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빛나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학생입니다.

오늘도 저의 문제점을 느끼고 너무 속상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던 중 이곳을 알게 되어 조심스럽게 적어봅니다

저는 제 속마음을 말하는 게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돼서 고민입니다 평소에 감정 표현을 하는 것도 잘 못하는 편이고 그 마저도 말하는 게 힘들어서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이 부분이 힘들 때는 다른 사람과 싸우거나 얘기를 하는 과정에 있어서 속으로는 할 말을 다 하고 있는데 그 말들이 절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요..

그냥 한 번 뱉어보자 할 수 있다 수백 번 다짐해도 상대방이 보는 저는 입을 꾹 다문채 울고만 있는 상태입니다

아예 말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제 속마음을 얘기하는 게 도저히 안돼요 심리치료를 해봐야 할까요? 너무 힘듭니다

 

근데 특이한 점은 얼굴을 보지 않고 하는 문자 같은 텍스트로는 그나마 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얼굴 보고 말로 표현하는 게 힘든 것이죠, 뭐 때문에 이러는 걸까요

이게 언제부터 이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꽤나 오래됐고,

어렸을 때 제가 부모님께 무언가를 얘기했을 때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나중에 아니면 부정의 대답이어서 그때부터 조금씩 말을 안 하게 된 거 같은데 그게 감정, 속마음 표출까지 이어진 것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에게 얘기하는 게 두렵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그 상황에서 입이 막힌 것처럼 말이 튀어나오지 않아요 노력해도 안돼요

너무 같은 문제로 두서없이 적어낸 것 같은데 어떻게 표현을 해야 될지 모르겠어서 느끼는 대로 적었습니다..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빛나래입니다.

올려주신 사연을 잘 읽어 보았습니다.

일단은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분들이 굉장히 많다는 말씀을 드리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감정을 인지해서 적절하게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과 잘 주고받는 것은 모든 어른의 과제이기 때문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참 중요한 사연을 올려주신 것 같아요. 지금의 문제에 대해 남 탓을 하거나 도피하기보다 좋아질 방법을 이렇게 찾으시는 것 또한 큰 용기라고 생각됩니다.

사연을 보면, 속마음을 말하기에 정확히 무엇이 두려운지는 찾기 어려워하시는 게 느껴져요. 그 상태에서 그냥 입이 막혀 안 열리는 듯한, 하나의 '생리적 반응'으로 경험하시는 것 같아요. 내가 왜 이러는지도 모르겠는 상태에서 비슷한 경험이 반복된다면 누구나 상당히 답답할 거예요.

또한 본인의 특성에 대한 속상함 뿐 아니라, 관계 문제에 대한 고민도 함께 있으실 것 같아요. 친구나 연인, 선후배 등의 주변 사람들이 나를 답답해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 더 움츠러들고 말하기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사연자님은 이 특성이 어떤 경험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고민을 많이 해보신 것 같아요.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표현했을 때 부모님이 반응을 미루거나 부정적이라고 하셨는데, 그런 부분이 얼마나 반복됐을지, 얼마나 중요한 상황에서도 그러셨을지는 아직 알 수 없어요. 혹시라도 부모님의 반응이 항상 벌 받는 느낌이나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면, 사연자님이 그런 상황에서 무력감이나 수치심을 반복 경험했을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예상됩니다.

감정을 표현했더니 오히려 거절을 당하는 경험에서, 아이는 이것이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 속마음의 표현 자체가 위험한 것이라는 관점이 자리 잡을 수 있고요. 자기 자신에 대한, 남들과의 관계나 세상에 대한 관점과 틀, 이것을 스키마(schema)라 불러요. 우리 개개인은 어떤 상황마다 이렇게 형성된 스키마로 인해 나름의 패턴으로 반응을 해요. 이러한 반응에는 감정과 행동뿐만 아니라 생리적 변화도 포함되는데, 사연자님이 면대면으로 속마음을 얘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입이 막히고 얼어붙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 여기에 해당될지도 모르겠어요.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치료 과정에서 대략 어떤 것들을 다루게 되는지 말씀드려 볼까 해요. 진료실이라 생각하면 다음의 질문으로 시작했을 것 같아요.

