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현정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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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불면증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때문이라구요?"

 

수진 씨는 미심쩍은 얼굴로 되물었다. 

수진 씨는 10대 초반에 ADHD를 진단받았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함, 자주 멍 때리는 등의 증상으로 1-2년 치료받았고, 증상은 계속 있었지만 어쩌다 보니 흐지부지 치료를 중단한 케이스였다. 그러던 그녀가 오랜만에 정신건강의학과를 다시 방문하게 된 이유는 ‘불면증’ 때문이었다. 잠에 들기가 어렵고 특히 낮-밤이 뒤바뀌어 있는 것을 되돌리기가 어렵다고 했다. 

 

수진 씨의 하루를 함께 되짚어 보았다. 

수진 씨는 직장인의 생활 패턴이 ‘올빼미족’인 자신과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밤에 잠이 안 오고 깊은 잠을 잘 못 자서인지 아침에 몸을 일으키기가 너무 힘들고 그러다 보니 지각을 하는 날도 간혹 있었다. 출근해서 일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는 차라리 나은데, 좀 한가하거나 일이 많지 않으면 계속 졸리고 하품이 나곤 했다. 밤에 잘 잔 것 같은 날도 낮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느낌은 비슷하다고 했다. 수진 씨는 낮 동안 이렇게 맥을 못 추다가 퇴근시간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각성되고 활력이 생겼다. 정신이 더 깨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종종 과제를 미뤄두었다가 전날 밤을 새서 끝내는 것도 어쩌면, 제출 기한이 코 앞으로 다가온 전날 밤이야 말로 집중이 최고로 잘 되는, 즉 효율이 최고인 시간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여러 날 동안 과제에 대해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싫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꼭 효율 때문만이 아니어도 수진 씨는 밤 시간을 좋아했다. 저녁 이후가 되면 세상이 조용해지고 차분한 느낌이 들어, 오롯이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다이어리를 쓰는 일도, 밀린 유튜브 영상을 보는 일도, 좋아하는 웹툰을 보는 것도 이 시간이었다. 잠에 들기가 아까웠다. 그러다 보니 보통 새벽 2, 3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게 되었고, 피곤한 데도 잠은 바로 오지 않아 결국 한 시간 이상 뒤척이다가, 짧은 잠을 자고 출근 시간에 간신히 몸을 일으키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불면증의 원인이 ADHD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ADHD로 진단된 분들이 일반인들에 비해 불면증이 훨씬 흔한 것은 사실입니다”

 

수진 씨는 자신의 수면 문제가 ADHD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ADHD를 겪는 많은 사람들이 수면 문제를 호소한다. ADHD가 각성계(arousal system, 정신이 깨고 잠드는 것을 조절하는 시스템)의 조절 기능 이상으로 주의력 문제와 과잉행동을 유발하기에, 수면 문제는 ADHD의 핵심 증상은 아니지만, 흔한 동반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수면-각성 영역 조절과 주의력 및 기분 조절에 관여하는 뇌 체계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으로 인해 수면 장애와 주의력 문제가 연관됨을 시사하는 증거도 있다. 수면(야간)과 주의/각성(주간)은 동일한 연속성의 양극단으로 볼 수 있다. 주간 주의력 및 각성 장애는 야간 수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각성계의 조절장애는 ADHD 환자가 충분한 각성과 깊은 수면에 이르지 못하게 하며, 낮이든 밤이든 반(半) 각성 상태에서만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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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ADHD인 경우 일반인에 비해 더 높은 수준의 야간 활동성을 보이며, 아래의 세 가지 범주 중 하나 이상에 속하는 수면 문제를 보고한다.

 

1.   잠들기 힘들다 – 잠이 들지 않고 깨어 있는 상태로 몇 시간 동안 누워 있는다.

2.   아침에 일어나기 어렵다 – 스스로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추진력이 부족하다.

3.   낮 동안 각성 상태를 유지하기 힘들다 – 특히 자극이 없을 때 졸린다. 

또, 저녁 시간에 완전히 깨서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일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등 자극적인 활동을 하며, 따라서 잠드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문제는 대개 밤에 일찍 잠들지 못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또 주의를 지속하는 것도 어렵지만, 자극적인 정신활동이나 신체활동을 하지 않으면 충분한 수준으로 각성을 유지하는 데도 장애가 있다. 계속 졸리고 하품을 하거나 강의나 회의 때 잠들어 버리기도 하는데, 밤에 충분한 잤는데도 그럴 수 있다. 

