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번 글에서는 다른 질병들과는 대조되는 정신질환의 속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제목 그대로 정신질환은 환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병으로 취급되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질병에 해당하는 증상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사회 도처에서 생활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정신과에서 질병으로 진단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그 질병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이 초래되어야 한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경우가 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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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조증을 포함한 조증(mania) 환자들은 주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밤에 잠을 자지 않거나 식사를 하지 않아도 에너지가 넘치고, 무슨 일에 건 의욕이 있으며 기분이 좋은 증상을 보인다. 마치 슈퍼맨 같지 않은가?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하지 않은 경우 일의 능률이 향상되고 예술가인 경우 영감이 떠오르는 등의 일이 있을 수 있다. 내가 본 환자들 중에서도 조증 에피소드를 겪는 도중 음 하나하나가 구분되고, 색 하나하나가 피부에 와닿는 경험을 한 환자가 있을 정도이다.

이렇다 보니 주변에서 다른 단점들을 서포트해줄 만한 상황이 된다면 경조증 환자 또한 진단되지 않고 오히려 사회에 기여가 될 만한 훌륭한 업적을 이루곤 한다. 질병이 상황에 따라 병이 아니게 된 경우라고 하겠다. 실제로 병이 개인의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부분보다 업적이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예술가가 밤에 잠도 잘 자지 않고 식음을 전폐하며 만든 작품이 계속 상을 수상하는 경우, 주변 사람들은 그가 짜증을 부리거나 난폭한 모습을 보여도 그저 그러려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질병의 특성은 또 다른 환자 군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대표적 질환 군이 바로 성격장애이다. 실제로 10가지 성격장애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도처에 존재하지만, 그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장애를 잘 이용하거나 이를 보완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조현성 성격장애 환자는 혼자 하는 일을 찾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연극성 성격장애 환자는 연기자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의존성 성격장애 환자는 자신을 이끌어 줄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면 온전히 맞춰주며 살 수 있다. 이는 성격장애의 단면적인 부분만을 기술한 것이지만, 임상에서는 실제로 많은 성격장애 환자들이 자신들의 성격을 놀랍도록 환경과 잘 융화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곤 한다.

이런 경우 해당 개인은 성격장애 환자가 아닌 그저 ‘그런 성격 성향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또한 성격장애 환자는 자신이 환자인 것에 대한 자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주변 환경과 지지체계가 있다면 병원조차 잘 방문하지 않는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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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경우로 한 사회 군에서는 정신적 질병 수준으로 인식되는 것이, 다른 사회 군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식인 부족에서는 당연시 여겨지는 식인 문화가 문명사회로 나왔을 때 카니발리즘이 되어 정신질환으로 인식되는 것이 대표적 예라고 하겠다.

또한 각 사회 군마다 존재하는 독특한 정신병적 문제도 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정신과 진단 체계인 DSM5에 정식 수록된 것은 아니지만, 정신과 교과서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우리 사회만의 정신질환인 화병 같은 것이 그 예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도 적극적으로 말하는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해서 화병의 존재가 거의 사라지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처럼 정신과 질병은 다른 과의 질병이 명확한 진단기준이 있는 것에 비해, 수치가 존재하는 질병은 기면증을 제외하곤 찾아보기 힘들다. 정신과에서 쓰이는 객관화된 심리 평가 도구들 또한 진단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보조도구일 뿐, 그러한 설문지들이 진단을 직접 내려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정신과 질병이 진단되기 위해서는 숙련된 전문가의 인문 사회학적 경험을 토대로 한 심층 면접이 필요하다.

흔히 사회적 보편 인식(common sense)을 가진 사람이 훌륭한 정신과 의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정신과 의사는 너무 괴짜여도 안되고 한 분야에 몰두해서도 안되며,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하고 경험이 많은 사람이어야 한다. 이처럼 되기 위해 글쓴이 또한 직, 간접적인 경험과 사회적, 인문학적, 과학적, 철학적 지식을 함양하기 위한 독서 및 컨텐츠 활용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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