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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신문: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사회는 숫자로 비교하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궁극적 목표와 이를 위한 수단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악착같이 돈을 벌어 부자가 되었는데 돈 버는 것만 신경 쓰다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다는 후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건강도 망치고 가족도 화목하지 못한데 무엇을 위해 돈을 벌었는지 모르겠다고 속상해 합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겨우 갖게 되었는데 정작 자신과 잘 맞지 않아 후회가 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학생 때는 숫자로 비교되는 성적이 이와 비슷할 성질을 갖는 것 같습니다. 비교가 되어 무섭고 괴롭다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무언가를 배우는 과정에서 점수나 등수를 얻는 것은 적당히 중요한 일입니다. 돈이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목표가 아닌 것처럼 성적이 배움의 최종 목표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영어가 중요한 업무에 인재채용을 위해 영어시험으로 면접 대상자를 선발하겠지만 시험점수가 높은 사람이 적임자인 것은 아닙니다. 거꾸로 말하면 힘들게 얻은 최고점수도 행복이나 안정과 같은 가치를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점수는 배움의 과정에서 수준을 확인하는 수단일 뿐이지요. 하지만 이 지표는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점수가 늘면 성취감도 느끼고, 동기유발도 됩니다. 영어시험이라면 문법, 독해, 듣기 등 어느 특정 영역에 취약한지 알아낼 때 유용할 것입니다.

'타인과의 비교'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적당히 좌절을 겪으며 내가 모든 것을 잘 해낼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비교를 통해 자신의 장점에 집중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남들보다 뛰어나지 못하더라도 꼭 하고 싶은 일이라면 약점을 감수하고 열심히 시도해볼 수도 있습니다. 학창시절 신장이 작아 고민이었다는 농구, 배구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입니다. 운 좋게 키가 커져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도 있고, 주전선수가 되지 못하더라도 원하는 것을 시도해본 것에 만족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지 않더라도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최상위권'이 되지 않더라도 일상의 즐거움을 느끼며 살 수도 있습니다. 어느 측면이든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면 자부심을 느껴도 됩니다. 의식주를 해결하고 세금을 내는 것으로도 사회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장애나 사고로 인해 일을 할 수 없게 되더라도 사회에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있습니다. 세상에 없던 유용한 것을 만들어내어 큰돈도 벌고 세금도 많이 낸다면 더 기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괴롭고 비참할 일은 아닙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더라도 안전하게 느끼지 못한다면 '성적으로 뒤쳐지면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거야, 아무도 너를 존중하지 않을 거야'라는 과장된 두려움 때문일 것 같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다른 아이와 비교하며 애정을 주지 않고 과도하게 혼낸 것이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친구들에게 성적으로 왕따를 당한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았을지도 모르지요. 아니면 스스로 공부를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에 공포심을 이용하는 방식을 반복하다보니 성격처럼 고정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이루고 싶고, 어떨 때 즐거움을 느끼는지 아는 것입니다. 나만의 가치, 나만의 목표를 세우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알 수는 없습니다. 여러 시도와 경험을 통해 우선순위를 발견할 것입니다. 수학을 좋아해서 수학자가 되려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잘 맞지 않아 수학교육자로 변신하여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도 합니다. 수학을 어려워하던 아이들이 변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면 성공적인 인생일 것입니다. 가난을 벗어나려 무작정 돈을 벌 방법을 찾기 시작했는데 어느 정도 부를 이룬 후에는 꼭 하고 싶은 일을 찾는 현명한 부자처럼 말입니다.

성적, 직업, 부와 같은 것들은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지 궁극적인 목표가 되기는 힘듭니다. 이런 수단을 통해 얻고 싶은 가치들에 대해 나만의 우선순위가 필요합니다. 건강이나 시간 같이 회복하기 힘든 것을 놓치면 안되겠죠. 가까운 사람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나이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이야기하는 것도 서로를 알아가는 좋은 소재가 됩니다. 친해지고 싶은 상대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는 것도 누군가를 더 깊게 알아가는 방법이 됩니다.

만약 내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기 어렵고 숫자로 보이는 것에만 매몰되어 힘들다면, 이것이 우울증 같은 질병으로 인한 일시적인 문제인지 반복된 경험으로 성격처럼 굳어진 것인지 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한번 뿐인 인생이라는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본 칼럼은 경상일보 2022년 3월 18일 15면 ‘[정두영의 마음건강(25)]목표와 수단을 혼동할 때:등수와 스펙’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저서 <마음은 단단하게 인생은 유연하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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