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태양과 북풍이 논쟁을 벌였습니다. 태양은 자신의 명랑하고 따뜻한 성품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북풍은 자신의 냉정하고 매서운 성격 때문에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태양은 북풍처럼 사납기만 해서는 존경을 받을 수 없다고 반박했고, 북풍은 태양처럼 뜨겁기만 해서는 사랑을 받을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자부심이 워낙 강했던 태양과 북풍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다퉜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양이 북풍을 향해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 둘 중에 누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는지 승부를 가리기로 하자. 저기 아래 길 가는 나그네 보이지? 저 사람의 옷을 먼저 벗기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어때?”

  “좋아. 그거라면 자신 있지. 내가 먼저 할 테니 두고 보라고.”

  태양의 제안을 받아들인 북풍은 나그네의 옷을 벗기기 위해 차갑고 매서운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나그네는 옷이 벗겨지지 않도록 두 손으로 강하게 옷을 부여잡고 걸었습니다. 북풍은 더 강력한 바람을 일으켰지만, 그럴수록 나그네는 더 완강히 옷깃을 여몄습니다.

  거센 공격 끝에 힘이 다 빠져버린 북풍은 결국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데 실패했습니다.

  이번에는 태양이 나섰습니다. 따사롭고 온화한 햇살을 비추었습니다. 그러자 나그네는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옷깃을 풀어 헤쳤습니다. 태양은 좀 더 뜨거운 열기를 내리쪼였습니다.

  “오늘 날씨가 참 이상하네. 세찬 바람이 불더니만, 갑자기 해가 쨍쨍 내리쬐니 말이야.”

  나그네는 이렇게 말하면서 겉옷을 벗었습니다. 그래도 더위를 견딜 수 없었는지 근처에 있는 강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고는 옷을 다 벗은 채 강물 속으로 풍덩 뛰어들었습니다.

 

사진_ 키즈현대 환경동화 유튜브 캡쳐 화면
사진_ 키즈현대 환경동화 유튜브 캡쳐 화면

  어느 날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건강 문제가 나왔고, 노후를 대비해 보험을 들어 두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습니다. 친구는 진솔하고 진지하게 나이에 맞게 건강 관리를 해야 한다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최근 보험회사에 다니게 됐다며 정말 좋은 상품이 있다고 권해 주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지만, 친구의 솔직한 권유가 마음에 들어 A 씨는 선뜻 보험에 가입했습니다.

  생일을 어떻게 알았는지 지인으로부터 B 씨에게 스마트폰으로 생일 축하 메시지와 함께 커피 쿠폰이 도착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와 더불어 언제 식사나 하자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얼마 후 그가 회사 근처로 찾아와 카페에서 차를 한 잔 마시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즐겁고 유쾌한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지인이 자기 회사에서 막 창간한 잡지라며 패션지 한 권을 건네주었습니다. B 씨는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2년짜리 정기구독 신청을 했습니다.

  

  누구나 한두 번 이런 경험이 있을 겁니다. 보험에 들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갑자기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꾸만 솔깃해지는 바람에 덜컥 보험 계약을 하거나 평소 잘 보지도 않는 잡지를 정기구독까지 할 생각은 없었지만, 너무 친절하고 다정해서 호감이 가는 지인을 만나 차를 마시다 보니 얼떨결에 잡지 정기구독 신청을 하게 된 경험 같은 것 말입니다. 평소와 달리 턱없이 비싼 옷을 산다든가 별로 쓰지도 않는 고가의 전자제품을 사는 일도 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나중에 후회할 게 분명하니까 단호하게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감성적으로는 이미 상대방의 말과 태도에 완전히 설복되어 도저히 거절하지를 못합니다.

  만약 상대방의 말과 태도가 완전히 달랐다면 어땠을까요? 다짜고짜 제품 이야기부터 꺼내면서 꼭 사야 한다느니, 안 사면 당신이 손해라느니, 이번에 계약 못하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라느니 하면서 윽박지르듯 구매를 강요했다면 말입니다. 아마 대부분이 사지 않았을 겁니다. 친구나 지인의 경제력을 무시하거나 생활 수준을 폄훼하면서 얕잡아보는 태도로 말했더라도 대다수가 더 듣지도 않고 거절했을 겁니다. 상대방이 내 말을 경청하고 수긍함으로써 행동에 나서게 하려면 마음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감성을 두드려야 한다는 겁니다. 이성적인 논리나 강압적인 태도, 현란한 말솜씨만으로는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기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행동을 바꾸거나 평소 그의 생각이나 의지와는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켜 행동하게 하는 것과 설득을 통해 스스로 행동하게 하는 것이죠. 상대가 도저히 대항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을 가진 쪽이 그렇지 못한 쪽을 압박해 강제로 행동하게 할 수 있습니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행동을 바꾸는 겁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수긍하지도 승복하지도 않습니다. 상황이 바뀌면, 즉 상대방의 힘이 빠진다거나 자신의 힘이 세질 경우, 언제든 다시 행동을 바꿀 겁니다. 이에 반해 충분한 설득을 통해 상대를 이해시켜 스스로 행동을 바꾸게 한 경우, 상대는 이를 수긍하고 승복합니다. 설령 상황이 바뀐다 해도 자신이 한 결정에 책임을 지기 위해 행동을 바꾸지 않을 겁니다.

