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주변을 살펴보면 유독 ‘거절’에 민감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언가 부탁하기 위해 메시지를 보낸 뒤 상대방의 답장이 두려워 곧바로 확인하지 못하거나, 선물을 주고 나서 상대방이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 하는지 수차례 확인하는 사람들이 있죠.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거절이나 거부를 당하는 상황에 처하면 극도의 불안감을 느낍니다.

이를 ‘거절 민감성(rejection sensitive dysphoria)’이라고 부릅니다. 거절 민감성이 높은 사람은 실제로 거부를 당하거나, 거부를 당했다고 느낄 때, 혹은 비판받았을 때 기분이 가라앉고 자존감이 하락합니다. 이러한 느낌은 마치 감정에 압도당하는 것처럼 매우 강렬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거절당했을 때 신체의 반응을 측정한 연구가 있습니다. 대학생들에게 100개의 그림을 보여준 뒤 눈의 깜박임으로 거부와 수용의 정도를 살펴본 것입니다. 거절 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은 작은 자극에도 크게 놀라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부정적인 정서에 매우 높은 생리적 각성 반응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고통을 느끼는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즉, 신체적으로 민감하고, 과장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런 성향의 사람은 학교나 직장에서 작은 비판을 받는 것,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 심지어 상대가 침묵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생활에 영향을 줄만큼 큰 두려움을 느낍니다. 가장 큰 문제는 친밀하고 안정된 관계에 대한 욕구가 지나치게 강한 점입니다. 자신에게 안정감을 줄 것 같은 사람과의 관계에 전전긍긍하고, 그들이 친밀한 표현을 해 줬으면 하는 바람을 은근히 드러냅니다.

두 명의 친구가 저녁식사를 함께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A는 그날 직장에서 정신없이 바빴던 탓에 조금 지친 상황이었습니다. B와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평소만큼 즐겁게 추임새를 넣거나 크게 웃지 못했습니다. 단지 피곤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B가 거절 민감성이 높은 사람일 경우, A의 추임새가 강할 땐 더욱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반대로 A가 집중하지 못하면 금세 침울해할 가능성이 큽니다.

B와 같은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A에게 무슨 실수를 한 건 아닌지’, ‘A가 이제 자신을 싫어하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A의 표정이나 행동을 확인하기 시작하죠. 이런 행동은 금방 티가 나기 때문에 A가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B는 그러한 A의 불편함을 민감하게 포착해 “그럴 줄 알았어, 나를 싫어하는 게 분명해”라며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관계의 악순환을 만들어 냅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미국심리학회(APA)에 발표된 콜롬비아 대학교 연구진의 실험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연구진은 학생들에게 ‘커뮤니티에 가입하게 될 것’이라고 거짓말한 뒤 이메일로 가입서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후 △ 수락 △ 가벼운 거절 △ 가혹한 거절의 답신을 무작위로 보냈습니다. 

그 결과, 거절 민감성이 낮은 사람은 거부를 당해도 커뮤니티 후원 비용을 냈지만, 거절 민감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후원 비용을 낼 경우 추후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을 차단해 관계의 악순환을 야기한 것입니다.

자신이 거절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환상(인지 오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는 게 좋습니다. 인지 오류는 ‘완벽함에 대한 환상’과 ‘친밀감에 대한 환상’,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① 완벽함에 대한 환상 

이는 본인 스스로와 관련된 것으로, 자신은 실수를 하면 안 되고 실수는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평생 그 어떤 실수도 하지 않고 완벽하게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내 실수에 대해 누군가 비판하는 것이 나의 존재 이유를 위협할 만큼 중요한 일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② 친밀감에 대한 환상

이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합니다. 상대가 어떤 순간에도 자신을 좋아해야 하고, 갈등이 발생할 경우 관계가 틀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연인 관계에서도 일정한 거리와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건강한 관계란, 아무런 갈등이 없는 게 아니라 갈등을 성숙한 태도로 직면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친밀감을 형성하며 발전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거절감’ 때문에 수시로 불안함을 느낀다면 상대의 어떤 말과 태도로 인해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는지 파악해 보는 게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침묵에 거절감을 느낄 경우, 상대의 침묵이 거절인지 아닌지 알아내려 하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달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우선 불안함이 가라앉아야 상대가 단지 생각에 잠긴 것인지, 그저 할 말이 없는 것인지, 진짜 거절하는 것인지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상대의 언행에 대한 의미를 데이터로 쌓아 두는 태도도 지양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저번에도 이런 상황에서 침묵했고, 이번에도 같은 상황에서 침묵했으니 자신을 거절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상대의 반응만으로 판단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불안감을 낮추고, 상대가 실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때때로 인생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이 발생한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본인의 노력이나 태도와 상관없이 ‘어쩔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면 그 상황 그대로를 수긍해 보는 건 어떨까요? 자신의 노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불가능한 일에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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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선생님 글을 만났더라면 좀더 빨리 우울감에서 헤어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글 내용이 너무 좋아 응원합니다. 사소한 관계의 행복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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