 

"얼굴을 마주하고 속마음을 용기 내어 표현했지만 받아들여 지기는커녕 오히려 상처만 되었던 경험이 있으실까요?"

 

먼저 과거의 경험을 정리하고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부모님과의 소통 중 경험한 중요한 사건이나 장면, 학창 시절의 다른 경험들도 찾아볼 수 있어요. 몇 번의 커다란 경험만 우리를 상처 받게 하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서 비슷한 경험이 자꾸만 반복되는 경우에도 깊은 무력감을 느끼게 되니까요.

말로 표현하기 어렵게 하는 패턴과 생각을 찾는 것도 필요합니다. 최근의 경험과 상황, 이에 대한 나의 반응을 치료 현장에서 공유하고 다루는 과정이에요. 지금은 생리적 반응과 느낌일 뿐이지만, 대면한 상대방의 반응이나 그로 인한 또 다른 결과에 대해 어떠한 '자동적 사고'가 스쳐 지나가는지를 함께 찾게 돼요. 보통 발견되는 자동적 사고에는, 나를 안 좋게 볼 것 같다거나 관계가 멀어질 것이라는 생각 등이 있어요.

 

치료 과정에서는 약점만 찾는 것이 아니라 강점도 찾아야 해요.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순기능적인 부분, 내가 나를 보완해온 과정과 같은 것들입니다. 과거의 잘 해온 경험을 어린 시절부터 차근차근 돌아볼 필요가 있고, 그게 하나만 있어도, 부분적이어도 상관없어요. 사연자님의 경우, 평소에도 글로는 표현하려고 노력하시는 것을 보면, 우선 속마음을 스스로 정리하는 능력이 있으시다고 볼 수 있어요. 말로 하기 어려울 때 글로 전달을 하는 것은 엄연히 우리가 쓰고 있는 하나의 소통 방법이죠.

다음은 연습을 하는 과정에 대해 말씀드려 볼게요. 연습은 쉬운 것부터, 단계를 쪼개고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단 상담 치료를 받는 것 자체가 하나의 연습이 될 거예요. 그 시간만큼이라도 온전히 자신의 표현을 해보는 연습 말이죠. 그다음의 목표는 치료 현장에서 그때그때 정해야 하겠지만, 우선 상점 같은 곳에서 불편 사항을 표현해보는 간단한 시도부터 해볼 수 있습니다. 친구나 선후배들과의 소통은 아마도 치료기간 내내 꾸준히 다루어야 할 주제이고요. 연인과의 소통과 상호작용은 누구에게나 상당히 어려운 것에 속합니다. 사연자님께는 부모님도 어려운 대상일 것 같아요. 끝판왕부터 하진 마시고 차근차근 튜토리얼부터 해본다는 생각이 중요해요.

연습을 하다 보면 중간중간 고비가 오며 또 다른 주제들이 생기게 됩니다. 친구나 연인, 동료나 선후배, 나중에는 직장과 관련된 다양한 관계가 있으니까요.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위에 말씀드린 악순환이 되는 상황도 꾸준히 다뤄줘야 할 주제입니다. 그러다 보면, 섣불리 이야기하기는 조심스럽지만, 무의식적인 선택의 문제까지도 살펴봐야 할 수도 있어요. 내 주장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사람을 나도 모르게 선택하는 문제도 있는데, 이건 치료 과정이 웬만큼 진행되고 나서 다룰 수 있습니다.

 

변화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변화하는 건 가능해요. 많은 경우에 부모님들도 그냥 나름의 문제를 가진 인간이에요. 다만 그때의 나에게는 세상의 전부였고 너무나 중요했던 존재였던 거죠. 지금 갖고 계시는 문제는 나의 건강한 부분을 활용하여 보완하면 변화가 일어날 수 있어요. 다만 이 모든 과정을 혼자 하는 것은 어려운 것 같아요. 삶을 되짚고 문제를 찾아 고치는 과정은 당연히 괴로울 수 있어요. 사연을 올려주신 것에 이어 치료에 대한 용기를 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