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찬영 전문의] 

 

 

 

“요즘 들어서 짜증을 내는 경우가 많아요. 제 성격이 원래 그렇게 모난 편은 아니었는데 요즘엔 스스로가 너무 예민한 사람이라 느끼게 됩니다.

상사가 지나가다 한 마디만 해도 순간 화가 나고, 동료 직원이 별거 아닌 부탁을 하는데도 괜히 감정이 상합니다. 회사에서는 화를 꾹 참고 일을 하다가도 집에만 가면, 가족들에게 사소한 일로 짜증을 부리곤 합니다.

이렇게 별 것 아닌 일로 쉽게 울컥하고 감정을 소모하고 나면 마음이 좋지가 않아요.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다시 짜증을 부리고 있는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네요 “

‘짜증 내는 나, 문제인가요?’

 

살면서 짜증을 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당연히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가끔은 짜증을 냅니다. 사실 짜증날만 한 일에는 짜증이 나고, 화나는 일에 화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죠. 하지만 이런 짜증을 내는 빈도가 너무 잦은 시기가 있습니다. 때로는 정말로 별거 아닌 작은 일인데도, 감정 조절이 안 돼서 흥분하거나 화를 내고 때로는 몽니를 부리는 경우도 있곤 합니다.

만약 원래부터 짜증이 많고 화가 많은 사람이라면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이런 성격의 사람이 아니었는데, 지나치게 예민하게 굴며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면 이렇게 짜증 내는 것이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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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짜증이 많이 날까요?’

콜롬비아 대학의 조나단 레바브 교수는 판사가 가석방을 허가해 주는 재판의 내용을 분석했습니다. 가석방 심리를 진행하는 판사들은 하루에 아주 많은 사람들의 가석방 여부를 빠르고 직관적으로 판단해야만 합니다.

판사들이 아침에 처음 심리를 시작할 때, 점심시간 이후나 휴식 이후처럼 컨디션이 좋은 시점의 판결에서는 대체로 가석방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에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이전, 긴 심리에서는 법을 엄격하게 적용해서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훤씬 많았다는 것이 실험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짜증이 나는 것도 이 실험의 결과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의 우리는 관대합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어도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고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어도 좀 더 관대하게 받아들이면서 참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시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걱정이 많아서 그런지 밤에 잠도 좀 설치고, 피곤함을 쉽게 느끼고 컨디션이 좋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럴 때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직원이 있을 때면 너무 거슬립니다. 나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 감정을 건드리는 사람이 있다면 크게 화가 나고 감정 조절이 안 되곤 합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작은 일임에도 견디지 못하고 크게 짜증이 나게 되는 것이죠.

이처럼 짜증이 나는 상황을 마치 물이 끓는 것과 비유하여 설명하기도 합니다. 물은 100도가 되면 끓어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이 이미 70-80도까지 끓어있다면 어떨까요? 아마 조금의 자극, 조금의 스트레스에도 확 끓어오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좀 더 차분해서 평화로워서 30-40 도 정도의 낮은 온도의 상태로 유지가 되었다면, 그냥 지나가는 스트레스 정도로 끝날 수 있는 일이 내 마음이 안 좋을 때는 세상 화나게 만드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짜증이 나는 이유는 어쩌면 외부의 상황 때문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죠. 나의 상태가 짜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지쳐있는 상황에서는 외부의 거슬리는 상황 하나하나가 기폭제 (trigger)가 되어 짜증이라는 감정으로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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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건강한 나로 돌아오는 방법이 있을까요?’

짜증이 많이 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마음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요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제대로 쉬지 못한 상태라 피로가 한계까지 쌓여있는 상태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이때 느껴지는 짜증을 계속 방치하면 문제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밖에서는 겨우 참다가 가족과 같이 가깝고 의지가 되는 사람들에게 폭발해 버리기도 합니다. 분노와 화가 커졌음에도 속으로만 억압하면 이게 몸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두근거림을 느끼고, 원인을 모를 두통, 어지럼증, 소화불량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이런 마음을 방치하고 오히려 더 몰아붙이게 되면 공황증, 만성 불면, 우울증으로 진행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짜증을 많이 내는 나를 마냥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를 반성하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내가 지쳐있는 상태구나’ ‘휴식이 필요하구나’ ‘삶의 변화가 필요하구나’ 이런 식으로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역시 필요합니다.

짜증이 자주 난다는 것은 지금의 삶에서 변화를 줘야만 한다는 신호입니다. 이렇게 지쳐있는 상태에선 자신을 더 쥐어짜면서 노력하는 것보다 잘 쉬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잘 쉴 수 있을까요? 스트레스 상황과 거리를 두는 시간과 장소가 필요합니다. 몸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멀어졌지만 우리의 생각은 계속 스트레스 상황에 머무르곤 합니다. 직장에 퇴근을 하면서도, 일에 대한 걱정을 계속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시험공부를 하면서 쉬는 시간에도 시험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제대로 쉬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그냥 쉬어줘야 합니다. 물론 스트레스와 쉬는 시간을 완전히 구분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성적으로는 마음에 계속해서 타일러줘야 합니다. ‘집에서 고민해야 되는 내용은 없다고, 집에서 고민해서 해결될 수 있는 일이라면 이미 해결이 되었을 것이라고, 지금은 쉬는 시간이고 지금의 시간에 집중을 하겠다고.’

그러면서 일상의 삶 자체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예컨대 가족과 이야기를 하면서 산책을 하고, 그냥 웃으면서 tv를 보고, 식사를 하면서 하루의 안부를 묻고, 이처럼 별 거 아닌 일상의 삶 자체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잘 쉬는 사람이고 건강한 사람입니다.

몸이 아주 지쳐서 일상에서 회복이 잘 되지 않을 때는, 저는 완전히 휴식을 취할 것을 권유하기도 합니다. 마치 컴퓨터의 리셋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말이죠.

 

많은 분들이 ‘제가 쉰다고 좋아질까요?’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보다 휴식의 효과는 커서, 완전히 그로기가 된 사람이라도 1-2주가량의 시간이라도 현실에서 떨어져서 충분히 쉬어주면 많은 경우에서 회복이 되고 이전의 건강한 상태로 돌아오게 됩니다.

물론 갑자기 현실에서 멀어져서 휴식을 취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죠. 해야 될 업무도 있고, 승진에 대한 경쟁도 있고, 미래에 대한 생각 등등.. 휴식을 방해하는 많은 현실적인 난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제가 드리는 말씀은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지쳐서 짜증이 가득한 상태에서 계속해서 나를 몰아붙이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더 큰 손해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지금 잠깐 쉬면 회복될 수 있는데, 나중을 바라보면서 더 몰아붙이다가 몸과 마음이 크게 다치는 경우를 보기도 합니다. 우리는 남들에게는 ‘힘들면 잠깐 쉬었다가 해’ ‘길게 보면 잠깐 쉬어가는 게 큰 일은 아니야’와 같은 말을 건네곤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그 말을 쉬이 건네지 못합니다. 때론 남에게 하는 그 말을 나 스스로에게도 해줄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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