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최근 누군가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 있나요? 어떤 일이 당신으로 하여금 감사하는 마음이 들도록 했나요?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나요? 어떤 방식으로 표현했나요?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 후에 당신의 마음은 어땠나요? 상대방의 반응은요?

감사는 누군가 나에게 베풀어 준 친절이나 호의 등에 고마운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감사의 마음이 항상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도 바쁘다거나 쑥스럽다거나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냥 마음에만 묻어 두는 경우도 많습니다. 혹은 형식적으로 “그때 고마웠어.”라며 간단한 인사말로 대신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렇게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표현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감사는 인간 내면에 깊이 뿌리내린 여러 심리적 성향을 정면으로 거스릅니다. 그중 하나가‘자기중심적 편향’입니다. “잘되면 내 탓, 안되면 조상 탓”이라고 하던가요. 우리는 언젠가부터 받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또 결과가 좋은 일들은 모두 내가 피땀 흘려 이룬 것이라 생각합니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혹은 삶에서 일어나는 좋은 일들이 어디 나의 노력만으로 가당하기나 하던가요. 

 

만화 <심슨 가족>에서 바트 심슨이 ‘감사’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가히 인상적입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느님, 이 모든 건 우리 돈으로 산 거예요. 그러니 아무것도 감사할 게 없습니다.”   

 

바트 심슨이 신에게 올리는 기도에서조차 겸손의 미덕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실 감사는 ‘겸손’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가족과 친구, 동료와 선배, 이웃과 친척들, 어쩌면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행한 수고와 선의로 인해 내가 누리는 혜택이나 호혜들을 인정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감사의 마음은 혼자 생각하고 흘려보내는 것보다 응당 상대에게 표현하는 것이 더욱 좋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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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사람에게 성공의 기회가 더 많이 찾아온다

감사에 관한 잘못된 신화 중 하나는 감사가 성공의 발목을 잡는다는 주장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하는 사람이 목적의식과 성취동기도 강합니다. 의식적으로 감사를 실천하는 사람이 더 성공적으로 목표를 달성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한 연구에서 참가자들에게 10주간 달성하고 싶은 여섯 가지 개인적인 목표를 설정하게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임의의 두 집단으로 나뉘어 한 집단은 주 1회 감사 일기를 쓰며 감사거리를 다섯 개씩 열거했습니다. 그 결과, 이들은 감사 과제를 받지 않은 참가자 집단보다 목표 달성을 위해 더 많이 노력했으며, 목표 달성률은 20퍼센트나 높았다고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실험 후에도 목표를 향해 지속적으로 노력한다고 보고했지요. 정말 놀랍지 않은가요?

물론 감사하는 마음을 갖거나 이를 표현하는 행위 자체만으로 우리 삶의 어떤 문제나 어려움을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감사가 습관이 될 때 역경 상황에서 심리적으로 보다 잘 대처할 확률이 증가하고, 일상에서는 훨씬 더 많이 행복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제가 최근에 읽은 『감사의 재발견』이라는 책에서는 감사 습관을 키우는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 있는데, 독자 분에게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일상 속 감사 습관 키우기

 

1. 가끔은 죽음과 상실에 관해 생각하라

인생의 마지막을 떠올려 볼 때 현재 주어진 삶에 대한 감사가 증가한다. 구민경과 동료 연구자들에 따르면, 조사 참가자들에게 연인이 삶에서 돌연 사라지는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 보라고 하자, 연인에게 느끼는 감사 지수가 상승했다. 또 이미 일어난 긍정적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상상하는 것도 비슷한 효과를 냈다.

 

2.‘당연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감사를 선택하라

로버트 에먼스는 “자아에 대한 과몰입은 온갖 양상으로 발현되지만, 무엇보다도 받은 혜택과 그 혜택을 제공한 사람을 잊고 모든 것이 자신의 당연한 권리인 양 감사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에먼스는 이처럼 우리가 받은 혜택이 ‘당연하다’는 생각에서 빠져나오려면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 내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3. 사물이 아닌 사람에게 감사하기

감사 표현을 받은 사람은 마음이 한결 밝아지고 행복감을 느낀다. 감사 표현을 나눈 사람들은 서로 간에 사회적 · 정서적 유대가 더 강화된다. 상대에게 “고마워”라고 말할 때 우리의 뇌는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났고, 우리가 사회 공동체 안에서 더 촘촘하게 연결되었음을 인식한다.

 

4. 감사 표현은 구체적으로!

감사를 잘하는 사람은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예를 들면, 무거운 가방을 들어 준 동료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제가 오늘 다리가 아픈 걸 눈여겨보고 제 가방을 들어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덕분에 집까지 편안하게 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세세하게 표현할 때 감사의 마음이 상대에게 더욱 진실되게 전달된다.

 

5. 감사 일기를 쓰자

감사하는 습관은 하루아침에 생겨나기 어렵다. 구체적인 훈련을 통해 감사 근육을 키울 수 있는데, 가장 좋은 훈련 중 하나는 바로 ‘감사 일기’ 쓰기다. 주 2~3회 정도 감사거리를 찾아 다섯 개 내외로 기록해 본다. 이 훈련의 목적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긍정적인 사건, 경험, 사람을 기억하고 그에 수반되는 좋은 정서를 누리기 위해서다. 유의할 점은 머릿속 생각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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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에 관한 지난 20년간의 연구 결과는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야말로 감사가 효과를 발휘한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감사는 절망의 순간에 희망을, 아픈 마음에 치유를, 역경에 대처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물론 힘든 상황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이때 키포인트는 감사를 ‘느끼는’ 것과 ‘하는’ 것을 구별하는 일입니다. 감사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선택과 의지를 통해 얼마든지 감사하는 태도를 기를 수 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과 당연시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으면서 더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지요. 이처럼 의식적으로 감사하는 자세를 연습하면 역경이 우리의 발을 걸어 넘어뜨릴 때 온몸이 휘청대지 않도록 완충작용을 해줄 심리적 면역 체계가 구축됩니다. 또 감사할수록 일상의 고충이나 역경이 주는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탄력성도 커진다는 과학적 증거도 있습니다. 

나쁜 경험을 단순히 경험하는 것과 그 속에서 감사거리, 즉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굉장히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이렇듯 감사하는 자세는 우리를 더 깊은 차원, 보다 넓은 세상으로 이끕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는 것들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아침마다 가족들의 식사를 챙겨 주는 어머니, 오늘도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 부모님의 기대에 좀 더 부응하기 위해 학업을 위해 힘쓰고 가족들의 잔심부름을 묵묵히 수행하는 자녀의 행동이 당연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도 애 많이 썼다. 쉬고 싶을 텐데 엄마의 부탁을 들어줘서 고마워.”, “고생 많았어요. 요즘 부쩍 피곤한데도 아이들과 항상 재미있게 놀아 주는 당신한테 고마워요.”, “출근 준비도 바쁜데 매일 아침 맛있는 아침을 준비해 줘서 고마워.” 이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 주세요. 상대는 스스로를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낄 거예요. 감사의 연쇄 반응은 실로 대단하지요.

자, 오늘 하루 또는 근래에 감사했던 일들과 마음을 지금 한 번 떠올려 보세요. 이제 펜을 들어 감사 일기를 적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그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 보세요. 아주 구체적으로 말이지요. 매일매일 감사하는 마음의 근육을 기른다면, 불평불만을 일삼던 우리의 삶에도 분명히 긍정적인 변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호선 원장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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