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뇌부자들 [7화 Part 1]

[정신의학신문: 김지용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사진 https://www.flickr.com/photos/freelyhaylee/6349438372

 

A씨의 사연:

 

안녕하세요, 식이장애에 대해 심각한 고민이 있어 사연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전 162cm, 44kg 의 체형을 지닌 여성이에요. 지금은 다들 날씬하다고 말을 해주지만, 전혀 다른 모습의 과거가 있었어요. 전 어릴 때부터 '날씬한 어머니가 뚱뚱한 날 혐오스럽게 본다'고 생각해서 가족들 앞에서는 먹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모두가 잠들고 나서야 몰래 음식을 먹을 정도로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았었어요. 5년 전부터는 운동으로 체중 조절을 시작했고, 살이 빠지면서 어머니와 사이가 좋아지고 회사에서도 인기가 많아져서 아픈 날에도 쉬지 않고 적어도 40분씩은 달리기를 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식이장애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음식을 먹고 나서 토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았어요. 식이장애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방송이었지만, 저는 '힘든 운동을 안 해도 마음껏 먹고 체중이 안 늘어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었구나'란 생각에 구토 행동을 따라 하기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 점차 익숙해져 언제부터인가는 매일 구토를 하게 되었네요.

 

1년 전에 한의원을 찾아가 상담 받은 뒤 한약도 먹었지만 전혀 치료되지 않았고, 병원에서 식욕부진약 이란 것을 처방 받아 보았지만 폭식과 구토는 멈출 수 없었어요. 현재 생리불순이 조금 있는 것 외에는 건강에 문제가 없는데, 조금이라도 살이 찔 것 같은 음식을 먹으면 반드시 토하는 것이 반복되고, 한 번이라도 토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잠들지도 못하는 날이 계속되고 있어요. 이런 제가 정상생활을 할 수 있을 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사진 http://alicat123.deviantart.com/art/Monster-in-the-Mirror-50027796

 

뇌부자들의 답장:

 

안녕하세요, 뇌부자들입니다. 몇 년째 이러한 문제들로 고통 받고 계시다니.. 많이 힘드셨겠네요. 매일 구토를 하시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힘드실 것 같은데, 사연 글을 통해 저희에게도 느껴질 정도의 '살찌는 것에 대한 극심한 걱정과 불안'이 A씨를 더욱 괴롭히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재 A씨의 상태는 사연에 적어주신 것처럼 식이장애, 그 중에서도 거식증 (신경성 식욕부진증)으로 인한 것으로 보여요. '신경성 식욕부진증'이란 이름이 이 질환에 대해 흔히들 가지고 있는 오해를 보여주는데요, 흔히들 식욕이 없어져서 음식 섭취를 하지 못하게 된다는 생각을 하시거든요. 하지만 실제로 거식증은 식욕이 정상이거나 오히려 증가된 상태에서 마르고 싶다는 끝없는 욕구, 또는 살찌는 것에 대한 극심한 공포로 인해 음식 섭취를 거부하는 질환이에요. 음식을 먹어도 곧바로 토하거나, 엄청나게 많은 운동을 해서 음식을 먹은 것을 보상하려고 하는게 특징이고요.

 

남들이 보기에는 많이 말랐지만 왜곡된 자신의 신체 이미지가 있어서 '내 몸은 여전히 뚱뚱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괴로워하시는 환자 분들이 많이 계세요. 거식증에서 보이는 체중 증가에 대한 공포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을 훨씬 뛰어넘고,  30kg가 채 되지 않는 체중에도 식사를 끝까지 거부하다 죽음에 이르렀다는 사례를 A씨께서도 뉴스를 통해 한번쯤 들어보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정신과 질환 중 가장 높은 사망률을 보이기 때문에 정상기대치보다 20% 이상 낮은 체중의 환자 분들 경우 입원치료의 대상이 되며, 30% 이상 낮은 심각한 경우에는 수개월 동안의 정신건강의학과 입원치료가 필수적이죠.  

 

그런데 이렇게 위험한 거식증을 진단받은 분들이 최근 급증하고 있어요. TV, SNS 등을 통해 매일 접하는 날씬한 사람들의 모습, 넘쳐나는 다이어트 광고들을 보고 있으면 거식증 환자 분들이 많아지는 이유가 절로 짐작이 되네요.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 분들에게서 뚱뚱하단 이유로 학교나 가정에서 놀림과 비난을 받았던 경험을 듣다 보면 그 분들이 가진 극심한 공포감의 정체가 이해가 되고,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이분들을 질병으로 내몰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질 때도 많죠. A씨께서도 겪으셨듯이 살 찐 것에 대한 비난과 살 뺀 것에 대한 과도한 칭찬, 이 두 가지 모두 거식증을 유발할 수 있는데,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더욱 강하게 형성되고 있어서 A씨와 동일한 아픔을 겪는 분들의 수가 늘어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네요.  아마 살찌는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셨던 A씨의 어머님도 이런 사회 분위기 탓에 A씨에 대한 사랑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왜곡되어 갔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질병의 심각성에 대해 설명을 드리다 보니 A씨께서 겁먹을 수 있는 무서운 이야기들만 전해드린 것 같아 한편으로 걱정이 되기도 해요. 거식증 환자 분들을 10년의 기간 동안 살펴본 외국의 연구 결과를 보면 전체의 ¼ 정도는 병에서 완전히 회복되고, 또한 전체의 절반 정도는 대부분 호전이 되어서 큰 이상은 없이 지내게 되었다고 할 정도로 대다수에서 좋아지니까 너무 두려워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특히 A씨 같은 경우엔 병의 예후가 좋을 거라고 생각되는 점이 몇 가지 있어요. 일반적인 경우보다 늦은 나이에 병이 찾아왔고, 아직은 상대적으로 체중 저하가 심각하지 않으며, 또 일상 생활을 잘 유지하고 계시단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 질병임을 인식하고 치료받겠다는 의지를 보이시는 것 등을 볼 때 외래에서 꾸준한 치료 받으시면 좋은 결과를 보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 여러모로 부족한 저희 팟캐스트를 꾸준히 청취해주시고, 꺼내기 쉽지 않았을 힘든 사연을 보내주셔서 비슷한 입장의 다른 분들께도 도움 받을 기회를 제공해주신 A씨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네요. 저희가 드리는 조언이 A씨께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답장 맺을게요.

 

뇌부자들 드림.

 

링크 : http://www.podbbang.com/ch/13552?e=22276500 (1부)

      http://www.podbbang.com/ch/13552?e=22276501 (2부)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뇌부자들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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