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사당 숲 정신과, 최강록 전문의] 

 

사연)

A씨는 저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알고 지낸지는 9년째이며 개인적인 일까지 다 얘기하며 지냈고 개인적으로는 부모님보다 더 많이 상의도 했습니다. 졸업은 제가 먼저 했지만 저의 건강상의 문제로 A씨가 먼저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A씨는 집안 배경과 환경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 한번 한 적이 없습니다.

편하게 결혼생활을 풍족하게 유지하면서 자녀 양육, 시댁, 친정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으며 편하게 일과 학업을 병행했던 이유가 컸습니다.

그분과는 9년 동안 같은 분야에서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이입니다.

저와 그분의 상사이자 주요 책임자(교수, 공무원, 유관 기관)들 앞에서는 친한 척을 하다가 제가 없을 때는 뒷담화를 하며 제 실적, 저의 가정환경, 사소한 일들까지 다 말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저의 승진과 재계약 문제를 앞두고 주요 책임자들을 찾아뵙는 데마다 'A씨가 그런 말을 했구나'라는 게 느껴지는 내용의 저의 개인적인 상황들을 주요 책임자들이 다 알고 있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A씨는 계약을 연장, 연봉 협상 중인 상태이고, 저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마 대기 상태일 듯합니다.

 

제가 하지 않은 말, 행동, 저의 개인적인 상황들을 왜 A씨는 말하고 다니는지,

주요 책임자들은 A씨가 하는 말을 믿지 않으면 되는데 왜 믿는지 제가 주요 책임자들에게 신뢰가 없는 행동이나 말을 한적은 없습니다. 타지에서 다른 일만 하다가 1년 만에 주요 책임자들을 만났는데 무슨 행동, 말을 했겠습니까.

주요 책임자들이 저에 대해 묻지도 않는데, 무슨 이유 때문에 제 얘기를 하고 다니는지 물어봐야 할까요?

A씨는 제 앞에서는 친한 척, 자신이 뭔가 필요한 게 있을 때는 전화, 문자, 카톡을 다 동원해서 연락합니다.

A씨는 저보다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직업적으로도 안정적인데 왜 저한테 그렇게 질투를 하고 사람들에게 험담을 할까요?

제가 어떻게 대처를 하면 될까요?

대처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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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사당숲 최강록입니다.

직장 내 대인관계에 대한 고민을 남겨주셨네요 사연자님은 A씨와 9년 동안 알고 지냈고, 부모님보다 더 많이 상의한 대상이라고 하셨습니다. 9년이면 나름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사연을 읽으며 A씨와 사연자님이 정말 친밀한 관계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알고 지낸 시간과 실제 관계의 질(Quaility)은 꼭 비례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맺는 관계의 질이 좋다면 서로 깊이 있는 소통이 오갈 수 있고, 신뢰를 바탕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공유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갈등이 생길 때, 이를 원활하게 대화로 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 교류가 있더라도, 정작 그 사람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연을 보면 알고 지낸 시간에 비해 관계가 상당히 얕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A씨와 맺은 관계의 질이 어떠한지 사연자님께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여러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1. 사연자님이 A씨에게 상의를 주로 했다고 하셨습니다. 대화할 때 주로 들어주는 사람은 A씨였을까요? A씨는 사연자님에게 고민을 이야기하거나 솔직한 속내를 말한 적은 있었을까요?

2. 두 사람 사이에 갈등 요소나 잘 맞지 않는 특성들은 어떤 것이 있었나요?

3. A와 의사소통할 때 좋은 점과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4. A씨에 대해 9년간 느껴왔던 감정은 무엇이고, 최근 사건으로 인해 사연자님이 느낀 감정은 무엇인가요?

이렇게 두 분의 의사소통 방식과 관계의 질적인 수준을 한 번 정리해보셨으면 합니다.

