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무언가를 걱정하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미래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준비하고, 미리 학습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 잘 적응할 수 있습니다. 걱정을 해야만 우리는 준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일’을 걱정하는 것과, 불안하기 때문에 ‘무슨 일이건’ 걱정되는 것은 매우 다릅니다. 걱정을 ‘하는 것’과 걱정이  ‘되는 것’은 매우 다릅니다. 범불안장애는 마음속에 이미 부유불안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병입니다. 범불안장애는 ‘무슨 일이건’ 걱정합니다. 걱정하는 습관이 생겨 버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불안장애의 치료에서는 이 점이 바로 핵심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무슨 일이건’ 무조건 걱정이 ‘되는’ 상태에서, 준비가 꼭 필요한 ‘어떠한 일’을 걱정‘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속에 가득 찬 부유불안을 걷어 내고 걱정하는 습관을 교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유 없이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걱정되는 상태, 부유불안으로 머릿속이 꽉 찬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약물치료가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긴장 상태에 들어가 있으면,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능력이 매우 떨어집니다. 걱정을 하느라 막상 걱정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어 버립니다. 따라서 잘못된 걱정 습관을 교정하고, 진짜로 필요한 만큼만 걱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뇌가 이러한 긴장 모드를 벗어날 수 있어야만 합니다. 항불안제는 몸과 마음의 긴장을 아주 효과적으로 줄여 줍니다. 특히, 범불안장애에는 일반적인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항불안제(자낙스 등)들 말고도 비교적 오랜기간 의존성에 대한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안정제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으니, 약물치료 시작을 주저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습관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훈련과 연습이 필요합니다. 잘못된 습관을 고치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또한 그 습관 때문에 내가 힘들어진다 하더라도 습관을 버리는 것이 오히려 더 불편하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습관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걱정하는 습관이 들어 버렸다면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힘들 수 있습니다. 너무 많은 걱정 때문에 지치고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걱정이 떠오를 때는 계속 그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 더 마음 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습관을 교정하기 위한 훈련은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시도해 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범불안장애를 해결하기 위해 잘못된 인지과정을 교정하고 행동 습관을 바꾸는 인지행동치료는 그 효과가 이미 매우 잘 검증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여러 가지 인지행동치료 가운데 한 가지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바로 ‘걱정시간 만들기’입니다.

 

 

걱정시간 만들기’는 걱정을 적극적으로 함으로써 오히려 잘못된 걱정 습관을 교정하는 방법입니다. 잘못된 걱정 습관의 문제점 중 하나는 바로 ‘시도 때도 없이’ 걱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루의 대부분 시간 동안 걱정을 하다 보니 진짜로 중요한 일들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바로 범불안장애의 핵심 병리입니다. 하지만 아예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미 걱정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걱정을 하지 않기보다는, 걱정을 몰아서 해 보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우선은 하루 중 매일 편하게 시간을 낼 수 있는 시간을 정해 ‘걱정시간’으로 정해 놓아야 합니다. 자기 전 저녁 시간이 보통 걱정시간으로 활용하기에 좋습니다. 하루 동안의 걱정을 마무리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걱정시간은 한 시간 정도로 여유 있게 잡아 두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면, 저녁 9시부터 10시까지, 이런 식으로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걱정할 수 있는 나만의 일과를 만들어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매일 엄격하게 걱정시간을 지켜서 열심히 걱정을 해 보는 것입니다. 걱정시간 동안에는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오로지 걱정만 해야 합니다. 매일매일, 정해진 시간 동안 걱정해야 합니다. 정해진 시간이 다 되기 전에 더 이상 걱정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그 대신 걱정시간이 아닌 동안에는 걱정을 모두 걱정시간으로 미뤄 두는 것입니다. 걱정거리가 낮에 떠오르면 스마트폰이나 종이에 그 걱정거리를 적어 두어도 좋습니다. 대신 낮에는 일을 하고 있건 쉬고 있건 걱정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걱정은 자기 전, 걱정시간에 해야 하니까요.

이렇게 시간을 정해 두고 열심히 걱정을 하다 보면, 일상생활을 걱정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걱정이 오히려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마구 걱정이 될 것 같던 일도, 적어 두었다가 실제로 걱정시간에 걱정을 해 보려 하면 별로 걱정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는 걱정시간이 지루하다고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에는 계획을 세워 걱정시간을 조금씩 줄여 나가보는 것이 좋을 수 있습니다.

 

 

범불안장애를 극복하는 핵심은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걱정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한 목표가 되어 오히려 더 많은 걱정에 짓눌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걱정의 ‘잘못된 습관’을 고쳐 나가는 것을 목표로 잡는 것이 더욱 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걱정은 죄가 없습니다. 불필요한 걱정 탓에 정말 필요한 일들을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걱정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신가요? 무엇이 걱정인지,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를 먼저 들여다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김총기 원장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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