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공황’은 최근 십 년 사이 흔한 의학 용어가 되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본 외국 영화에는 공포에 질린 주인공이 숨쉬기 힘들어하거나 사람이 많은 곳을 가지 못하는 장면들이 나왔습니다. 한국 영화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장면이어서 서양 사람들만 겪는 문제인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국내에서도 많은 유명인들이 방송에서 자신이 경험한 공황 증상을 이야기해서 유행병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덕분에 국민들이 정신과를 방문하기 어려워하는 문턱이 낮아졌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제로 공황발작은 매우 흔해서 5~10%가 일생을 통해 적어도 한 번 경험한다고 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이 극심한 공포와 함께 심장이 쿵쾅거리고, 숨이 쉬어지지 않으면서, 몸이 이상해지는 느낌이 30분 정도 지속되다 끝나면 죽다 살아난 느낌이 듭니다. 이것이 한 번의 공황발작으로 끝나지 않고 반복되면, 갑자기 발작이 오면 어쩌나 불안해지며 삶이 바뀝니다. 이를 공황장애라고 합니다. 광장공포증은 ‘광장’과는 관계없이 도움을 받기 어려울 것 같은 장소를 피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집과 같이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 아닌 경우 불안해진다면 광장공포증입니다. 대중교통처럼 모르는 사람만 많고 중간에 내 마음대로 내리기 어려운 경우가 흔한 예시입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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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발작을 처음 겪으면 놀라서 응급실을 찾기도 합니다. 심장마비인 것 같다고 찾아온 환자가 여러 검사로 확인이 되면, 심장이 괜찮다고 알려주고 산소가 부족한 것이 아니니 과호흡을 하지 말라고 안심시키는 것이 응급실에서 해주는 처치였습니다. 환자는 몸에 문제가 없어 다행이라 생각하려 노력하지만, 공황발작이 재발하면 다시 응급실을 찾게 됩니다. 환자는 힘들어하고 부족한 응급실 자원이 낭비되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응급실에서 정신과 치료로 연결시키는 과정이 만들어졌습니다. 몸이 이상해서 응급실에 왔는데 정신과를 가라니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이해가 됩니다. 공황발작이 꼭 내가 정신적으로 힘든 순간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갑질 손님에 대응하느라,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스트레스받았던 순간에는 괜찮았는데, 집에서 편하게 소파에 앉아있을 때 갑자기 가슴이 아프고 숨이 막혔는데 불안 때문이라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갈비뼈가 부러져서 가슴팍에 통증이 생긴 것이라고 하면 받아들이기 쉬운데 뇌가 원인이라니요.

 

뇌는 다른 장기보다 복잡하기 때문에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센서에 오류가 생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물은 살아남기 위해 위험을 감지하면 빠른 호흡과 심박동으로 산소와 에너지를 팔, 다리 근육으로 보내 싸우거나 도망가야 합니다. 적이 어디서 오는지 신경을 곤두세우는 대신, 소화나 휴식을 위한 기능은 잠시 억제합니다. 이런 응급용 전시 상황 태세가 잠깐으로 끝나면 괜찮은데 과도하게 지속되면 몸이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센서가 차라리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센서가 둔감한 동물은 호랑이와 같은 천적에 잡아 먹혀 자손을 남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너무 민감한 적을 너무 신경 쓰다 먹이를 충분히 먹지 못했을 것입니다. 적당한 정도로 민감도를 갖도록 진화되었겠지만 복잡한 현대 사회에는 역부족일지도 모릅니다. 점점 약해졌든, 갑자기 망가졌든 오류가 생긴 센서에서 위험신호를 온몸에 보내면 몸이 이상해지고, 이상해진 몸 때문에 불안해지는 악순환으로 공황발작이 발생합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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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생활에 지장이 생기면 우울증도 함께 옵니다. 공포도 힘든데 무기력하고 우울해지면 자살 생각으로 힘들 수 있습니다. 죽을 것 같다는 공황발작 자체로는 죽지 않지만, 자살로 인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알코올의 일시적인 진정 효과 때문에 중독에 빠지기도 합니다. 일회성 공황발작은 괜찮지만 계속 불안하고 평소에 하던 일을 못 하게 된다면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지나치게 민감해진 뇌를 다스리기 위해 불안에 의한 신체 반응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너무 심하게 망가져서 내 몸의 작동 원리를 알아가는 훈련 자체가 어렵다면 약물치료를 함께 받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몸과 마음(뇌)의 연결을 이해하고 뇌를 건강하게 잘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스트레스 관리는 기본입니다. 수면부족과 카페인은 뇌를 자극할 수 있습니다. 술, 담배와 같이 뇌에 작용하는 물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면, 운동, 식사와 함께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는 건강의 기본입니다. 몸 건강을 위해 때로는 자세와 동작을 전문가에게 배우는 것처럼 정신건강도 너무 늦지 않게 도움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본 칼럼은 부산은행 사외보 2021년 4월호에 ‘갑자기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공포, 공황장애’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저서 <마음은 단단하게 인생은 유연하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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