 

특히 마지막 질문이 가장 중요합니다. A씨의 행동에 대해 사연자님이 어떤 감정을 느끼셨는지 글에서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상처를 많이 받았는지, 배신감이 큰지, 그럴 줄 알았다는 어이없는 감정인지 구체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감정을 토대로 두 분 관계의 질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두 분 관계가 질이 낮았다면, 사연자님은 A와 알고 지낸 세월을 다 리셋하시기 바랍니다. A에 대해서 정말 제대로는 몰랐던 겁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실제 어떤 사람인지, 이제부터 새롭게 알아가면 됩니다. 사연자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특정 누군가에게 한 게 맞는지 사실 확인을 해보세요. 잘 알지 못하는 직장 동료라고 생각하시고, 사무적으로 대화를 풀어나가면 되겠습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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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전달되는 과정에서 쉽게 왜곡될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이 자기 이야기를 A에게 말했을 때 비밀이라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당부를 따로 한 것이 아니고, 또 A씨가 만약 남의 이야기를 가볍게 화제에 올려도 별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사연자님 이야기를 별생각 없이 퍼뜨릴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께서 ‘A씨는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직업적으로 안정적인데 왜 그렇게 질투하고 험담을 하냐’ 물어보셨는데요. 타인의 이야기를 허락 없이 말하고 다니는 사람의 특성들은 그 사람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와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사연자님의 추측대로 A씨가 질투심이나 열등감 등 개인적 특성이 뚜렷해서 사연자님을 깎아내렸는지도 모릅니다.

모든 건 다 가설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A씨가 어떤 사람이기에 뒷담화를 하고 다니는지는 직접적으로 물어보고 충분히 대화하면서 알게 되실 겁니다.

 

대화의 흐름은 다음과 같이 이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먼저, ‘사실 확인’입니다. 예를 들면 ‘모 책임자들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제가 당신에게만 했던 이야기를 그분들이 알고 있더라. 혹시 제 이야기를 전한 적이 있느냐’

이러한 내용이 되겠지요.

 

두 번째는 ‘입장 전달’입니다.

‘당신에게만 했던 저의 사적인 이야기가 공적인 자리에서 제삼자의 입에서 들려오니

이러이러한 생각과 감정이 들었다. 당신이 어떤 의도인지는 지금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제 이야기를 직장 사람들에게 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감정은 당황스러웠다, 불쾌했다, 화가 났다 등 구체적으로 표현해주세요. 만일 관계의 질이 높았던 친밀한 사이라면 상처 받은 마음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해주세요.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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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요청하기’입니다.

‘앞으로는 다른 직장 동료나 상사에게 구체적으로 이러이러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 달라.’ 여기서 요청할 때는 ‘제 이야기를 하지 말아 달라’는 뭉뚱그린 표현은 지양해야 합니다. 타인에게는 사연자님의 이야기를 얼마든지 화두로 올릴 자유가 있습니다. 사연자님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A씨가 전해준 이야기를 필터링하지 않고 수용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A의 이야기를 믿지 않으면 되는데, 왜 믿을까요?’ 이렇게 물어보셨는데요. 이유를 찾아보면, 사실은 없습니다. 딱히 A의 이야기를 안 믿을 이유가 없다면 그냥 믿는 겁니다.

 

뒷담화라는 것이 전부 나쁜 의도가 담겨있진 않습니다. 뒷담화라는 의미 그대로 그저 단순하게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나오는 당사자 이야기’에 불과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뒷담화를 개인을 향한 공격으로 해석하거나 평판이 떨어질 것을 미리 염려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가장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은 사연자님을 앞에 두고 실제로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니까요. 단, 지나치게 사적이어서 밝히고 싶지 않은 부분은 앞으로 더 화제로 나오는 일이 없도록 A씨에게 그 내용을 알려주고 명확히 경고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른 사람들하고 대화 중에 A에게만 했던 내 이야기가 또 등장한다면,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말고 A에 대해 언급해주세요.

이를테면‘그 이야기 혹시 어디서 들으셨냐, A에게만 말했던 이야기다.’ 이렇게 말해두면, A가 말을 옮기고 다니는 행동에 대해서 집단 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게 됩니다. 그 후 A가 말조심을 하게 될 수도 있고요. 어쨌든 사연자님의 곤란한 상황을 여러 사람이 알도록 공유하는 것도 어느 정도 필요한 사내 정치가 아닐까 합니다. 사연자님께서 지금의 어려운 상황에 대처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불편한 대인관계 문제가 잘 해결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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