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바람이 서늘해지면 외출하기도 편하고 몸과 마음도 그만큼 편안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해가 나는 시간이 짧아지고 밤 기온도 급격히 떨어지면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을을 탄다고 하죠. 햇볕을 충분히 쪼이지 못하면 자고 깨는 신체리듬도 방해를 받고 비타민D의 합성도 줄어듭니다. 낮에 해를 충분히 쬐어야 수면을 촉진하는 멜라토닌도 잘 생성되고 깊은 꿀잠을 자는데 일조량이 줄어드니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은 길어졌는데 기운은 잘 회복되지 않습니다. 비타민D가 부족하면 도파민, 세로토닌 등의 신경전달물질 분비가 부족해져서 즐거움, 안정감을 느끼기 힘들어집니다. 이 결과로 의욕이 줄어들고 몸은 무거워지면서 졸리고 단것만 찾게 되는 계절성 우울증에 걸리기도 합니다.

몸과 마음은 따로따로가 아닙니다. 감기만 걸려도 자신감이 떨어지고, 기침하느라 잠을 설친 날에는 기분도 엉망이고 집중도 어렵습니다. 반대로 스트레스가 심할 때 질병에 취약해지기도 합니다. 질병이 아니더라도 생리, 임신, 갱년기 등 신체 변화를 겪는 시기에 마음 상태도 영향을 받습니다. 계절 변화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아침 혹은 낮에 밝은 빛에 노출이 되는 것이 좋습니다. 강한 청색광으로 빛 자극을 주는 광선치료기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번거롭다면 해가 많이 나는 시간에 야외에서 햇빛에 몸을 노출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요. 무선 이어폰으로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며 걷고 싶은 곳을 약간 빠르게 걸으면 몸의 활력도 높이고 기분도 좋아질 것입니다. 햇빛에 노출해서 생활리듬도 유지하고 비타민D 합성의 기회를 만드는 것이지요. 신경전달물질의 연료가 될 건강한 식단으로 규칙적인 식사를 하고, 온도 변화로부터 신체를 보호할 수 있게 얇은 옷을 여러 벌 겹쳐 있고 체온을 조절한다면 계절성 우울증에 좋은 예방책이 될 것입니다. 물론 우울감이 너무 심하다면 약물치료와 상담이 추가되어야겠지요. 반대로 기분을 풀겠다며 술, 담배 등의 물질에 의존한다면 상황은 더 나빠질 것입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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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조량이 줄고 기온이 떨어지면서 이런 변화가 생기지만 생활환경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는 습한 우리나라의 열대야에 시달리는 여름이 불쾌감으로 더 힘들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자살률이 봄에 증가하는 통계도 있습니다. 학자들은 겨울에 우울증으로 힘들었던 사람들이 일조량도 늘고 기온도 높아지면서 조금씩 회복하지만 완전하게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전에는 기력조차 없어 실행하지 못했던 자살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어느 경우든 잘 자고, 잘 먹고, 규칙적으로 활동하고,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기본이 됩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혼란스럽더라도 나를 튼튼하게 하는 행동은 할 수 있습니다. 튼튼해진 개인이 되어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의견도 내고 행동도 하면 더 좋겠지요.

가을, 겨울에 느끼는 변화를 연구자들이 밝힌 신체의 변화로 설명을 드렸지만 우리나라 학교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졸업, 취업과 관련된 압박감이 늘어나는 시기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나라가 가을에 신학기를 시작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만 봄에 시작합니다. 새 해를 1월에 시작하고 새 학년을 9월에 시작하는 대부분의 나라와 달리 10월, 11월에 한 해의 모든 결실을 맺어야 하는 압박감을 더 크게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과 신체변화가 맞물려 몸은 잘 움직여지지 않는데 해내야 할 일이 많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요. 학생들만큼은 아니지만 직장인들도 12월의 평가가 유사한 압박감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저희 상담실의 접수는 2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사이에 가장 많이 몰려 대기가 더 길어지기도 합니다. 응급실 방문이 필요한 위급한 일들도 이 시기에 더 자주 발생합니다.

사실 시험이나 평가가 특정 시기에 있는 바람에 그때서야 문제가 더 도드라졌을 뿐 갑자기 시작된 일이 아닙니다. 평상시에 내게 주어진 삶이란 시간 속에서 어떤 가치들을 목표로,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생각과 느낌으로 살아갈지, 누구와 이것을 나누며 살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일상에 적용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운동처럼 글로 아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자주 실행해야 합니다. 누군가와 연결되는 느낌이 필요하면 바빠서 못 만났던 오랜 친구에게 연락을 해봅시다. 잘 해내고 싶은 입시나 면접이 있다면 함께 준비하는 동료들과 열심히 준비하며 서로를 응원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 동료들과 기상과 수면시간을 서로 챙기고 식후에 함께 밝은 야외에서 산책을 하며 시험 준비와 관련된 수다를 떠는 것도 좋겠네요. 상황과 계절에 맞추어 내게 필요한 것들을 찾아보고 행동으로 옮겨보시기 바랍니다.

 

<본 칼럼은 부산은행 사외보 2021년 10월호에 ‘계절이 바뀌며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저서 <마음은 단단하게 인생은 유연하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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