 

ADHD에 동반되는 수면 문제는 일반적인 수면 문제를 다룰 때와 마찬가지로 철저한 모니터링에서 시작된다. 수진 씨에게 수면 일지를 기록하도록 했다. 수면 일지에는 13가지 영역과 관련된 정보를 기록하게 되어있다.

1.  낮잠: 낮잠은 밤에 깊이 잠드는 것을 방해하고 낮-밤의 리듬을 깨뜨린다.

2.  카페인 섭취: 카페인은 섭취 후 소변으로 빠져나갈 때까지 최대 16시간 동안 체내에 남아있다. 따라서 오후에 마신 커피 한잔은 저녁 이후에 뚜렷한 효과는 사라지더라도 숙면을 방해한다.

3.  알코올 섭취: 잠들기 위한 ‘한잔 술’은 당장 잠들게 도와주지만, 수면 장애를 지속시킨다. 왜냐하면 술은 역설적으로 깊은 수면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4.  음식 섭취: 단백질 함량이 높거나 당분이 많은 음식은 소화기관을 오랫동안 활성화시키며, 각성 수준을 높인다.

5.  약물: ADHD 치료제 중에는 아침에 복용하는 것을 잊었다고, 오후에 복용하면 잠드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6.  기분 상태: 강한 행복, 흥분, 슬픔, 스트레스, 불안은 모두 수면을 방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강한 감정상태가 불면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감정 상태를 기록한다. 

7.  취침 전 활동: 취침 전에는 활동성을 떨어뜨려 잠을 잘 시간이 되었다는 신호를 몸에 주어야 하는데, 격렬한 운동이나 정신적으로 자극되는 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대화를 하게 되면 수면을 방해한다. 그동안 ADHD로 인해 온종일 분주하거나 저녁시간에 더욱 활동적으로 살아왔다면, 이제 취침 전에는 차분하고 긴장을 푸는 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

8.  취침 시간: 잠이 들고 깨는 시간을 기록한다. 비교적 일정한 시간에 잠들고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하다 보면, 점차 그 시간이 되면 몸이 졸려하면서 잠드는데 걸리는 시간이 줄어든다.

9.  입면 시간: 실제로 얼마 동안 잤는지 적어 보는 것이다. 정확히는 아니더라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불면증이 있는 경우 대개 잠든 시간이 얼마 안 된다고 표현하면서 더욱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처럼 기록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10.  밤 사이 깨는 횟수와 시간: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스마트폰, TV, 게임을 한 회수와 시간을 기록한다.

11.  아침 기상 시간: 아침에 대개 몇 시에 일어나며, 얼마나 일어나기 힘들었는지, 눈을 뜨고 얼마나 누워있었는지 기록한다.

12.  총 수면 시간: 수면의 좋고 나쁨을 양적으로 유용하게 비교할 수 있다. 

13.  수면의 질:  0점(최악)~ 10점(매우 편안하고 상쾌한 아침) 척도로 매일 수면의 질을 평가하여 개선 여부를 파악하는 것을 돕는다.

 

수진 씨의 경우 낮에 잠을 쫓기 위해 점심시간을 쪼개서 낮잠을 자는 일이 종종 있었으며 커피를 제일 큰 사이즈로 두세 잔을 연거푸 마시는 것이 잠드는 시간을 늦추고 깊은 잠을 자는 것을 방해했다. 하지만 수진 씨의 수면 시간과 질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은, 1) 평소 저녁 늦게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는 습관, 2)해야 할 업무를 계속 미루면서 느끼는 불안, 3) 막바지에 밤을 새우는 등 불규칙한 수면습관으로 판단되었다. 

이처럼 불면증에는 심리, 행동, 환경, 생물학적 요인을 포함하여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수진 씨는 현재 적절한 수면 전략과 행동 변화를 통해 ADHD에 동반된 수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참고문헌

Owens JA (2005). The ADHD and sleep conundrum: a review. Journal of Developmental & Behavioral Pediatrics, 26(4), 312-322.

Brown TE, & McMullen Jr WJ (2001). Attention deficit disorders and sleep/arousal disturbance. Annals of the New York Academy of Sciences, 931(1), 271-286.

Susan Y(2012). 청소년 및 성인을 위한 ADHD의 인지행동치료. 시그마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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