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인수 정신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십니까? 올해 7월을 마지막으로 대학 생활을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취준생입니다.

문과 중 평범한 학과를 전공하고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서 막연한 불안감이 자주 듭니다. 일상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는 데는 전혀 문제 없이 잘생활을 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밤에 혼자 있을 때 문득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저를 덮쳐 오면 차라리 죽는 게 편할지도 모르겠다는 위험한 상상을 하곤 합니다. 물론 잠에 들고 아침이 밝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이런 감정이 드는 게 잦지는 않고 아주 가끔씩 듭니다.

또한 부모님과 취직이나 진로 얘기가 나오면 눈물이 먼저 나오고 그럴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저를 달래 주시는 게 아니라 화가 섞인 목소리로 대화를 못하겠다, 딸이 우는 걸 보고 있으면 심장이 아프다라고 하시면서 결국은 대화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끝이 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 또한 제가 우는 이유를 모르겠고, 눈물은 계속 나고, 이런 제가 너무 화가 납니다. 그러고 진정이 되기까지 한두 시간 정도 걸리고, 그때 왜 울었나 돌이켜 보면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제 감정을 알아채고, 다스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정말로 뭘 원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방법을 알려 주세요.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적어 주신 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현재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스트레스가 상당히 높아진 상황이신 것 같습니다. 대학생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소속감도 없어지기에 취준생으로서 더욱 불안감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께서 현재 스트레스가 많이 가중된 환경에 놓여 있음을 먼저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트레스에는 개인 성향이나 상태를 제외하고 환경 요인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다룰 때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개인적인 요인과, 통제할 수 없는 환경적 요인을 잘 구분해서 에너지를 분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취업 준비생은 불안을 기본값으로 짊어지고 생활하는 사람들입니다. 취업이라는 목표가 있지만, 목표에 도달하는 시기는 미정입니다.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현재 가진 자신의 다양한 욕구를 어느 정도 희생하는 생활을 감수해야 합니다. 게다가 수많은 평가 과정에 노출되면서 자기 한계를 직면해야 합니다. 한 번에 목표를 달성하는 행운이 없다면, 좌절을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멘탈이 튼튼하더라도 좌절이 반복되면 자신감도 꺾이고, 회의감도 따라옵니다. ‘취업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 확신을 갖고 대답 못하면서 불안이 점차 가중됩니다. 이러한 흐름은 매우 자연스럽게 모두가 겪어 내야만 하는 과정일 텐데요. 불안에 대해 잘 다루지 못한다면, 취준 생활은 더욱 괴로워질 수 있습니다.

 

불안을 잘 다룬다는 것의 의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자신의 불안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공감이 필요합니다. 많은 분들은 불안을 제거해야 하는 감정으로 여기고 싫어하시는데요, 불안이 지나치게 일상을 무너뜨린다면 조절이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사실 불안은 생존에 필수적인 감정입니다. 환경을 잘 알고 통제해야 생존 확률이 높아지는데, 통제하지 못하는 변수는 늘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대비하고자 만들어 낸 감정인 것이죠. 

기본적인 불안이 공평하게 주어지는 환경이더라도, 사람마다 모두 반응이 다릅니다. 누구는 불안에 압도되어 일상이 무너지기도 하고, 어떤 이는 불안을 잘 느끼지 못하거나, 흥분감으로 해석하고 동력으로 삼기도 합니다. 불안에 다소 취약한 성향을 타고나서 주어지는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연자님의 삶을 돌아봤을 때, 불안이나 긴장을 자주 느끼는 성향인지, 그런 상태에 놓이면 이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떠올려 보셨으면 합니다. 불안을 해소하는 각자만의 방법이 있는데요, 이것이 사연자님에게 건강한 방식이었는지, 혹시 다른 해소 방법이 필요한지 이제는 새롭게 점검해 보세요. 그리고 만약 불안에 취약한 성향이 아니라면 현재 취업 준비라는 환경 요인이 매우 큰 스트레스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인정해주셨으면 합니다.

