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정신 망상·환청
[영화 속 마음을 읽다] 23 아이덴티티(Split, 2016) - 당신의 마음은 몇개인가요?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7.05.18 08:03

 

 

사진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23개의 인격을 가진 남자, 그리고 그들에게 납치된 세 명의 소녀

 

생일파티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던 세 명의 소녀 클레어와 마르샤, 그리고 케이시는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납치되어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감금당합니다. 그들을 납치한 정체불명의 남자 ‘케빈’은 어릴 적 어머니의 학대로 인해 23명의 인격으로 분열된 ‘해리성 정체성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환자로 밝혀집니다. 과연 소녀들을 납치한 사람은 케빈의 23명의 인격들 중 누구이며 대체 무슨 이유로 소녀들을 납치한 것일까요?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24번째의 인격 ‘비스트’는 실존하는 걸까요? 

 

사진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사진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해리성 정체성 장애’란?

 

과거에 ‘다중인격’이라 불리던 ‘해리성 정체성 장애’는 한 몸에 둘 또는 그 이상의 각기 구별되는 주체성이나 인격 상태가 존재하며 각각의 인격이 반복적으로 개인의 행동을 통제하는 매우 희귀하고 특이한 정신질환입니다. 질환의 극적인 특징 때문에 ‘지킬박사와 하이드’ 로부터 최근 지성 주연의 드라마 ‘킬미 힐미’에 이르기까지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의 매체로부터 매우 사랑받는 소재이기도 합니다. 

 

사진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놀라운 점은 위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납치, 강간, 강도 행각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해리성 정체성 장애’를 앓고 있는 점이 인정되어 법정에서 무죄 판결된 ‘빌리 밀리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렸을적 양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면서 여러 명의 인격을 가지게 된 점, 각각의 인격이 서로 다른 성격은 물론이며 지적능력과 근력마저 다르다는 점, 그리고 최후에 24번째의 새로운 인격이 나타난 점 등 많은 부분에서 영화 속 ‘케빈’과 현실의 ‘빌리’는 닮아있습니다. 

 

유아기의 심각한 외상적 사건과 마음의 분열

 

사진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해리성 정체성 장애의 유병률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매우 낮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어떠한 정신의학자들은 해리성 정체성 장애라는 질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도 합니다. 실제로 빌리 밀리건이 무죄 판결을 받을 당시에도 그가 실제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인지, 아니면 뛰어난 연기력으로 모두를 속인 희대의 사기꾼인지에 대하여 매우 큰 논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꼭 해리성 정체성 장애와 같은 극적인 형태가 아니더라도 분열과 통합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유아의 정신발달 과정에 있어서 유아는 ‘내재화’라는 과정을 통하여 세상과 관계하게 됩니다. 여기서 ‘내재화’라는 것은 유아가 자신이 경험한 세상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말합니다. 유아가 외부 세계의 공포와 불안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강한 우울감과 불안, 죄책감과 공포 등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은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고 극복하면서부터 세상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통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반면, 케빈이나 빌리 밀리건 처럼 강렬한 외상적 경험, 즉 성적 육체적 학대를 당한 경우 유아는 세상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통합하여 구성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아이는 전체적 세상과 신뢰관계를 맺는데 실패하고 만성적인 불안과 죄책감, 심할 경우 스스로와 세상을 연속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못하는 ‘해리’ 증상을 겪게 됩니다. 