  ‘북풍과 태양’ 우화는 이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행동을 바꾸는 데 힘의 논리가 유효하냐, 설득의 논리가 유효하냐 하는 것이죠. 나그네의 옷을 벗긴 것은 북풍의 강한 힘이 아니라 태양의 온화한 설득이었습니다. 강제로 옷을 벗기려면 강한 힘이 필요하지만, 이에 대한 저항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반면 부드러운 설득은 저항을 내려놓고 자신의 의지로 옷을 벗게 만듭니다. 힘의 논리는 단순하나 설득의 논리는 복잡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오래 걸립니다. 그러나 타의에 의한 행동 변화와 자의에 의한 행동 변화의 차이는 큽니다. 설득은 상대방을 충분히 존중하고 배려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솔직한 자세로 진실한 내용을 전달합니다. 설득을 통해 상대방 마음을 얻으면 행동은 자연스럽게 변화합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의 심리마케팅학과 석좌교수인 로버트 치알디니는 『설득의 심리학(원제: Influence)』이라는 책의 저자로 유명합니다. 전 세계 26개 국어로 번역 출판된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나게 판매되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상대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풀어 가는 것이 설득의 힘이라고 강조합니다. 원하는 걸 얻으려면 상대의 마음부터 사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죠. 무턱대고 자기 말만 늘어놓는다든지, 뭔가를 얻어내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든지, 자신의 지식을 뽐내며 가르치거나 훈계하려 한다든지, 판매나 계약만을 목적으로 강압적인 태도를 보인다든지 하면 결코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없으며, 따라서 목적한 바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가 책에서 언급하는 설득의 여섯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상호성의 원칙: 설득의 달인들이 선호하는 전략 중 하나로 먼저 호의를 베풀고 보답을 요구하는 방법입니다. 작은 호의를 베풀면 상대가 거절하기 어렵습니다. 호의를 받은 상대방은 신세를 졌기에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래서 빨리 신세를 갚기 위해 불평등한 교환에 동의하는 것이죠. 한번 양보를 받으면 뒤에 양보로 보답해야 합니다. 큰 제안을 해서 거절당한 다음 작은 제안을 하면 상대방은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심리가 있습니다.

② 일관성의 원칙: 사람은 생각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 한번 생각을 고정하면 계속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을 움직이게 하려면 먼저 분명한 입장을 정립하도록 하면 됩니다. 한 가지 입장을 정립하면 그와 일관성 있는 요구에 쉽게 동의합니다. 그러나 모든 입장 정립이 항상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입장 정립은 적극적이고 공개적이며 수고스럽고 자발적일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합니다. 

③​​ 사회적 증거의 원칙: 사람들은 특정 상황에서 무엇을 믿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 주로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살펴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원칙은 ‘불확실성’과 ‘유사성’이라는 조건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비슷한 선택지가 많고 어떤 게 좋은 건지 알기 힘들 때 우리는 주변 사람의 행동을 쉽게 따라 합니다. 집단의 일부를 설득해서 그들이 행동하면 나머지는 이들을 모방합니다.

④​ 호감의 원칙: 자신의 매력과 호감도를 높일 만한 요소를 부각해 상대에게 접근하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친밀감을 형성하면 설득이 쉬워집니다. 외적인 호감은 매우 중요합니다. 상대방과의 유사성을 찾아 이를 강조하면 호감도가 상승하죠. 상대방에 대한 칭찬도 호감을 올리는 좋은 방법이고요. 접촉을 자주 하면서 긍정적인 경험을 자꾸 쌓으면 호감이 많아집니다. 호감이 가는 상대방의 제안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건 인지상정입니다.

 권위의 원칙: 권위에 복종하려는 성향은 그것이 옳은 행동이라는 개념을 구성원들에게 심어 주기 위해 마련된 사회화 과정의 산물입니다. 합법적 권위에 복종하려는 의무감이 있는 사람은 권위를 가진 사람이 어떤 말을 했을 때 진위를 판단하지 않고 복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함, 제복 같은 권위 있는 옷차림, 고급 승용차 등 실제 권위가 존재하지 않지만, 권위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것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⑥​​​ 희귀성의 원칙: 일반적으로 얻기 어려운 것이 가치가 높다는 인식을 이용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치가 비슷할 경우 무언가를 얻는다는 생각보다 잃는다는 생각에 훨씬 더 영향을 받습니다. “팔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런 말에 자극받는 것이죠. 뭔가를 하지 못하도록, 갖지 못하도록 금하면 더 하고 싶고 갖고 싶습니다. 경쟁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은 자꾸만 커지는 겁니다.

 

  설득을 어떤 사람은 기술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과학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을 기술이나 과학으로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상대방을 최대한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내 진심이 잘 전달되도록 정성을 다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 세 번 계속 진솔하게 다가가는 겁니다. 그러면 조금씩 마음이 열리지 않을까요? 힘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는 있지만, 마음을 얻지는 못합니다. 마음을 얻으려면 끝없는 설득이 필요합니다. 연애도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 사는 일이 다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거니까요. 나그네의 옷을 벗긴 것은 맵디매운 바람이 아니라 따사로운 햇살이었습니다. 이것만 기억한다면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일이 좀 더 쉬워지지 않을까요?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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