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숲 정신건강의학과의원 :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저는 현재 31살 여자 입니다. 제 고민은 사람과의 관계가 너무 힘들다 이것 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는데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이성과의 문제가 너무 힘드네요.

제가 학창시절부터 가장친한 친구와 싸운다던가 아니면 친구의 반응이 석연치 않다던가 그러면 그게 해결될때까지 불안해하고 그 일만 생각나고 그런 경향이 있었어요.

출처_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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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제 성인이 되고나니 이성과의 문제에서 상대방이 잠수이별을 하거나 연락이 없으면 아 이사람이 연락을 안하면 어떡하지? 나 버려지는건가? 지금 나 버린건가? 이런 생각이 온 머릿속을 지배하고 그냥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그런 기분이 듭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다른 무언갈해도 집중을 할수가 없습니다. 사귀는 관계에서도 그렇지만 썸타는 관계나 그런 관계에서도 제가 그런다는게 너무 힘듭니다. 저는 부모님의 사랑도 많이 받고 컸다고 생각하며 그냥 어느집처럼 평범한 집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와 헤어짐을 겪거나 연락이 안될때 거기에 집착하고 내가 싫은가? 뭘 잘못한건가? 내가 부족한가? 라는 생각들이 가득차서 미친듯이 연락하고 울며 지새운 날도 많습니다. 왜 이런것인지 상담 부탁드려요.

 

답변)

안녕하세요, 당신의 숲 김인수입니다. 주로 이성과의 관계에서 큰 불안감을 느끼게 되면서 일상생활이 잘 유지되지 않는 어려움을 겪고 계시네요. 학창 시절에도 대인관계 갈등이 있을 때 계속 불안했던 경험도 있으셨고요. 사연글에 사연자 성격을 파악할만한 단서가 부족합니다만, 대인관계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큰 스트레스를 경험하시는 걸로 보입니다.

이성과의 관계에서 특히 힘든 이유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겠지만, 사연자님에 대해서 제일 잘 아는 사람은 결국 사연자님입니다. 이번 기회에 스스로에 대해 깊이 탐색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왜 이렇게 연애가 힘든지 이유도 궁금하시겠지만, 그래서 어떻게 안정적으로 연애를 잘 할지가 가장 중요하겠지요. 이를 위해 사연자님이 스스로 반드시 정리해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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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연애는 목적이 무엇인가요?' 사연자님은 스스로 연애를 통해 무얼 얻고 싶은지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대부분의 대인관계는 개인의 ‘욕구’를 기반으로 한 ‘목적’이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연애의 목적을 몇 가지 추려보았습니다. 자기에게 해당되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1번. 외로움을 해결하려고. 2번. 사랑에 빠져있는 경험 자체가 좋아서. 3번. 깊고 친밀하게 소통하고 싶어서. 4번. 문제를 해결하거나 조언하는 보호자 역할이 필요해서. 5번. 결혼을 원해서. 6번. 남들도 다 하는 경험에서 배제되기 싫은 불안감을 해결하려고. 7번. 스킨십이 좋아서. 8번. 소소한 일상을 나눌 가벼운 대상이 필요해서. 이외에도 더 있을 거고요. 이 중 한 가지뿐 아니라 여러 개의 목적이 섞이기도 합니다.

1번부터 8번 중에 사연자님이 특히 원하는 경험이 있을 것이고, 이를 위해 연애를 계속 시도하시는 거겠지요. 그 목적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연애 난이도는 달라지고, 소통방식, 관계의 질(Quaility)도 달라진다는 점을 스스로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연애의 목적을 분명히 정리했으면 이에 적합한 상대방을 찾아야 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야 연애가 바로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연애에서 원하는 것을 채워줄 수 있을 때 연애는 ‘지속 가능한 관계’가 됩니다.

나의 목적도 상대방의 목적도 정확하게 모른다면 이는 관계에서 ‘불안 요소’가 됩니다.

사연자님처럼 상대방도 당연히 연애하는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각자 욕구도 다르고 중요한 우선순위는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서로 알아가는 관계 초기에 확인해야겠지요. 만일 사연자님은 깊고 친밀하게 소통하는 관계를 원해서 연애하는 건데, 상대방은 스킨십이나 가벼운 소통이 목적인 경우라면 분명하게 밝히고 조율해야겠지요. 혹은 외로움이 싫어서 연애하는 건데 상대방은 결이 다른 목적이 있다면 이는 갈등 요소가 되고, 불안감을 자극할 것입니다.

