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서원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020년 한 해의 가장 큰 화두는 COVID-19라는 데 대부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 전대미문의 감염병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미친 영향력은 막대했다. 2019년 12월이었나 20년 1월이었나, 우한에서 폐렴이 돌고 있단 기사를 처음 봤을 때에만 해도 ‘그래 봤자 폐렴인데 무슨 호들갑인가? 혹시 이 폐렴이 SARS나 MERS처럼 될까?’ 라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나의 생각을 비웃듯 2월 말 대구에서 확진자가 퍼지더니 3~4월을 거치며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어 버렸다.

사람들의 심리만 공포에 빠진 건 아닌 듯했다. 주가 지수 역시 공포에 빠졌다. 우리나라의 코스피뿐만 아니라 미국의 나스닥, 다우존스 등 모두 폭락을 겪었다. 처음엔 별 반 관심이 없었지만 나중에 지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이런 급락장에서도 대범하게 추가 매수를 한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이 V자 반등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벌었다는 것이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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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년간 부동산 시장이 급등하였고 무주택자인 나는 ‘벼락 거지’가 된 탓에 마음고생이 심한 상태였다. 이번 기회마저 놓치면 두 번 다시 나에겐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며 나도 주식투자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일단 잘 모르겠지만 삼성 전자는 망하지 않을 것 같으니 삼성전자를 소액 사보았다. 그리고 주식 투자를 하려면 무엇이든 알아야겠단 생각에 교보 문고 베스트 도서 목록에 들어가 주식 관련된 책들을 사서 보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책들을 읽고 나니 마치 엄청난 깨달음을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주식 투자를 해서 내가 정말 성공할 수도 있을 것 같단 확신이 들었다. 주식으로 대박 난 나의 모습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환자를 진료하는 것보다 주식이 더 재미있는 것 같았고 아침에 출근 후 주식 차트를 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차트를 보다 보니 내 마음도 요동쳤다. 비싸다 생각해서 안 샀던 종목이 하늘을 뚫고 올라가자 정말 속상했다. 지금이라도 사야겠단 생각이 들어 사기도 하였다. 그리고 가족과 이야기를 할 때도 주식 이야기만 하기 시작했고 아내가 ‘주식에만 너무 몰두하는 것 같다’고 걱정을 표시해도 내 마음만 모른단 생각에 짜증만 났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이 나에게 정신과 의사가 주식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유튜브 링크를 보내주었다. 뭔가 싶어서 봤더니 주식 투자를 하다가 근무 태만으로 봉직의 자리에서 잘리고 빚만 떠안았다는 자신의 경험담이었다. 처음엔 ‘이 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란 생각이 들었다가 계속 보다가 보니 내 모습이 그 의사에게서 보이기도 하고, 의사가 이야기하는 안 좋은 습관의 상당수를 내가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정도가 되니 충격이 컸다. 순간 머리가 번쩍 하더니 ‘아 내가 뭔가 착각하고 있었구나’ 란 생각이 들면서 자기 성찰 (self-reflection)을 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이렇게 나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어 이성적인 판단이 아닌 감정적인 판단을 하게 했을까? 나의 마음이 어떻게 흘러갔길래 본업보다 주식 투자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을까? 한 걸음 물러나 내 마음을 관찰해보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되었다.

어쩌면 최근의 부동산 가격 증가로 인해 나의 마음속에는 어떤 불안(anxiety)이 생겨났을 것 같았다. ‘이러다 내가 정말 집을 사지 못하게 될지도 몰라’. 정신의학에서 정의하는 불안 (anxiety)는 미래에 위험이 발생할 것이라 예상되어 느끼는 불쾌한 감정이다. 정신 분석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불안은 ‘신호 불안(signal anxiety)’라고도 하는데, 이는 불안이란 불쾌한 경험에 대처하기 위해 마음의 여러 방어 기제 (defense mechanism)가 작동하도록 신호를 주기 때문이다. 주식 공부를 한 나의 의식적인 이유는 자금 마련이지만, 어쩌면 나의 무의식 속에선 이런 불안감을 대처하기 위해 지식화 (intellectualization)[i] 하였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또한 주식 공부를 함으로써 난 ‘투자로 성공해서 부자가 되는 ‘상상을 하였다. 이런 상상의 이면엔 투자로 성공을 해서 화려하게 살고자 하는, 나만의 무의식적인 시나리오가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정신분석적 관점에선 이런 것을 ‘환상(fantasy)’ 라 이야기한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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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점은, 이런 환상과 나의 불안감이 합쳐져서 더 큰 불안을 만들어낸 것이다. 훨씬 더 커진 불안은 더 이상 나에게 의식되지 않고 나도 모르게 나의 행동을 지배하게 되었다. 근무하는 동안 주식 차트를 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게 되고 주식 이야기만 하며, 사지 않으려고 했던 주식마저 사게 만들었던 것 같다. 자아 (ego)[ii]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정서 조절인데 조급한 마음으로 나는 불안에 압도당하였고 내 마음의 ‘관찰하는 자아(observing ego)[iii]’는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나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도 모른 채 감정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 것이다. 나를 지배했던 감정을 떨쳐내고 차분히 나의 생각, 감정 그리고 행동을 돌이켜 보고 나서야 나도 알지 못했던 마음을 인식하게 되었고 예전보다 주식 차트를 보는 시간이 줄게 되었다.

나 자신을 사례로 삼아 이야기한 것처럼, 감정에 압도되어 있을 때엔 우리는 그 감정을 인식하지 못한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사람한테 ‘왜 화를 내냐?’고 했을 때 자신은 화가 나지 않았다 고 이야기한 경우를 종종 보았을 것이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감정은 결국 행동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 점이 포인트이다. 내가 평소 관심 없던 주식 종목에 특별한 이유 없이 자꾸 눈길이 가거나 비싸다고 생각한 주식이 갑자기 저렴한 것으로 보인다 거나, 주식 차트를 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면 한 번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지금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 지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성이 아닌 감정에 휘둘려 주식 투자를 하면 결국엔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잃을 수도 있을 것이다.


[i] 받아들일 수 없는 충동, 사고,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지적인 활동을 사용하는 일종의 방어 기제

[ii] 마음에서 무언가 실행에 옮기는 요원. 감정, 정서를 조절하고 판단을 하는 역할을 함.

[iii] 정신분석적 작업에 필요한 자기 성찰 (self reflection)을 하는 자아 (e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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