈등이 발생했는지 대화로 풀어 가려고 합니다. 이때는 자신의 흥분된 감정을 추스르고 상대의 안부를 물음으로써 회복의 토대를 만들고, 상대의 마음에 관심을 기울여 상대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나거나 속상했는지 알고자 합니다. 이후 상대가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하면, 그 마음을 알아주고 미안하다고 생각되면 진심으로 상대에게 사과합니다. 그다음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대안이나 바람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눕니다. 

또 이들은 누가 맞고 틀리는지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는 서로의 감정과 욕구에 초점을 둡니다. 갈등회복력이 낮은 사람이 상대와의 차이점이나 부정적인 면에 주목하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면서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부단히 애쓰는 모습과는 대조적입니다. 이들은 어떠한 사안에 대해 서로 입장 차이가 생겼을 때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되, 공통점을 찾아 해결책을 함께 만들고자 합니다. 갈등으로 인해 서로 분열되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연결되기를 바라고 추구하는 것이지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다 보면 갈등은 필연적입니다. 따라서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을 막연히 두렵게 느껴서 회피하거나 처음부터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인식하고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면 갈등은 해결되지 못하거나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살다 보면 정말 ‘아닌’ 상황, ‘별루인’ 사람도 있습니다. 피하는 것이 상책인 경우는 여기서 논외로 했습니다. 그런 ‘이상한’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갈등 상황에서는 서로의 입장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로 차근차근 풀어 가다 보면 조금씩 서로의 견해를 좁히거나 해결책이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이러한 경험이 쌓이다 보면 갈등회복력도 점차 높아지고, ‘갈등’에 대한 생각도 좀 더 긍정적으로 변화하면서 마음의 근육이 조금씩 길러질 것입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석사,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 위원
한국산림치유포럼 이사, 숲 치유 프로그램 연구위원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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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의 글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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