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인생학교의 영원한 동창생

[정신의학신문: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이호선 정신과 전문의]


어느 부잣집 외아들이 있었다. 어릴 때 사고를 당해 몸 일부가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지만 열심히 공부해 명문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매일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예전에는 버스에 안내양이 있었다. 매번 같은 버스를 타다 보니 낯이 익게 된 대학생과 안내양은 눈인사를 나누었다. 몸이 불편한 그를 위해 안내양은 부축도 해주었다. 두 사람은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었다. 청년은 무척 행복했다.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여인이 생겨 사는 맛이 나고 자존감도 올라갔다. 안내양 또한 대학생과의 만남에 설레는 나날을 보냈다. 가난해서 배우지 못한 채 버스 안내양이나 하는 자신을 정성껏 보듬어주는 청년이 듬직하고 고마웠다. 둘은 시간 날 때마다 만나 차도 마시고 공원에서 산책도 하면서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런데 청년 집에서 이 일을 알아버렸다. 난리가 났다. 아무리 장애가 있는 아들이라 해도 명문대학을 다니는 대학생인데다 부잣집 외아들이었기에 버스 안내양과의 교제를 용인할 수 없었다. 청년의 부모는 버스회사로 찾아가 직원 교육을 어떻게 했느냐며 항의를 하고 아들과 사귀던 안내양에게 심한 모욕을 주었다. 가난해서 배우지 못한 처지였지만, 버스 안내양을 하면서도 야학에 나가 꿈을 키우던 그녀는 이 일로 심한 충격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 후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아무도 그녀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그즈음 청년은 부모에 의해 꼼짝없이 집에 갇혀 있었다.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한 달쯤 시간이 흐른 뒤 그는 부모에게 다시는 그녀를 만나지 않겠다고 각서를 쓴 다음 겨우 집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는 그 길로 그녀가 일하던 버스회사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녀는 그곳에 없었다. 사정사정해서 그녀의 시골집 주소를 알아낸 청년은 한달음에 그녀의 고향으로 내달렸다. 어릴 때 부모가 돌아가신 그녀에게 피붙이는 오빠뿐이었다. 실연의 상처를 입은 그녀는 오빠 집에 머물고 있었다. 오빠를 붙들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오빠는 청년에게 말없이 뒷산 중턱을 가리켰다. 오빠와 함께 불편한 몸으로 산에 오른 청년 앞에 나타난 것은 사랑하는 여인의 무덤이었다. 집에 내려와 몸져누웠던 그녀는 어느 날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청년은 그녀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졌던 아름다운 사랑이자 꿈이었는데, 그것이 허무하게 끝나자 더는 버텨낼 기력이 없어진 것이다.

청년은 절규했다. 자기 때문에 그녀가 죽었다고 울부짖었다. 대학생과 안내양이라는 신분의 차이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불편한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살펴주며 풋풋한 사랑을 나누었던 그녀에게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을 주고 세상을 살아갈 의지마저 꺾어놓은 자신의 부모와 세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었다. 몇 날 며칠 동안 그녀 무덤에서 울부짖던 청년 역시 어느 하루 무덤가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홀로 살아갈 염치도 의미도 발견할 수 없던 청년은 그녀처럼 약을 먹고 사랑하는 사람의 뒤를 따라간 것이다.


오랜만에 같이 밥을 먹게 된 한 선배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듣는 내내 가슴이 뭉클하고 먹먹했다. 진료실에서 만났던 환자 중에 이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 또한 얼마나 아프고 힘들까 생각했다. 부모가 자녀에게, 자녀가 부모에게, 형이 동생에게, 동생이 언니에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서로 억압하고 간섭하고 상처를 주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사랑하니까 이러는 거야. 제발 내 말 좀 들
어.”
“다 너의 행복을 위해서야. 나 좋자고 이러는 거 절대 아니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사랑과 행복.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이 두 가지를 얻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인생의 목적이 뭐냐고 묻는다면 혹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이 이 두 가지를 꼽을 것이다.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지식 또는 그 어떤 것도 결국은 자기 자신의 행복과 사랑을 위해서 추구하는 것이다. 사랑하면 행복하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사랑해야 한다. 사랑과 행복을 빼면 인생에 대체 무엇이 남을까? 사랑하고 행복을 느끼며, 사랑하기 위해 애쓰고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며 살다 가는 게 인생이다.


하지만 사랑과 행복을 느끼는 과정, 방법, 결과는 저마다 다르다. 여기에는 정답도 없고 정해진 규범이나 모범도 없다.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데 어떤 제약이 있다면 그것은 경험과 관습에 따른 편견과 오해에서 기인한다. 학력, 경제력, 집안, 나이, 외모 등에 의해 사랑할 사람과 사랑받을 사람이 정해진다면 인생은 한없이 건조하고 삭막해질 것이다. 그렇게 잘 맞춰진 조합에 행복이 담보된다는 보장도 없다. 사랑을 느끼고 행복을 맛보는 건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누구도 이를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런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억압과 재단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가정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자신만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너의 사랑과 행복을 위해 이러는 거라고 강변한다.

2021년 가을 출간된 정유정 작가의 소설 『완전한 행복』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자행되는 무자비한 폭력을 다루고 있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자신의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이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요소를 하나씩 제거해나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가족 내에서 서로 추구하는 행복의 모습이 다를 때 이를 어떻게 조정하고 조율해 나가야 할까?

자기애의 늪에 빠진 나르시시스트인 주인공 유나는 한 번 결혼에 실패한 채 딸아이를 데리고 재혼한 여자다. 쓰라린 좌절을 겪었기에 두 번째 결혼은 반드시 성공해야 하고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유나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여자다.


