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김인수 전문의] 

 

 

 

2021년이 되었을 때 정한 새해 계획을 기억하는가? 아마도 기억이 나지 않을 것이다. 혹시 기억이 난다면 그 계획은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벌써 2022년이 된 지금의 시점에서 돌이켜봤을 때, 그 계획은 어떻게 느껴지는가? 우리는 계획, 목표를 중요시하고 우리의 의지를 과신한다. 그러나 매일 어떤 결심을 하든,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뜻대로 하루가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제로 성공하는 사람들은 불굴의 의지로 끊임없는 자제와 인내로 무언가를 이루어내지 않는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굳이 자제, 인내를 하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꾸준히 그 상황 속에서 행동을 이어나가는 이들이다.

 

우리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통제하기 힘든 것들을 통제하기 위해 쓴다. 감정, 생각은 우리의 통제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화를 내지 말아야지",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해야지"라고 결심한다고 해서 그 감정과 생각들을 조절할 수 있는가? 그것들은 우리의 통제 밖에 있다. 충동, 욕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일이나 공부를 해야 할 때 핸드폰을 보거나, 놀러 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도 그것을 가까스로 억제하며 꾸역꾸역 해야 할 것들을 해나간다. 많은 영역에서 우리는 마음 속에서 이는 것들을 억압하고, 절제하고, 조절하려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절제력, 의지는 한계가 명확하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계획대로 살지 못한 자신을 마주하며 나약한 의지를 탓했는가? 반면에 “습관”은 의지의 반대말이다. 매번 새롭게 의지를 내는 대신, 늘 하던 대로 반복하는 “습관"을 형성해놓기만 한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편해질 것이다. 

 

인간은 의지는 상당히 고평가 되어있다. 우리는 계획대로 살지 못한 이유를 “의지가 약해서"라고 쉽게 이야기한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의지를 강하다"면 계획대로 살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의지를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의지라는 것 자체가 매우 추상적이고, 정의하기 힘든 개념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인간의 행동은 의지보다 상황, 환경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 게다가 상황, 환경은 의지보다 훨씬 조절하기 쉽다. 예를 들어, 시끄러운 카페에서 “강한 의지"로 책을 읽는 것보다, “보통의 의지"를 갖고 조용한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 것이 더 쉽다는 뜻이다. 도서관이라는 환경이, 책을 읽겠다는 강한 의지보다 강력한 것이다.  

 

 

중독은 의지보다는 뇌의 문제

 

“중독”은 의지의 문제가 아닌 뇌의 이다. 치료방법은 실질적인 행동을 변화시키는 인지행동치료(CBT), 동기강화치료(MET)가 근간을 이룬다. 치료자는 중독 환자의 의지력에만 기대지 않고 중독을 일으키는 사고, 감정, 행동방식들을 점검하여 교정을 하고, 대안적인 행동방식들을 제시해준다. 입원 치료를 할 경우, 물리적으로 중독물질로부터 분리된 상태를 만들어주는 것, 즉 중독이 일어날 수 없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다. 입원환경에서 환자는 새로운 삶의 방식들을 연습하고 형성해나가며, 정상적 삶으로의 복귀를 준비한다.

중독은 뇌의 문제인데, 어째서 행동방식을 교정하는 것이 치료방법이 될 수 있는가? 반복적 행동방식, 즉 우리가 흔히 습관이라고 부르는 것과 뇌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행동의 반복은 뇌구조를 변화시킨다

 

고전적 행동주의 심리학에서, 인간은 반복적 보상/처벌을 통해 형성된 습관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았다. 그 이후 1980년대 등장한 인지주의 심리학에서는 인간 행동의 기원을 인간 내면에 있는 동기, 지성, 추론 능력 등이라고 보았다. 뇌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는 한층 새로워졌다.

최근의 뇌과학적 발견들은 사람이 “목적이 분명한 활동을 의지를 내어 실행할 때” 활성화되는 영역(전전두엽 PFC)과, 어떤 행동을 반복할 때, 즉 “습관적으로 실행할 때” 활성화되는 영역(조가비핵Putamen)이 구별됨을 시사하고 있다. 즉, 우리가 주체적 의지를 가지고 수행하는 행동과, 별다른 인지과정을 거치지 않고 수행하는 반복적 행동들은 우리 뇌에서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림 1.

“Neural correlates of habit learning, as revealed by an increasing response with training to the onset of task blocks relative to the onset of rest blocks in the 3-day group. (A) The right posterior putamen showed a significant increase in the [task onset — rest onset] contrast from the first two sessions to the final two sessions of training” 
“Neural correlates of habit learning, as revealed by an increasing response with training to the onset of task blocks relative to the onset of rest blocks in the 3-day group. (A) The right posterior putamen showed a significant increase in the [task onset — rest onset] contrast from the first two sessions to the final two sessions of training” 

→ “과제를 반복할 때(habit learning) 활성화되는 조가비핵(putamen)의 모습”

 

그림 2.

“Neural correlates of goal representation, as revealed by increased activation as anticipation of an upcoming reward increases.(B) The vmPFC region showing a significant effect of the ramp modulator in all subjects over the first 2 sessions of training is shown”
“Neural correlates of goal representation, as revealed by increased activation as anticipation of an upcoming reward increases.(B) The vmPFC region showing a significant effect of the ramp modulator in all subjects over the first 2 sessions of training is shown”

→ “목표가 뚜렷한 활동(goal-directed action)을 의지를 내어 실행할 때 활성화되는 전전두엽(vmPFC)의 모습

 

그리고 어떤 일을 반복할수록 그에 맞게 뇌의 시냅스(뇌신경세포 간의 연결부위)가 재구조화되면서 점점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게 수월해지는 효과도 있다. 특정 행동을 반복할수록 그에 맞게 뇌의 구조가 변하고, 변화된 구조가 다시 그 행동을 반복하는 걸 돕는다. 선순환의 고리가 생기는 것이다. 

 

즉, 어떠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은 뇌의 구조를 그에 맞게 변화시키는 일이다. 뇌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서 중독 환자에서 왜 대안적 행동방식의 형성이 치료에 있어서 중요한지 의문을 제기했었다. 우리가 살펴본 뇌과학적 발견들을 기반으로 생각해보면, 대안적 행동을 반복하면 → 뇌구조가 그에 맞게 변하고 → 대안적 습관이 형성이 되고 → 한 번 형성된 습관의 힘으로 → 중독의 사슬을 끊고 건강한 삶의 루틴들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습관은 새로운 뇌, 그리고 새로운 삶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특정 행동을 반복할 경우, 행동과 관련된 뇌 안의 시냅스를 재구조화 및 강화시켜, 특정 행동이 다시금 수월하게 일어날 수 있게 한다”

 

 

지금의 우리는 이미 과거에 형성된 습관들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과거를 바꿀 힘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하지만 새로운 습관의 형성은 새로운 미래를 보장한다. 우리가 지닌 얼마 안 되는 의지력에 우리의 운명을 내맡기지 말고, 우리가 매일매일 해나가는 조그만 행동의 반복에서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면 미래의 삶은 우리에게 분명한 보상을 줄 것이다.

 

 

참고문헌 :

The European Journal of Neuroscience,21 May 2009, 29(11):2225-2232DOI:10.1111/j.1460-9568.2009.06796.x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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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선생님 글을 만났더라면 좀더 빨리 우울감에서 헤어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글 내용이 너무 좋아 응원합니다. 사소한 관계의 행복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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