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제주 슬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오동훈 전문의]

 

“현재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먹고 있는데 코로나 백신 맞아도 되나요?”

여느 때처럼 한 환자분 진료를 마치고, 다음 진료를 막 시작하고 있었는데, 접수처 담당 직원에게서 온 메시지 하나가 진료실 컴퓨터 화면에 떴습니다. "진료 마치신 OOO님이 문의할 것이 있다고 하시면서, 원장님 다시 만나 뵙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무슨 일이실까?" 진료를 마무리하고, 그분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분은 다소 염려 어린 말투로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여기 약을 먹고 있는데 코로나 백신 맞아도 될까요?”. 요즈음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입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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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를 담당하는 저 역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했습니다. 보통은 제가 환자분으로부터 어떤 질문을 받으면, 대개는 의학 교과서에서 공부했던 내용을 기억해내거나 직접 찾아보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사상 초유의 COVID-19 대유행과 관련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아직 의학 교과서에 실릴 만큼 충분한 연구결과들이 수집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과서는 아예 펼 생각도 하지 않고 곧바로 미국국립의학도서관의 의학논문 데이터베이스에서 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관련 연구논문들을 검색해보았습니다.

의학적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약물 간 상호작용’(drug-drug interaction)이라고 합니다. 새롭게 접종되는 백신이 기존에 복용 중인 약물의 대사과정이나 효과에 영향을 줄 수도 있고, 반대로 이미 체내에 들어와 있던 약물 성분이 추가된 백신의 작용에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 질문을 주셨던 분들께서 걱정하셨던 문제는 복용 중인 정신건강 약물이 혹시나 코로나 백신의 부작용을 심화시키지는 않을지를 여쭙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검색을 해보니 아쉽게도 현재까지는 코로나 백신과 정신건강 약물요법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이렇다 할만한 연구결과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가운데서도 이런 결과에 놀라움과 실망감을 느끼실 분들이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의사/혹은 의학자로서 이에 대해서 변명을 해보겠습니다. 우선 현재 접종이 되는 코로나 백신에 대해서 아직 우리가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들 아실 겁니다. 현재 우리가 맞고 있는 백신들은 사상 유례가 없는 전 세계적인 대유행 때문에 예전과 달리 더욱 신속한 임상시험과 긴급한 승인을 거쳐서 시판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궁금해하는 여러 질문에 대한 똑 부러지는 답을 주기에는 아직 충분한 자료를 가지고 있지 못한 실정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작용 방식의 차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상시 복용하거나 주사를 맞는 의약품은 우리의 인체 내에서 주로 생화학적 반응 경로를 통하여 질병에 대한 치료 효과를 나타내지만, 백신이라는 의약품은 특정 감염성 질환에 대해서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효과를 나타냅니다. 즉, 효과를 나타내는 방식이 다릅니다. 더 쉽게 말하면 가는 길이 다른 것이죠. 비유를 들어 설명하면, 하나는 지하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요. 다른 하나는 고가도로를 달립니다. 이렇게 다른 길을 달리다가 나들목이 나타나야 비로소 만날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작용 방식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다른 두 의약품 사이의 상호작용에 관한 관심이 애당초 적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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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차선책으로 기존의 의학적 증거 자료를 토대로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우리는 과거에도 매년 겨울철마다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 소식을 듣거나 혹은 맞아 왔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기 좀 부끄럽습니다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지난 10여 년 이상 진료를 해오면서 인플루엔자 백신과 제가 처방하는 정신건강 약물요법과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저 개인적으로 백신 접종과 약물상호작용 관련 부작용을 관찰하거나 경험한 경우 역시 없었습니다. 물론 이번에 개발된 화이자社 와 모더나社의 mRNA 방식의 백신은 과거의 백신들과는 다른 (혁신적인) 작동원리를 갖고 있습니다만, 결국에는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점은 같습니다. 따라서 코로나 백신들도 기존의 백신과 마찬가지로 인체에 해로운 약물상호작용 관련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이번에 시판되어 사용 중인 코로나 백신들은 모두 수만 명 단위의 3상 임상시험을 통과한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화이자社의 백신은 미국, 남미 그리고 남아프리카에서 4만 3천여 명의 다양한 인종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고, 이전에 감염된 적이 없는 사람이 2회 접종받았을 때 COVID-19 원인 바이러스 감염(실험실 확인)을 예방하는 데 95% 효과를 보인다고 했습니다. 3상 시험이기에 참여자 중에는 다양한 기저질환을 앓고 또한 치료제를 복용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해당 논문에는 자세한 수치로 나와 있지는 않지만, 우울증 혹은 공황장애를 겪으며 치료제들 복용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해당 논문에서는 특정 질환 혹은 특정 약품과 백신 부작용과의 유의한 상관관계에 대한 보고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의원을 찾아주시는 분들 가운데서도 이미 네 분 중에 한 분은 접종을 완료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물론 1회 이상 접종자가 아직 전체의 반을 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제가 이번 코로나 백신 접종과 정신건강 약물과의 상호작용과 연관되는 유의한 부작용을 관찰하거나 보고받은 예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백신 접종 이후 호흡곤란, 답답함, 초조함 혹은 모호한 통증 등등의 증상이 있었을 때 기존의 정신건강 약물요법 치료제를 미리 복용하거나 안정제 비상약을 먹었더니 이러한 증상들을 견디기가 훨씬 수월했다는 보고를 몇 분에게서 들은 바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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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저는 작금의 COVID-19 대유행을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었던 지식이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그런 시대입니다. 마치 안갯속을 걸어가는 그런 기분입니다. 무력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제가 앞서 두세 가지 이유를 들어서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먹고 있는데 코로나 백신 맞아도 되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제 나름의 답을 드려보았습니다. 물론, 제 답변에도 이론의 여지가 충분히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감히 결론을 말씀드려봅니다. 현재까지의 정보를 종합했을 때, 제 개인적 판단으로는 정신건강의학과 약물 복용 여부가 코로나 백신 접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고려사항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정신건강의학과 약물요법을 하고 계시더라도 너무 염려하지 마시고 코로나 백신 예방접종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한 말씀만 더 드려보겠습니다. 논문을 검색하면서 아주 흥미로운 사실들을 부가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요즈음 빅데이터 시대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흐름이 의학계에서도 불고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로 기존에 사용되고 있는 수많은 약물을 다시 조사하여 새로운 쓸모를 찾아내는 것을 ‘약물 재창출’(drug repositioning)이라고 합니다. COVID-19에 대해서도 약물 재창출 기법을 이용하여 새로운 치료제를 찾는 방법이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제 눈을 번쩍 뜨게 하는 단어(약품명)들이 보였습니다. 바로 제가 평소에 진료실에서 처방하는 일부 정신건강의학과 약물들이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약물들이 COVID-19 치료제 후보군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반갑고 신기하던지요.

COVID-19 대유행 시대에 백신 접종과 정신건강의학과 약물요법 때문에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쩌면 새로운 치료제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기 위해 여러 연구논문을 검색하기 시작했을 때는 속 시원한 연구결과들이 없어서 제 가슴에서 뭔가 답답함이 느껴졌었습니다. 하지만 글쓰기가 마무리되었을 때에는 뜻밖의 흥미와 희망을 발견한 것 같아서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었습니다. 제 부족한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도 불안과 염려가 아니라 평안과 희망을 갖게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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