 

가해자가 된 피해자 ‘비스트’, 통합되지 못한 악의 폭주

 

사진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납치당한 세 명의 소녀 중 한명인 케이시는 케빈과 함께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또다른 주인공입니다. 케이시도 케빈처럼 유아기에 삼촌으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으며 지금도 가해자인 삼촌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비록 그녀는 케빈처럼 여러 명의 인격으로 분열되지는 않았으나 항상 어두워 보이고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등 세상과의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사진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사진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감독은 의도적으로 어렸을 적 케빈이 당했던 학대와 케이시가 당했던 학대를 병렬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케빈이 어렸을 적 당했던 학대를 이겨내지 못하고 피해자에서 또 다른 가해자, 즉 ‘비스트’로 진화하는 후반부에 절정을 향해 달려갑니다. 케이시에게 달려드는 괴기스럽고 무시무시한 모습의 ‘비스트’는 짐승을 흉내내는 삼촌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던 그녀의 트라우마를 현실에서 재현합니다. 그리고 케이시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야수’에게 맞서기 시작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해리 증상, 그리고 분열증상은 한 개인이 전체적인 세상과 신뢰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운 상황일 때 나타납니다. 그리고 종종 분열된 자아와 세상과의 만남은 영화에서처럼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를 소재로 한 많은 영화와 소설에서는 분열된 인간의 마음 중 ‘악’이나 ‘본능’을 담당하는 자아가 ‘선’과 ‘이성’을 담당하는 자아에게서 주도권을 빼앗고 폭주하는 장면이 나오곤 합니다. 그렇다면 왜 항상 통합되지 못한 자아는 비극을 초래하는 걸까요?

 

정신의학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자아의 통합은 내재화된 공격성을 제어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은 필연적으로 양면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은 세상을 경험해 나가면서 불가피하게 ‘선’과 ‘악’, ‘감사’와 ‘증오’, ‘깨끗함’과 ‘더러움’ 등의 양면성을 번갈아가며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은 이러한 경험을 통합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 안의 우울, 파괴적 본능, 공포를 극복해나가는 법을 배웁니다. 같은 ‘학대’라는 경험을 겪고도 자신의 공격성을 제어할 줄 아는 케이시와 달리 케빈은 자신이 겪은 학대로 생겨난 증오와 공포를 세상으로 투사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케빈은 자신의 유일한 이해자이자 브레이크 역할을 해주었던 플레쳐 박사를 살해하고 ‘학대당하지 않은 자’, 즉 자신을 제외한 세상 전부를 증오하는 절대악 ‘비스트’로 거듭나게 됩니다.

 

오늘도 일어나는 당신 안의 전쟁

 

사진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영화 23 아이덴티티는 선과 악 양쪽의 상반된 내적 경험을 통합하지 못한 자아의 폭주를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꼭 영화에서처럼 극적인 형태가 아니더라도 오늘날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경험하면서 내재화된 우울감, 공포, 증오심 등의 ‘비스트’를 통제하지 못하고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합니다. 만일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마음 한구석에 섬짓함과 찜찜함을 느꼈다면 야수가 되어버린 케빈의 상처받은 자아와 이에 대항하는 한 명의 여린 소녀의 사투에서 힘겹게 하루 하루를 보내며 상처를 주고받는 우리들 마음 속의 고군 분투를 엿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받아들이기 힘든 세상이 우리를 분열시키는데 맞서서 끊임없이 이를 통합하려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감당하기 힘든 세상의 스트레스를 안고 얼굴로는 웃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울고 있는 당신, 지금 당신의 마음은 분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글은 2017년 5월 12일 식품의약 안전처 웹진 ‘열린마루’에 실린 글입니다.)

 

글_권순재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권순재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 내면에 자리한 다양한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치매환자를 위한 다양한 연구 등을 진행하며 사람들의 삶의 변화와 마음의 변화 사이의 연관성을 찾는 노력을 하고 있다.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wanderage@naver.com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인터넷신문윤리강령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정신건강연구소  |  정신의학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03874  |  등록일자 : 2015년 8월 25일  |  발행·편집인: 박소연
서울 종로구 옥인동 자하문로 17길 보광빌딩 12-10  |  대표전화 : 070-7557-9104  |  팩스 : 02-320-60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선우
Copyright © 2019 정신의학신문-의사들이 직접 쓰는 정신 & 건강 뉴스.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 Back to Bot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