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권순재 원장]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신입사원입니다. 업무 회의를 하다보면 제 의견을 말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고민고민해서 한 이야기인 데도 결국 선배들에게 묵살당하고 말 때가 대부분입니다. 업무적으로 지적을 받는 일도 잦은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좋은 학교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입사하면서 스스로 자신감과 자부심이 있었는데, 자꾸만 혼나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면 회사에 가기 싫어 가슴이 답답하고 자존감도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야만 해결 가능한 문제일까요? 이런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는 게 좋을까요?

 

권순재의 마음처방전)


안녕하세요.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 권순재입니다. 처음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을 기억하시나요? 안전한 집에서 부모님의 보호 아래에서 지내던 당신은 처음으로 부모님 손을 떠나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 생활하게 되었죠. 너무 어렸기 때문에 명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 때에도 당신은 아마 지금과 같은 일을 겪었을 거에요. 집에서는 부모님의 말씀만 잘 듣는 착한 아들/딸이기만 하면 모든 게 잘 풀렸지만,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당신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많고 다양했을 것이기에 어린 당신은 실수도 하고, 당황도 많이 하고, 가끔 울기도 했을 거에요.

제가 회사생활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뜬금없이 당신의 초등학교 생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당신이 초등학교에 처음 들어가서 겪는 일이나 회사에 처음으로 들어가서 겪는 일에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것은 바로 ‘적응’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평생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사람들과 지내는 다른 동물들과는 달라서 나이에 따라 지내는 환경이 바뀌고 해야되는 역할도 크게 달라지게 됩니다. 당신은 수 많은 새로운 환경을 겪어왔고, 앞으로도 수 많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겠죠.


이제까지 나름 적응을 잘 해왔던 당신이 지금 당황하는 것은 회사에서 요구하는 당신의 역할이 지금까지보다도 더 복잡하고 입체적인 면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 요구되는 것들은 업무 메뉴얼이나 지침에 나와있는 것처럼 명확하고 명쾌한 경우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애매하고, 모순적인 경우가 많아요. 자유롭게 이야기하라고 해서 아이디어를 이야기해봤는데 오히려 핀잔을 듣는다던지, 또 매뉴얼대로 했는데도 업무가 오히려 엉망이 된다던지요.


그런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당신의 시야는 아직 그렇게 넓지가 않기 때문에 이 모든 부정적인 피드백이 단지 ‘나의 부족’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책망하고 일이 잘못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자신감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것을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부적절감’이라고 말하는데요, 이게 너무 심해지면 회사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 자신이 실패했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회사에 가는 것만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끔찍한 기분이 들기도 하죠.

하지만 이렇게 나에게 요구되는 역할이 이렇게 많아지고 애매해지는 경우 우리는 필수적으로 적응의 기간을 겪게 됩니다. 그 적응의 과정을 겪는 동안 당신은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를 하고, 실패를 하고 핀잔을 듣게 되며 넘어서는 안될 선과 반드시 넘어야하는 선을 구분할 수 있게 되구요,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점점 늘어나게 되면서 절대로 불가능했던 일이 가능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어느 정도의 꾸중이나 핀잔은 피해갈 수 없지만 그것이 반드시 당신이 실패했다는 증거가 아니라는 것도 알면서 담담해지게 될 거에요.

 

혹시 처음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을 기억하시나요? 당황하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학교 가는 것을 두려워했던 날도 있었겠지만 당신은 학교에서 훌륭한 학생이 되었고, 친구들도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의 당신이 될 수 있었죠.

혹시 회사생활에서 적응기간 동안 겪는 부정적인 피드백에 힘들어하고 있나요? 그 부정적인 피드백은 당신이 당신이기 때문에 받는 것만은 아닐지도 몰라요. 당신을 힘들게 만드는 것은 부정적인 피드백보다는 적응에 실패했다는 자책일지도 모릅니다. 적응의 기간 동안 받는 시행착오와 부적응은 명백하게 다른 데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을 적응에 실패한 것처럼 여길 필요는 없어요.


수영을 배우러 처음 물에 들어갔을 때에는 모든 게 어색하고 코에 물이 들어가긴 하지만, 몇 번의 실패를 거쳐 결국 우리의 몸은 물에 뜨기 위한 최적의 자세를 찾아냅니다. 그런 다음에야 물은 두려움의 대상에서 우리의 터전이 되죠. 그러니 적응의 과정을 실패의 결과로 여기고 너무 두려워하지 말길 바랍니다. 회사생활 또한 언젠가는 당신을 위한 무대가 될테니까요.

 

* 본 상담사연은 롯데 하이마트 사보 중 한 코너인 <마음 처방전>에 개재된 글입니다.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분당서울대병원 전임의
(전)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치매전문센터장
저서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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