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기숙사 학교에 재학 중인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개학하기 전 봄방학에 처음으로 자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자살을 생각해 보게 된 이유는 공부가 큽니다. 학교 안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만큼 열심히 하지 않는 제 모습에 실망을 거듭했고,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에 대한 대가로 대학의 등급이 나뉜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속이 답답합니다. 그만큼 제가 열심히 하지 않고 있기에 이런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대로 답답한 마음은 마음대로 항상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교에 가게 되었을 때, 중학교 시절 친구들이 저를 동정할까 봐 두렵고, 친구들과 저 자신을 비교하면서 부족한 모습만 보이고,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할 자신도 없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힘들다는 느낌이 들 때면 생각만 바꾸면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 아래에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 노력했고, 금방 기분이 괜찮아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자살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게 된 이후, 전에 사용했던 방법으로 우울한 감정이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극단적인 생각과 우울한 감정이 2~3일 정도 지속되다가 자고 일어났을 때, 저절로 괜찮아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한 달 정도를 주기로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한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게 가장 속상하고 답답합니다. 그 며칠을 제외한 나머지는 친구들과 나름대로 재밌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며칠에서 느끼는 우울한 감정의 깊이가 너무 깊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울증인가 싶어 찾아보니 오랜 기간 지속되는 것은 아니라 단순한 우울감인가 싶기도 합니다.

우울한 감정이 드는 그 며칠 사이에 긍정적인 마음을 갖자고 더 노력해 보는 것은 효과가 있을까요? 그리고 제가 느끼는 지금의 감정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단순한 우울감인가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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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공부로 인해 최근 자살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버거운 상황에 놓이신 것 같습니다. 주변 친구들과 비교하고, 부모님 기대를 충족할 자신이 없어 더욱 위축되는 느낌과 우울감을 수시로 느끼고 있군요. 그동안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해보는 노력을 했지만, 최근에는 그 노력이 효과가 없어진 것 같고요. 무엇보다 사연자님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한 채 혼자 끙끙 앓으면서 정말 속상하고 괴로울 것 같습니다. 

사연자님이 글 마지막에 두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첫째는 우울할 때 긍정적인 생각이 효과가 있는지 물어보셨습니다. 긍정적인 정서의 효과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요,긍정적인 정서를 자주 경험하는 사람들이 건강, 학업, 인간관계, 직장 등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더 많은 성취를 이룬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긍정적인 정서를 보통 성취의 결과로 얻는 부산물로 보는 관점이 많은데요. 이 연구에서는 오히려 뛰어난 성취를 가져오는 선행 변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정서를 이끌어내기 때문에, 노력하시면 분명 효과가 있습니다. 단, 우울함에 대해 다각도로 이해하고 소화하는 일이 먼저 해결되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정서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긍정적인 생각들로 덮는 것은 효과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질문으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단순한 우울감인지 물어보셨습니다. 먼저 지금 겪는 우울의 원인을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우울감이 드는 이유에는 성향과 같은 개인 내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외부 요인도 함께 존재합니다. 개인을 둘러싼 사회환경 요인도 심리적인 어려움에 많이 기여합니다. 사연자님의 우울감에는 ‘환경 요인’의 비중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고3이라는 수험생활은 굉장한 압박감과 불안감을 초래하는 기간입니다. 우리는 학업 성취에 따라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 결정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을 겁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10대 사망 원인 중 1위가 자살(37.5%)이고 자살의 원인 중 대부분이 학업 스트레스라는 것입니다. 

현재 사연자님을 포함한 많은 수험생이 학업 스트레스에 내몰리고, 상당수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됩니다. 질문하셨던 것처럼 사연자님이 겪는 고통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보편적인 종류입니다. 하지만 모두 다른 무게와 다른 크기를 가진 고통들입니다. 사연자님의  고통을 누군가의 것과 비교하고 판단하는 일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현재 사연자님의 힘든 마음을 ‘오롯이’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연자님의 우울을 병리적인 문제로 보기보다, 환경에 반응하는 비교적 건강한 감정이라고 해석하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우울한 감정이 드는 것이 타당하고 합리적인 상황이라는 의미입니다. 부모님의 기대가 어느 수준인지는 모르지만, 사연자님께 기대를 많이 드러내셨다면 이에 부담을 느끼고 위축되는 감정도 자연스럽습니다. 여러 가지 부정적인 감정이 휘몰아치고 가라앉는 이러한 감정적 부침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 감정 자체는 잘못된 게 없습니다. 다만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가지는 ‘태도’가 중요한 변수가 됩니다.

우울, 불안 등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사연자님은 어떻게 느끼시나요? 부정적 감정을 ‘가능한 숨겨야 하는’, ‘없애야 할’, ‘표현해서는 안 될’ 감정이라고 바라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많은 사람이 부정적인 정서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가집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소화하기 어려우니까 빨리 없애고 싶은 것이죠. 그런데 부정적인 감정을 결국은 사라져야 할 나쁜 것으로 바라보면 감정에 대한 혐오감이 같이 형성됩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안 느끼려고 할수록 더 많이 느끼게 되는 역설적인 효과도 일어납니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감정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일을 어렵게 합니다. 현재 사연자님도 자신의 감정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누군가 자신을 공감하리라는 기대도 갖지 못하고 표현 자체를 포기하셨습니다.

