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1일.

 

* 급격히 상승된 불안증으로 참석하지 못하여, 9, 10화는 개인적인 숲의 기억을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리치몬드 공원(Richmond Park) 가로지르기

영국은 나의 도피처였다. 도피처치고는 가는 길만 비행기로 12시간 30분, 허리가 아프다든가, 볼 만한 영화가 없다든가 하는 투정을 부리며 창문을 열 때는 어느 나라 소속인지 모를 사막이 펼쳐져 있다. 부디 여기에서 비행기가 추락하는 일만 없게 해달라며 잠시 기도하고 창문을 닫는다. 독주를 한 잔 마시고 잠이 든다. 비행기 좌석과 내가 한 몸이 된 것만 같을 때쯤 비행기가 영국 영해를 날고 있다. 출발 직전, 라운지에서 산뜻하게 감은 머리가 지성이라 금방 기름질 때쯤, 그때쯤 말이다. 

나는 부모님의 감정 쓰레기통이었고, 착하고 듬직한 딸이어야 했다. 심지어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착한 딸 콤플렉스가 있었고, 평이하지 않은 성장과정 중에서도 탈선은커녕 씩씩하게 살아냈다.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마음의 병으로 돌아왔다. 매일 엄마가 나에게 쏟아내는 하소연은 나의 멍울이 되었고, 그 또래에 알지 않아도 될 너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내 속은 늙어 버렸다. 내 속에 들어앉은 노파는 마음이 많이 아픈 노파였다. 치료를 요했다. 그런데 나는 그걸 몰랐다. 나는 내가 아픈지 몰랐다. 그저 도망가기 바빴다. 방학을 엄마와 함께 보내면 내가 죽을 것 같다는 것만 알았다. 그것은 분명했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들볶여 죽었을 것이다. 

 

12시간 30분이 걸리는, 당시에는 아주아주 엄격한 입국심사관이 있던 런던이라는 나라에, 나는 몸을 던져 숨었다. 일 년간 어학연수를 한 적이 있었는데, 아는 친한 언니가 어학연수를 간다기에 나도 (방 값도 절반, 생활비도 겸사겸사 아낄겸) 이때 아니면 평생 외국에 나가 볼 일은 없을 것만 같아서, 조르고 졸라 같이 갔다. 거의 통보를 해서 갔다. 엄마는 이때를 돌이키며 “내가 생리가 끊겼어. 내 친구들보다 4~5년은 빨리 끊겼어. 내가 그렇게 널 가르쳤어.”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나는 여기에 대꾸할 말이 없어 고개를 떨궜다. 나도, 빠듯하게 살았지만, 어찌되었든 돈을 받아 살았던 입장에서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영국에 가서는 공원에 갈 일이 잦았다. ‘엄마의 생리를 끊어 가며’ 나를 영국에 보냈지만, 마침내 나는 우울증이 터지고 말았다. 외출을 못하는 날이 아주 많았다. 외출을 해도 사람이 많은 곳은 가지 못했다. 컨디션이 좋아 사람이 많은 곳에 갈 수 있어도 익숙하고 눈에 익은 곳에 자주 갔다. 

 

이후에도 방학, 허락된다면 나는 영국으로 도망갔다. 어학연수 시절 같이 살던 언니오빠 부부네 집 한 켠 다락방을 얻어 살기도 했다. 오빠는 시내에서 초밥집을 했는데, 시간이 맞으면 나를 초밥집까지 차로 데려다주기도 했다. (아직 이해를 못하지만, 주차 시스템상 가게 근처에 무료 주차 할 수 있는 날이 있었다. 오빠는 그런 날, 차로 출근을 했다. )

그러면 오빠는 나에게 선물해 주듯이, 리치몬드 공원을 가로질러 시내를 둘러가 줬다. 리치몬드 공원은 차 길이 나 있을 만큼 큼직한 공원이다. 동물도 식물도 호수도 사람도 차도 모든 것이 존재하는 하나의 마을같이 여겨질 만큼 커다란 존재였다. 그곳에는 자전거, 자동차, 유모차, 모든 것 탈 것이 돌아다녔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차에서 겉으로 보는 풍경일 뿐인데도 황홀했다. 오빠가 나에게 이보다 더 큰 선물을 해 줄 수 있을까? 싶었다.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 말 없이 창문을 내리고 바깥을 바라봤다. 휴대폰을 들어 올리는 시간도 아까웠다. 

나에게는 종종 이런 시간이 주어졌는데, 일 년에 두세 번? 그런 날은 얼마나 가슴이 떨리는지. 창문을 내리고 거센 바람이 부는 날에도(영국은 언제나 은근한 바람과 약한 비가 내리지만) 꿈쩍 않고 풍광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우울함도 바람에 같이 날아간 것 같기도 하고, 우울 본연에 더 깊게 들어선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그랬다. 

 

리치몬드 공원은 내가 걷고 걸어서 다닌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어쩐지 그럴 기회가 전혀 없었다.) 차로 가로지르는 것만으로도, 계절이 변화하고, 사람이 스치고, 자전거가 스치고, 동물이 저 멀리 보이고, 해가 뉘엿거리는…, 위로의 공원이었다. 오빠가 선물해 주는 위로의 상징 같은, 상징인 공원이었다. 

약을 많이 먹어, 운전을 자제하는 통에 과연 영국까지 가서 굳이 운전을 할 일이 있을까 싶다가도, 리치몬드 공원을 내가 내 발로 악셀을 밟아 가로질러 보고 싶다는 상상을 해 보곤 한다. 천천히,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두 눈에 담아 두는 상상. 

숲이 아니라 공원 이야기였지만, 첨부된 사진을 보면 엿볼 수 있듯이 영국의 웬만한 공원은 겸양 떨어 공원이라고 이름 지어 놓고 평야의 숲과 모양새가 비슷하다. 인위적으로 많이 손대는 프랑스와 다르게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한국식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내가 받았던 마음의 공간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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