출처_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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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자님이 연애 관계에서 큰 불안감을 경험하는 첫 번째 가설이 바로 이 ‘연애의 목적이 서로 과도하게 불일치한 경우’입니다. 서로 목적이 다른 일은 흔히 있는데요. 문제는 이 불일치를 표현하거나 조율할 수 없을 때 불안감이 증폭된다는 것이죠. 이때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가 사연자님 개인 특성일 수도 있고, 상대방 특성에서 비롯될 수도 있습니다. 불안감을 유발한 책임이 상대 몫이 있는지 아니면 주로 자신에게 있는지 그 비율도 잘 따져봐야 합니다. 그래야 과도한 남 탓이나 내 탓을 피할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께서 그동안의 연애를 돌아보면서, 연애의 목적이 서로 어떻게 달랐고, 이를 어떻게 조율하려고 노력했는지 천천히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연애가 잘 안 되는 느낌이 들고 불안한 상황에서는 사연자님이 연애하는 목적을 다시 상기하고, 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만일 사연자님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없는 대상이라면, 관계를 빨리 정리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대상에게 계속 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굉장히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일입니다. 어떤 관계는 정신건강을 위해서 끊는 것이 더 이로운 경우도 있습니다.

사연자님이 연애 관계에서 불안한 두 번째 가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초기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의존적인 자아상’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연자님은 가정에서 평범하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고 했는데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는 말씀만으로는 부모님과의 관계의 질이 어떠했는지는 잘 모릅니다. 하나의 의견이니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자녀를 잘 챙겨주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는 것만큼 중요한 양육이 또 있습니다. 바로 정서적으로 부모와 독립된 자아로 자녀를 성장시키는 일입니다. 부모와는 완전히 다른 자율적인 인격체로서 자녀를 존중하는 태도 역시 부모가 줄 수 있는 사랑의 형태입니다. 사실 부모님들이 다들 사랑으로 양육하시겠지만, 많은 경우 자녀와의 적절한 거리 조절을 어려워합니다. 처음부터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생각하고 존중하는 부모가 아주 흔하지는 않습니다. 자녀는 일단 미성숙하기에 부모가 개입하고 챙겨야 하는 존재로 인지하며 키우기 시작합니다.

출처_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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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자녀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배우고 소화할 필요가 있는 경험들을 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타인과의 갈등이 생길 때 이를 다루는 방법, 부정적인 감정 적절하게 표현하기, 스트레스 관리 방법 등은 겪으면 고통스럽지만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 부딪히고 터득해야 하는 능력입니다. 자녀가 이러한 경험을 할 때 부모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1번 방임. 2번 과잉보호. 3번 적절한 거리 유지입니다. 방임은 부모가 자녀의 고통에 둔감하여 심리적인 개입을 전혀 하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억압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되겠습니다. 과잉보호는 부모가 자녀의 부정적인 경험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불안, 공포,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 경험을 어떻게 소화할지 교육하기보다, 대신 해결하고, 빨리 없애주려고 하거나 좋은 감정으로 덮는 식으로 반응합니다. 자녀가 오롯이 경험한 것들의 경계를 침범하여 부모가 원하는 방향을 정하는 과잉보호의 형태인 것이죠.

부모로부터 과잉보호를 받은 자녀의 자아상은 어떨까요? ‘혼자서는 불안하여 누군가가 곁에 필요한 약한 사람’이라는 자아상이 무의식적으로 자리합니다. 건강한 경계선을 잘 지키지 못한 부모 자녀 관계는 서로 ‘의존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또한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이후 대인관계 맺는 방식의 초석이 됩니다.

부모는 자녀가 스스로 처리해야 하는 영역을 존중하고, 홀로 스트레스를 겪으며 생기는 정상적인 불안도 소화할 수 있도록 적절한 거리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 개인이 가진 독립 욕구와 의존 욕구의 균형이 맞춰지게 됩니다. 부모가 지나치게 방치하거나 관여하게 되면 자녀는 혼자서는 삶을 살아가기에 무력하고 역부족한 존재라는 자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타인이 반드시 필요하고, 타인의 관계 단절 신호는 존재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협’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실제로 어떻게 성장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사연자님이 부모님에게 받은 영향력 중에서는 연애 관계에서 서툴게 드러나고 반복되는 방식이 있을지 모릅니다. 이를 잘 정리하는 것부터 해결의 시작입니다. 무엇보다 혼자서 잘 지내는 독립적인 생활 패턴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혼자 지내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행복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면 그 이유를 외부 타인에게서 찾는 습관을 알아차리고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해결할 열쇠를 타인이 가진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그렇게 되면 더욱 타인의 반응에 매달리게 될 뿐입니다. 나의 감정과 욕구는 등한시하게 되고요.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의 출처는 나입니다. 책임지고 소화할 수 있는 것도 오직 ‘나’라는 주인의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혼자서 불안한 감정을 소화하고 스스로 돌본 경험이 쌓이면, 관계에 의존하지 않고도 대처했다는 자기효능감이 쌓입니다. 사연자님이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정서적인 고통을 소화했기 때문이지요.

앞으로 관계를 다룬 다양한 심리서를 참고하셔서 사연자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 작업을 하시길 바랍니다. 불안을 건강하게 다루고 싶다면 전문가와 지속적인 상담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사연자님이 보다 자신을 편안하게 표현하고 불안을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건강한 관계를 맺기를 응원하겠습니다.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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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선생님 글을 만났더라면 좀더 빨리 우울감에서 헤어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글 내용이 너무 좋아 응원합니다. 사소한 관계의 행복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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