게다가 수험생활은 힘든 게 당연하다며, 고통을 해결하는 일조차 입시 이후로 미루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사연자님이 다른 누구에게 힘든 일을 공유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러한 분위기가 일조할 겁니다. ‘내가 힘든 것처럼 남들도 똑같이 힘들다. 그러니 내가 힘든 걸 굳이 털어놓아서 상대방에게 짐을 얹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하셨을 겁니다. 

그렇지만 사연자님, 많은 이들이 유사하게 겪는 상황적인 고통이라도, 정말 힘든 건 힘든 겁니다. 수험생활은 목표 달성을 위해 현재 생활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합니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취미, 여가 활동들도 제한하고, 힘든 일들도 입시가 끝난 후로 미루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받습니다. 엄연히 말하면 수험생활은 ‘행복하지 않은 일상’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잠시 ‘행복’에 대한 심리학적인 개념을 짚고 싶은데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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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이선 맥머핸(Ethen McMahan)이 정의한 ‘본질적인 행복’에는 네 가지 차원이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부정적인 경험을 하지 않는 것, 세 번째는 타인의 웰빙에 기여하는 것. 마지막으로는 자신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사연자님의 일상은 실시간으로 성적이 변동하고 학업 수행에 대해 계속 평가받고, 친구들과 경쟁하듯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일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부정적인 경험을 많이 하고 있고, 그에 비해 즐거움은 상대적으로 부족하거나 적게 경험하지요. 내 코가 석 자인데 타인의 웰빙에 기여할 상황도 아니고요. 사연자님 상황은 참 행복의 요건들을 충족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렇다고 아예 불행으로 가득한 상황이라고 결론 내릴 필요는 없지요. 본질적인 행복의 마지막 차원인 ‘성장’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부정적 감정을 다루고 감내하고, 목표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면서 자기의 ‘한계’를 직면하는 모든 과정에서 사연자님은 성장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근육을 키워 가고 있는 겁니다. 

상황과 감정에서 도망치지 않고 버텨내는 용기는 대단한 겁니다. 지금 당장은 긍정적인 자신의 미래를 그리긴 어렵겠지만, 사연자님 스스로를 믿어 주면 좋겠습니다. 결국은 이 모든 과정을 어떻게든 자신의 속도에 맞게 소화해 낼 것이라고 말이죠. 다만 누군가와의 비교는 불행의 늪입니다. 비교하는 습관만큼은 의식하고, 개선해야 장기적으로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참고로 타인과의 비교가 미치는 영향을 실험한 심리학 연구를 소개하겠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소냐 루보머스키(Sonja Lyubomirsky)는 긍정심리학 분야 연구자입니다. 한 실험에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과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집단을 나누어 각각 철자풀이 과제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과제 수행 결과를 알려주었는데요. 이때 다른 참가자들의 점수도 함께 밝혔습니다. 두 집단의 참가자들 모두 좋은 점수를 받았을 때 긍정적인 기분을 보고했습니다. 반면 다른 참가자들의 점수를 알려주었을 때는 두 집단 참가자들의 태도는 달랐습니다. 행복한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점수를 알려주었을 때는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타인의 점수와 상관없이 자신에게 만족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한 사람에게 남들의 높은 점수를 알려주었을 때는 달랐습니다. ‘비교’를 통해 기분이 극단적으로 변화했습니다. 내가 남들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을 때는 몹시 기뻐했지만, 낮은 점수를 받았음을 알게 될 때는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불쾌한 감정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이 실험에서 명백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누군가와의 비교는 불행한 감정을 느끼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비교는 ‘끝’이 나지 않습니다. 각자 자신이 달리는 삶의 트랙(Track)인 길이 있는데요. 내가 걸어가는 트랙만 집중해야 합니다.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의 트랙을 보면 언제나 사연자님보다 앞서 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느리게 걷는 사람도, 아예 주저앉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사연자님의 감정이 부정적으로 변하도록 방치하지 마십시오.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살지 못하게 되면 타인들의 삶을 보고 그에 ‘의존’하게 됩니다. 비교하는 행위는 사연자님의 트랙을 이탈하는 겁니다. 누군가와 비교가 전혀 필요치 않고, 의미도 없습니다. 마치 토끼랑 나무랑 누가 더 나은가 비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대체 불가능한 사연자님만의 고유한 삶의 트랙이 있음을 기억하세요.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내용이 있습니다. 지금 우울감이나 힘든 걸 말하는 일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닙니다.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거나 배려한다는 명목하에 감정을 참고 삼키지 마십시오. 얼마나 압박감이 심하고 괴로운지 최소한 보호자인 부모님은 아실 권리가 있습니다. 부모님의 기대가 얼마나 부담되는지 표현하셨으면 합니다. 만일 당장 말할 용기가 안 난다면, 학교 상담센터나 지역구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전문가와 만나 상담하는 것을 권합니다. 자살 생각의 빈도가 늘어나면 주의해야 하는 신호이니 꼭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세요. 표현하고 감정을 환기(Ventilation)할 때 우울하고 힘든 감정이 한결 나아질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이 가진 괴로움이 조금씩 줄어들고 가벼워지는 일상이 찾아오길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사연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 * McMahan, E. A., & Estes, D. (2011). Measuring lay conception of well-being: The Beliefs about Well-Being Scale. Journal of Happiness Studie0, 12(2), 267-287

* Lyubomirsky, S.,  King, L., & Diener, E.(2005). The benefits of frequent positive affect: Does happiness lead to success? Psychological Bulletin, 131, 803-855. (pp.537)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호선 원장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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