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식목일 : 지워져가는 날

4월 5일, 식목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어릴 적 텔레비전을 통해 볼 수 있던 식목일의 모습들은 많은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나무를 심는 광경이었다. 식목일은 뉴스에서 꽤나 무게 있게 다루던 주제 중 하나였다. 요즘 들어 식목일은, 그저 달력에 무엇이 쓰여있는 날 중 하나 일뿐이다. 대통령 정도나 돼야 나무를 심는 광경을 보여줄 수가 있다. 요즘은 나무를 심고 싶어도 개인에게 나무를 심을 땅이 없다. 대부분의 산은 산림청이 관리하고 있고, 무엇을 심거나 베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그 이외의 땅은 개인이나 사기업의 소유인데, 더욱더 나무를 심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사는 요즘, 아파트는 아름다운 조경으로 마감되어 있다. 결국 우리에게는 공중의 땅만이 허락된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 허락되는 식물은 몇이나 될까? 요즘의 식목일은 산림청에서 주최하는 ‘내 나무 갖기 캠페인’ 정도의 이벤트와 ‘집에서 키우기 쉬운 나무 5가지’ 추천 정도가 남아있는 날이 되었다. 어쩌다 식목일이 이런 신세가 되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우울증이 나를 삼켰을 때, 나는 내 집에서도 외부인이 된 느낌이었다. 어느 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가족들이 들어와도 애써 밝고 씩씩한 척을 했을 뿐, 사실 나는 껍데기만 그러했다. 빈 껍데기로 살아가는 기분이란 썩 불쾌하다. 외롭고 쓸쓸하다. 나를 지상으로 끌어내릴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에겐 그것이 반려견이었고, 식물이었다. 컨디션이 극도로 좋지 않을 때는 반려견과 식물 모두에게도 나는 외부인이 되었다. 밥과 물을 주었지만, 마음을 주지는 못했다. 나는 주로 침대에 누워있었고, 현실에서 잠으로 도피했다. 그러다 한두 시간 후에 깨어나면, 텅 빈 방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쓸쓸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아침부터 단 한마디도 소리 내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철저히 혼자임을 인지하게 된다. 

그 순간 나에게 안정을 준 유일한 존재는 ‘나무’였다. 물론 작게 모여 있는 작은 식물들의 존재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내 눈길을 단박에 사로잡은 것은 오랜 시간 함께 했고, 듬직하게 서있는 단 한 그루의 나무였다. 실제로 나무는 내 키를 훌쩍 뛰어넘었고, 그 뒤로부터 굉장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으로부터 이든지 나를 지켜줄 것만 같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식목일은 이제 그저 흘러가는 날 중 하나일 뿐이다.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축제의 날이다. 이날을 핑계로 식물을 하나쯤 사기도 하고, 마음먹고 분갈이를 하기도 한다. 어쩌면 당연할 수 있는 이 간극을 바라보며 씁쓸함이 느껴진다. 이런 식으로 수많은 날들이 지워졌던 것처럼, 어쩐지 식목일도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날이 있었어?’라며 지워질 것만 같다. 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녹지를 누렸으면 좋겠다. 주변에 자연 그대로를 살린 공원이 여럿 존재하고, 그곳에서 충분한 휴식을 누리기를 바란다. 그리고 마침내 식물에게서 위로와 에너지를 받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확인하길 바란다. 

한국인은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누구나 열심히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고, 강박처럼 느끼고 있다. 일이 많으면 당연히 야근을 하고, 과제가 많으면 당연히 밤샘 공부를 한다. 그러니 버스나 지하철에 졸고 있는 사람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공중장소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멀리서 생각해 보면 자연스럽지 않은 행동이다. 매우 사적인 행위를 낯선 이들이 가득한 장소에서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짬을 내서 자야 하고, 내리면 다시 에너지를 충전해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너무 성실하며, 그러므로 매우 피곤하다. 우리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덜 열심히 해도 된다는 암묵적 합의가 필요하다. 도심 속에서, 일상에 지친 이들이 공원으로 쏙 숨어들어 온전한 휴식을 취하는 과정을 경험한다면, 우리의 삶은 어쩌면 지금보다 덜 지치지 않을까? 공원에서의 휴식은 누구에게나 무료다. 휴식이 필요한 누구라도 품어줄 수 있다. 

 

 

이에 응답하기라도 하 듯, 식목일을 3월로 변경하자는 움직임이 생기고 있다. 4월 5일이 되면 이미 초여름 날씨가 돼버리는 시절이 된 것이다. 더불어 2013년에 재정된 국가기념일인 ‘바다 식목일’도 주목받고 있다. 바닷속 사막화를 막기 위한 움직임이다. 바다는 지구의 기온을 조절하는 아주 중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지구 온난화는 많은 이들을 움직이고 있다. 집안에 나무 몇 그루 가게 전부인 나이지만, 3월이든 4월이든 식목일이 많은 사람들의 논의 대상이 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기왕이면 이번 기회로 식목일이 다시 공휴일로 지정돼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이 되면 정말 기쁘겠다.

 

* 매주 2회 수, 금요일 글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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