현재의 남편인 은호와 유나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한번 구체적으로 얘기해봐.”


이에 은호가 대답한다.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

유나는 기다렸다는 듯 반박한다.
“아니,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그녀는 베란다 유리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한다.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 가는 거.”

과연 그럴까? 행복은 자신이 행복의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을 하나씩 이루어가고 얻어가면서 느끼는 게 아닐까? 행복하지 않은 요소를 하나씩 제거해나가면 맨 나중에 남는 것이 과연 행복일까? 불행의 조건을 하나씩 없앤다고 해서 행복이 남게 되리라 보장할 수 있을까?


유나는 자기애성 인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를 가진 사람이다.
이런 장애가 있는 사람은 성공에 대한 욕구가 강해 누군가를 배려하거나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모른다. ‘나’와 ‘남’을 구분하지 못하며 ‘남’은 자기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존재하는 또 다른 ‘나’가 된다. ‘나’가 되어버린 ‘남’은 쓸모가 있을 때는 충실히 사용하다가도 쓸모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린다.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나’를 탐색한다. 행복에 방해가 되는 ‘남’을 하나씩 지워가며 불행의 가능성을 제거함으로써 ‘나’의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던 그녀는 자신만의 완전한 행복을 찾았을까? 그렇지 않다. 정반대였다. 남은 건 처참한 불행뿐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한
다. 다만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겐 행복할 권리와 타인의 행복에 대한 책임이 함께
있다는 것을.”

작가는 작품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누구에게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내가 행복의 조건이나 요소라고 생각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내 주관에 따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함부로 재단하고 강제할 권리 역시 없다. 아무리 부모라 해도,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말이다. 그리고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다른 사람을 불행에 빠뜨릴 권리 또한 당연히 없다. 내 행복을 자유롭게 추구할 권리가 있는 것만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침해할 권리가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것이 타인의 행복에 대한 책임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 작가가 말하는 완전한 행복이란 나만의 행복, 즉 이기적인 행복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다.

모두가 불행한데 혼자만 행복할 수 없는 까닭이다. 나와 가족과 이웃과 사회 나아가 온 인류가 행복해야, 즉 이타적 행복이 충족되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가정은 사랑을 배우는 학교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배우는 학교다. 부모의 사랑으로 자녀가 태어나고,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녀가 자라나며, 부모의 사랑 덕에 자녀가 어른이 된다. 부모의 사랑 속에 성장한 사람은 이웃과 사회에 사랑을 전파한다. 그리고 자신도 사랑이 가득한 가정을 만든다. 이렇게 사랑은 가정을 통해 전수되고 대를 잇는다. 부모의 역할은 최선을 다해 마음껏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이 전부다. 사랑이 결핍된 가정에서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배울 수가 없다. 가정을 통해 사랑이 전수되고 대를 잇지 못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을 억압하고 재단한다. 대부분 불행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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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은 행복을 배우는 학교다. 행복을 느끼면서 무엇이 행복인가를 알게 되고 어떤 행복을 추구할 것인가를 꿈꾸게 된다. 부모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자녀는 행복을 배워나간다. 부모의 역할은 일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전부다. 행복한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은 이웃과 사회에 행복을 전파한다. 훗날 어른이 되어 자신도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행복할 권리도 누리지만, 타인의 행복에 대한 책임도 질 줄 안다. 가정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행복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 사로잡히기 쉽다. 내 주관으로 타인의 행복을 강제하고 재단하려 든다.

트라피스트 수도회 출신으로 ‘사막의 성자’라 불리는 프랑스 신부 샤를르 드 푸코는 ‘나는 배웠다’라는 시 한 편을 남겼다. 워낙 유명해서 많은 사람이 자신이 쓴 시라고 주장하기도 하는 이 시는 인생에서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잘 일깨워주고 있다.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임을.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린 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사랑의 말을 남겨 놓아야 함을 나는 배웠다.
어느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 시간이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두 사람이 서로 다툰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님을 나는 배웠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 다투지 않는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두 사람이 한 가지 사물을 바라보면서도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를 수 있음을.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게 만드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가정은 그걸 배우는 공간이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배움으로써 자신이 얼마든지 사랑받을 만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 이것이 가정의 역할이다. 사랑받을 만한 사람은 반드시 사랑받게 되어 있다. 가족은 서로를 보듬고 격려하고 이해하고 존중함으로써 사랑받을 만한 사람들을 길러내는 곳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언제나 사랑의 말을 남겨 놓는 것도 가정에서 배우는 일이다. 가족의 언어는 사랑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부모가 사랑의 언어를 줄기차게 사용하면 자녀들 역시 사랑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될 것이다. 사랑의 모습은 각양각색이기에 두 사람이 같은 걸 바라보면서도 완전히 다른 견해를 가질 수는 있지만,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결국은 사랑할 수밖에 없고, 사랑으로 귀결된다는 사실도 배우게 된다.

시의 마지막 연은 이렇게 끝맺는다.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을.


가정은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을 배우는 학교다. 그리고 가정은 자신의 행복할 권리와 타인의 행복에 대한 책임을 배우는 학교다. 가족은 서로에게 배움을 얻고 가르침을 주는 인생 학교의 영원한 동창생이다. 부모와 자녀, 형제와 자매, 가족구성원 모두 이 사실 하나만 명심하고 실천한다면 가족의 이름은 빛나고 아름다운 이름으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 ‘가족의 심리학’은 이번 글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들께 감
사드립니다. 연재되었던 글은 곧 단행본으로 묶여 출간될 예정입니다.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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