 

사연자님이 자신의 불안을 타당화하고 자연스러운 동반자로 삼고 가야 취업 준비 기간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나의 불안을 촉발하는 구체적인 생각의 내용이 무엇인지 자세히 적어 보세요. 자기회의적인 문장이든, 비난이 섞인 문장이든 근거 없이 부정적인 미래를 예언하는 문장이든 다 적어 보세요. 그리고 그러한 문장이 정말 진실인지, 이것을 믿는 것이 나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 합리적으로 의심해야 합니다. 

현재 사연자님은 눈물이 나는 생리적인 현상만 말씀하셨는데요, 스스로에 대한 분노 이외에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을 텐데 감정 인식이 잘 안 되는 상태입니다. 사연자님이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단 일상 스트레스가 많아서 할 일들을 처리하는 데 급급하게 되면 자신의 욕구, 감정, 생각을 다 놓치게 됩니다. 일 처리 순위에서 밀리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은 할 일들을 내려놓고 마음이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마음에 머물러 찬찬히 정리하는 작업을 하셨으면 합니다. 사연자님에게는 다양한 욕구가 있습니다. 인터넷에 욕구(needs) 목록을 검색해 보시면 생각보다 아주 많은 욕구가 있음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현재 중요한 욕구가 무엇이 있는지 노트에 모두 적어 보세요. 중요한 우선순위대로 써 보세요. 그리고 현재 충족되지 않은 욕구와 충족된 욕구를 분류하세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이 욕구의 충족 여부에 따라 발생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존중받고 싶은 욕구가 큰데, 부모님이 무시하는 언행을 하시면 어떨까요? 부모님이 준 객관적인 자극에 대해 1차적으로 ‘생각’이 떠오릅니다. ‘나를 무시하시는구나’ 이렇게 생각이 들면 슬픔, 분노, 비참함 등 2차적으로 ‘감정’이 동반됩니다.

이 과정을 잘 이해하셨으면 합니다. 사연자님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상황이 생기고, 이때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에 따라 감정이 따라온다는 것을요. 아까 욕구 목록을 정리하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욕구를 정리했다면 ‘감정 목록’도 검색해서 꼭 확인해 보세요. 사연자님의 눈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감정 단어 목록 중에 내가 느낀 감정들을 찾으셔야 합니다. ‘아, 내가 엄마의 말씀에 A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고, 그래서 B라는 감정들을 느낀 거구나.’ 이렇게 문장으로 쓰면서 정리하시면 됩니다. 

일상의 소소한 사건부터 큰 사건까지 노트에 기록하세요. 상황과 욕구, 생각, 감정의 카테고리를 나누어 사연자님 마음을 정리하는 습관을 만들어 보세요. 자신을 이해하는 능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욕구와 감정 리스트를 정리하는 작업은 사연자님의 진로 결정을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어떤 일이 나에게 맞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명료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구를 구체화하는 일이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사연자님이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글에 나와 있지 않은데요, 진로에 대한 탐색과 고민은 평생 하는 겁니다. 자신의 욕구가 채워지고 좌절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방향성이 뚜렷하게 생기게 됩니다. 내게 딱 맞는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만약 부모님이 압박을 주신다면 상당한 스트레스가 될 겁니다. 이에 대해서도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지는지도 정리해서 부모님께 표현하셨으면 합니다. 진로 선택은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입니다. 확신 없이 막연한 마음으로 결정해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경험이 쌓여야 방향성이 생깁니다. 확신은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생길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막연한 상태를 확실하게 바꾸려고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지는 마세요.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린다고 더는 비난하지 마세요. 분명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흘린 겁니다. 충분히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꼭 가지셨으면 합니다. 사연자님의 삶을 지지하고 또 응원하겠습니다.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김인수 원장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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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선생님 글을 만났더라면 좀더 빨리 우울감에서 헤어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글 내용이 너무 좋아 응원합니다. 사소한 관계의 행복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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